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받을,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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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9 21:12조회 16댓글 0검은
우주에 있었던
이름은 그렇게 살아가라는 부모의 의미가 담긴 경우가 많다. 류드밀라의 경우, 부모님에게 사랑 받는 여자가 되라는 의미가 잠겨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악마로도 통하는 그녀의 아버지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소녀는 사랑 받으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지고 세상에 나왔다.
눈을 뜨는 순간 보였던 그 악독한 흰 얼굴은 류드밀라에게 그저 달이었다. 비록, 류드밀라는 달이 뭔지 정의를 보면 몰랐겠지만, 류드밀라의 머릿속에는 우주가 있었다. 광할한 우주가 있었다. 그 속에는 행성 8개와 항성 1개 뿐만 아니라, 은하계와 다른 행성들이 떠있을테다.
끝내, 우주에서 살던 허약하리만치 아리따운 소녀가 병실로 내려왔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울음이었다. 살기 위해 울었지만, 류드밀라를 제외하고는 사는 일은 불가능했다. 사는 일은 그들에게 거대한 사치였다. 류드밀라는 디올 코트를 입고 잘난 체 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시체를 밟을 수 있었다.
“류드밀라! 드디어 네가 태어났구나”, 류드밀라의 아버지가 우주에서 온 류드밀라를 보며 말했다. 아버지는 창백한 손에 묻은 붉은 피를 숨기고, 차가운 냉혹함을 뜨거운 사랑으로 숨겼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붉은 것은 태양과 화성이었던 류드밀라에게 아버지가 숨긴 피는 별이었다.
“여보, 여보는 괜찮아?”, 유드밀라의 아버지는 자신의 부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고급졌다는 단어가 제일 잘 어울리는 부인, 악마의 부인, 붉음의 부인, 그리고 끝의 부인이었다.
“어…. 그래”, 류드밀라의 어머니는 꼭두각시 인형이 머리를 떨어뜨리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었다가 잠시 견뎌 낸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은 달보다도 창백해졌다. 류드밀라에게 어머니는 저너머 떨어지는 별똥별과도 같았다. 빛이 나지만, 동시에 떨어지는 여자.
”그럼 되었어, 여보도 잘 버텼어“
”뭐, 그렇지. 그나저나 우리 류드밀라는 괜찮을까?“
”왜?“
”아니, 독극물은 계속 퍼지고, 더이상 소…“
”쉿, 그 말 하지 마. 죽어도. 남편 힘들게 할거야?“, 키가 큰 류드밀라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머리보다 1.75배는 큰 손으로 어머니와 유드빌라를 감쌌다. 마치 비밀을 숨기려는 그들처럼.
”어… 알겠어. 말하면 안되지.. 그저, 나는 그저, 로드밀라에게 이곳이 완벽한 집일까 싶은거야“
”당연히 완벽하지! 모두가 공평하고, 잘 지내고, 이런 곳에서 태어난 게 얼마나 다행이야. 벌써 미국은 붕괴가 시작 되었다고. 거기 무정부 사회 봐봐”
”그래, 다행이지“, 류드밀라의 어머니는 계속 되는 싸움에서 남편의 충성심에 끝내 진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남편을 누가 이길 수 있다고. 그 잘났다던 존재들조차도 남편의 능력 몇 번이면 끝나는데.
그렇게 류드밀라의 탄생 축하식을 끝내게 되었다. 처음으로 우주만큼이나 차갑고 화성만큼이나 척박하며, 금성만큼이나 지옥 같은 이 땅을 밟게 된 소녀는 사랑을 받고 살 수 있을까? 남들의 사랑을 밟았던 남자는 사랑을 받아야 할 소녀를 낳았고, 소녀는 우주에서 이곳으로 돌아왔다. 긴 꼬리를 그리며 혜성처럼 왔다. 죽음이라는 꼬리를 그리며 왔다.

탄생을 위해 파괴하다
류드밀라의 아버지는 소련에 충실한 “리퍼”였다. 자원 고갈을 막는 소련 정의의 사도, “리퍼”. 죽음을 몰고 가는 동시에 탄생을 허락하는 “리퍼”.
