며칠째 흐린 날이 이어졌다.
지안은 기억을 팔던 날 이후, 거짓말처럼 평온해졌다.
혼자 있어도 불안하지 않았고, 거리를 걷다 울컥하는 순간도 없었다.
그토록 괴로워하던 그 겨울의 기억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
그는 잠시 후련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 이상한 꿈을 꾼 건, 기억을 판 지 사흘째 되는 밤이었다.
꿈속에서 그는 눈 덮인 골목에 서 있었다.
어디선가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낯설지 않은 목소리.
하지만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그 목소리는 말했다.
“그 기억은 너만의 것이 아니었어.”
지안은 소스라치게 눈을 떴다.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했고, 가슴은 터질 듯 뛰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방, 침대 위에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책상 위에 하얀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그가 분명히 보관하지 않았던,
분명히 처음 보는 종이였다.
거기엔 단 한 문장만이 적혀 있었다.
“기억이 사라졌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에요.”
지안은 그 문장을 읽고도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누가, 어떻게, 왜 그 말을 남겼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건 상점에서 만났던 루나, 그녀의 글씨였다.
그녀가 떠날 때 손에 쥐고 있던 작은 노트의 필체와 같았다.
하지만 그는 연락처도, 이름도, 위치도 모른다.
그는 종이를 내려다보다가 불현듯 떠올랐다.
기억을 판 날, 그 상점 안에서 마주쳤던 루나의 눈빛.
그녀는… 정말 기억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었을까?
그 감정이 그녀 안에서 잠자코 머물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이 종이는…
“혹시, 내 기억 속 일부가… 그녀에게 남아 있었던 걸까.”
지안은 어지러운 머리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코트를 걸치고, 다시 그 골목을 떠올렸다.
처음 상점을 만났던 그곳.
기억을 팔았던 그 밤.
하지만 골목은 사라진 듯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그 어떤 간판도, 문도 없었다.
그저 오래된 벽과 담배꽁초 몇 개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마치, 상점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지안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기억은 사라졌고, 상점도 사라졌다.
그런데 왜 그는 점점 더 그 기억에 끌려가고 있는 걸까.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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