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은 차를 다 마신 뒤, 고요한 숨을 내쉬었다.
기억이 정말 사라질 수 있다면,
그 기억을 떠안고 살아야 했던 무게도 함께 가벼워질까.
상점 주인 렌은 조용히 일어나 선반 뒤의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지안은 렌을 따라 문 너머로 발을 들였다.
문이 닫히자, 소음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곳은 더 어두웠고, 더 조용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공간 같았다.
천장에 매달린 희미한 전등 불빛 아래,
한 사람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긴 머리를 질끈 묶은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고, 양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얹어 있었다.
공기조차 숨을 죽인 듯, 그녀의 존재는 무척 조용했다.
“루나,”
렌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동자엔 빛이 거의 없었고, 어딘가 텅 빈 듯한 깊이가 있었다.
“이쪽은 지안 씨.
첫 기억을 판매하러 오셨어.”
루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렌의 말에 별다른 표정도,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기억의 감정은 슬픔입니다.
작년 겨울, 마지막 눈이 내리던 날의 기억.”
렌은 다시 확인하듯 말했다.
루나는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지안 앞에 섰다.
그리고 두 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손을 주세요.”
지안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손끝에서부터 서늘한 감각이 퍼져나갔다.
숨이 턱 막히는 듯한 찬 기운.
그러나 아프진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가 천천히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나’의 일부가 흘러나가는 감각.
지안의 머릿속에 그 장면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하얀 눈이 소복히 내리던 거리.
너무 잘 알던 뒷모습.
돌아서며 남긴 마지막 말.
그리고, 사라지는 발자국 소리.
가슴 한복판을 찌르는 찬 공기.
눈물이 흐르려 했지만,
그 감정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아프도록 생생했던 기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루나는 손을 놓았다.
잠시 눈을 감았던 그녀의 눈가에,
보이지 않게 작은 눈물이 고였다.
렌은 조용히 수첩에 날짜와 내용을 기록했다.
“기억 이식 완료.”
루나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느리지만 무겁지 않은 발걸음.
그녀는 다시 처음의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지안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녀는… 괜찮을까요?
남의 기억을 그렇게 계속 받으면…”
렌은 대답 대신 조용히 웃었다.
“괜찮다는 정의가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지안은 그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그 여자의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무언가를 품고 있지만, 이미 너무 많은 걸 잃어버린 눈.
가게를 나서며, 지안은 문득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떠올려보려 했다.
하지만 그 기억은 희미해졌다.
누구였는지, 무엇이었는지… 기억 속 자리는 비어 있었고,
마음은 묘하게 가벼웠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기억은 사라졌는데,
가슴 어딘가엔 아직 감정의 잔해가 남아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루나의 눈에 스쳤던 익숙한 표정이 떠올랐다.
마치…
그녀도 똑같은 기억을 품고 있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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