“리퍼”는 지원 고갈을 막기 위해 매년 영유아와 신생아들을 제외하고 경제 기여도가 낮은 이들을 학살하는 직업이었다. 학살이라는 단어는 천박하니, 쓰지 말라 류드밀라의 아버지는 말했다. 청소일 뿐이였다. 그저 청소, 사람을 죽이는 청소, 학살하는 청소, 아무튼 청소였다.
이 존재가 어찌나 끔찍한 지에 대해 영광스럽고 자유로운 미국과 한국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대화하지만, 사실상 그들도 이 “리퍼”를 도입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들 또한 자원 고갈에 허덕이며 산소 호흡기 붙인 아이처럼 살고 있었다. 소련에서 가끔씩 남은 곡식이 있으면 중국이나 북한으로 보내는게, 이걸 몰래 훔쳐서 가져오는 불법 직업들도 한국에는 여럿 존재한다. 그들은 일명 “수거”다. “수거”들은 대게 고갈 된 자원에 허덕이는 도시 사람들이다. 시골 사람들은 그나마 남은 농사물들로 살아가는 반해, 도심은 기아가 펼쳐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소련이나 중국(북한은 안 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들도 비밀리에 유지한다는 소문이 있다)이 그렇듯이 “리퍼”를 도입라지 않는 이유는 같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고, 인간들이 가질 보편적인 권리에 차질이 생긴다“, 매우 아름다운 이유였다. 성난 시민들을 대강 그렇게 설득 시키면 될 것만 같았다.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와 선“,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는 모자랐다. 누군가는 “그렇다고 죽어가는 이들을 전부 내버려 둘거야? 자원 고갈 되면, 인권이 밥 먹여줘?!”, 라고 분노했고, 또다른 누군가는 “그래도, 인권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지켜야 해요”, 라고 했다. 현실과 이상의 경계선에서 그들은 싸웠다. 인간이 이상을 쫓으려고 해도, 현실이 나타나서 방해했다.

회계
류드밀라는 나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아버지의 직업은 영광스러운 직업이었고, 어머니의 부모는 그 영광을 받았었다. 류드밀라의 이름은 사실상 “영광은 많이 받았으니, 넌 사랑 받아라”라고 해석 가능하다. 사랑을 받는 아이로서 살아라. 경제 기여도가 높아서 모두가 사랑하는 인간. 완벽해 보였다.
실제로도 류드밀라는 모두가 증오하고 죽어가는 그 공장의 기계적인 노동 속에서 나쁘지 않은 성과를 보였다. “생각하기 전에 일해, 울기 전에 일해, 무엇이든 그걸 하기 전에 일해”, 굉장히 쉬운 법칙이었다. 류드밀라는 뛰어난 솜씨로 공장 일을 했다.
또한, 류드밀라는 안에 품고 있는 우주를 버리는 법을 배워갔다. 안에 있는 혜성을 버리고, 그 안에 공장을 넣어야 했다. 태양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그 안에는 기계를 잘 작동 시키는 법을 넣어야 했다. 뜨거운 안드로메다, 은하들, 특히 그녀가 사랑했던 고향 우리은하, 아, 빅뱅마저도 버려야만 했다.
류드밀라는 공장 일에서 모든 걸 멈추지 않았다. 그깟 공장 노동하려고 사랑 받는 게 아니니깐. 류드밀라는 공장에 있는 학교에서 회계를 배워 공장 회계를 하기로 했다. 그때가 류드밀라가 15살이었다. 류드밀라는 어린 시절부터 배운 계산 방식들을 모두 회계 공부에 쏟아 부었다. 회계는 그녀가 생각한 것보다 혹독하였다. 류드밀라와는 차원이 다른 실력자들 또한 존재했다. 류드밀라에게는 버거워 보이기도 했다.
류드밀라가 제일 걱정한 일은 본인이 회계 공부를 하느라 경제 기여도가 떨어지는 일이었다. 류드밀라의 경제 기여도는 똑같았지만, 언제 내려갈 지 모르는 위태로운 존재였다.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같았다. 본인이 무엇을 하든지 간에 떨어질 것 같아 아래만 보고 걸어야 하는.
다행히도, 류드밀라는 회계를 금방 배웠다. 그녀가 가장 염두에 두기도 하였던 경쟁이 줄어들고, 덕분에 걱정이 줄어든 것이다. 그녀가 생각한 그 쟁쟁한 실력자들이 회계사에 실패한 이유는 간단하였다. 공부를 하다가 경제 기여도가 낮아져서. 공부에 계속 전념하다가는 결국 경제 기여도가 떨어지기 마련이고, 결국은 모두가 죽음의 공포 앞에 굴복하였다. 덕분에 류드밀라는 빠르게 성적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고, 끝내, 간단한 회계 일과 공장 일을 같이 하는 정도로 올라갔다. 그때가 류드밀라가 20살일 때였다. 드디어 실습을 하게 되었다. 매우 간단하기야 하지만 말이다. 본래, 자원이 고갈 되어 매우 어린 아기들을 제외한 모두가 일을 하는 소련에서는 20살부터는 농장 일이나 단순노동 뿐만 아니라 여러 업무들을 맡을 수 있었다.


류드밀라는 회계를 맡으며 계속 기쁨을 놓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말대로 국가와 사회에서 사랑 받는 이가 될 수 있었다. 류드밀라는 드디어 실습을 시작했다.
류드밀라는 국영 공장에서 실습을 하기로 하였다. 국영 공장은 그녀가 일했던 곳이기도 했다. 그녀의 어머니도 다른 공장이지만, 어쨌거나 국영 공장에서 일했다.
류드밀라는 그곳에 매일 실습을 하러 가야 했는데, 공장은 그녀가 원래 일했던 공장보다 매우 차가웠다. 안은 냉장고 같았으며, 그녀마저도 식재료가 되지 않을 까 그녀는 바보 같은 걱정을 하였다. 아직 공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 했는데, 벌써 두려움이 느껴졌다. 차가운 냉기가 그녀의 뼛속을 파고들며 살을 얼리고, 깨뜨렸다. 살과 근육이 깨지는 느낌과 함께 피부가 차가워졌다.
하지만, 류드밀라의 영혼은 아직 태양처럼 뜨거웠고, 우주처럼 차분했으므로, 문을 단단하게 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주변을 두 눈으로 흝어 보았다. 시체가 보였다. 시체 더미들, 낙옆처럼 쌓인 푸르고 흰 시체 더미들, 그녀는 처음 보았다. 그녀는 왜 시체가 공장에 있는 지 의아해 졌다. 공장에 시체 더미가 쌓여 있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런 광경은 우주에도 없었다. 시체 더미가 쌓여 있는 공장이라니.
그녀는 침착하게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갔다. 시체가 밟힐 것만 같았다. 시체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그녀가 모르는 시체의 몸 속 깊은 곳에서는 부패라는 움직임이 생기고 있었다. 왼 쪽에 있는 회색 벽 모서리에는 시체가 특히나 두세겹 더 쌓여 있었다.
더 걸어가니 새로운 철제문이 있었다. 그 문을 여니, 노동자들로 보이는 이들과 총, 그리고 묶인 이들이 있었다.
“아, 그… 실습 오신다는 분, 맞으시죠? 저는 이곳의 관리자인 드미트리라고 합니다. 저희는 공장이지만, 사실상 살인 공장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저희는 경제 기여도가 낮은 이들을 죽이고, 그들의 기체를 소각하러 갑니다. 앞에 있었던 시체들은 저희가 소각해야 되는데, 아직 소각하는 날이 아닙니다. 뭐, 살인 공장도 공장이라고 하지요“, 친절해 보이는 젊은 남자가 말했다. 관리자치고는 젊어 보였다. 얼굴이 주름 하나도 없이 멀끔했다. 보름달의 옆을 살짝 깍고, 잘 만들어진 이목구비를 붙이면 생길 법한 얼굴이다. 관리자지만, 정장 대신 더러워 져도 될 법한 작업복을 입어서 권위가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실제로는 그러지 않았다).
”아, 네… 회계 실습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공장은 생각보다 고요하여 그녀의 말이 거대하게 울렸다.
”네, 그럼 앞으로 잘해봅시다“, 남자가 볼에 있는 보조개를 보이며 웃었다. 약간은 더럽지만, 고른 치아가 아름다웠다.
그렇게 우주에서 온 소녀는 살인공장의 회계사가 되었다. 그녀는 사랑 받을 수 있겠지만, 남의 사랑이 파괴되는 걸 방관해야 했다. 앞으로도, 지금 그랬듯이. 오늘 따라 아버지가 원망스러워졌다. 저 시체를 보고도 청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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