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운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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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8 20:18•조회 38•댓글 0•여우비
*자연스러운 대화 흐름과 표현을 위한 욕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혹여 불편하신 분들은 뒤로가기 버튼을 탭 해주세요.*


바스락. 바스락.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눈이 떠지지 않았다.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머리가 띵하고 배가 고팠다. 몸이 물에 젖은 이불처럼 축 늘어진 것 같았다. 일으키려 해도 일으켜지지 않았다. 주변에서 침대를 스치는 듯한 소리와 한숨, 머리칼을 빗어 넘기는 소리들이 들렸다.

—언제 일어날래.

곧 누군가의 낮고 피곤한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네 목소리였다. 그 순간 눈이 딱 떠졌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더운 공기가 훅 밀려 들었다. 내 방 안이였다.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났던 쪽을 바라보았다. 책상 의자에 네가 앉아 있었다. 휴대폰을 멀뚱히 응시한 채로. 그러다가 내가 깨어난 걸 발견한 네가 재빠르게 다가왔다. 나를 살짝 건들며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이불로 꽁꽁 싸매진 채 한 마디도 못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서야 몸이 아픈 게 세세히 느껴졌다. 눈에서 눈물을 떨구는 나를 보며 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지금, 울어?”

“…….”

울음이 터져 나오지 않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네 말엔 대답할 수 없었다.

“야, 많이 아파? 그 정도야? 네가 울 정도면 얼마나 아픈 거냐?”

—훌쩍.

“미친. 훌쩍거려?”

나오려는 눈물 콧물 억누르려다 훌쩍거리고 말았다. 내 체면…. 사실 네 앞에선 차릴 체면치레조차 없다. 내 밑바닥까지 전부 보여준 사이기에. 너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눈을 덮을락 말락 하는 내 앞머리를 손으로 슥슥 쓸었다. 비참하게도 그 손길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나 자신이 변태 같아서 속으로 아우성을 질렀다.

“아프진… 않고….”

“않고?”

“그냥 갑자기….”

“갑자기?”

“…….”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러고 우는 내가 정말 한심하고 병신 같이 느껴졌다. 결국 고개를 돌려 이불에 얼굴을 파묻곤 한참 동안 너와 대화하지 않았다.


*


“세수라도 하고 와라.”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가서 거울 좀 봐봐.”

“……개새끼가?”

“푸하하학.”

네 머리통을 두동강 내버리고 싶었다. 발을 쿵쿵거리며 화장실로 갔다. 거울을 보자마자 네 말이 이해가 됐다. 침 자국과 눈물 자국, 헝클어진 머리카락, 퉁퉁 붓은 눈으로 엉망이였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머리를 정리했다. 걸린 수건으로 손과 얼굴을 닦고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갔다. 그새 어디 갔는지 방에 네가 없었다. 정신이 온전치 않아서 멀뚱멀뚱 침대에 앉아 멍을 때리다가 들어오는 너를 보고 깜짝 놀랐다. 손에 접시가 들려 있었고 안에는 딸기가 가지런히 썰려 있었다.

“먹어. 이제 좀 너같네.”

“허, 아까도 나였거든. 넌 안 먹냐?”

“많이 드세요. 마아않이.”

나는 눈을 흘겼지만 내심 고마웠다. 딸기를 입에 넣어 먹었다. 단맛이 올라오는 게 꽤 비쌀 듯 한데. 맛있어서 금세 한 그릇을 헤치웠다. 네 시선이 느껴졌다. 그릇에서 눈을 돌려 너를 응시했다. 네 눈을 바라보았다. 또 내 모습이 비쳐 보였다. 너도 내 눈을 바라보았다. 네 눈은 예뻤다. 끝이 내려가 있어 순해 보이는 인상을 주었고 동글동글 말똥한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안광이 거의 없는 나에 비해 너는 눈이 항상 반짝였다. 그렇다고 빛이 막 뿜어져 나오는 그런 건 전혀 아니다. 적당히 맹한데 그리 멍청해 보이진 않는 느낌.

“왜 그렇게 봐?”

“너야말로 내 눈 뚫어지겠다.”

“지랄한다.”

나는 욕을 뱉는 네가 웃겨서 피식거렸다. 창밖을 보니 그새 해가 져 온통 깜깜했다. 시계는 여덟 시 반을 막 지나치고 있었다. 내 시선이 흐르는 곳을 느꼈는지 네가 짧게 말했다.

“너 3시간 넘게 잤어.”

“…….”

“내 전화는 왜 안 받았냐?”

아, 아까 걸려온 전화가 너였구나. 그냥 끊어버린 게 괜히 미안해졌다. 그치만 내가 잠든 시간까지 안다는 건 네가 계속 내 옆에 있었다는 말로 들렸다. 내가 이상한 거겠지. 나도 알고 있다. 자꾸 묘한 감정이 드는데 이름을 모르겠다. 알다시피 고작 열여덟인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리 많지 않다. 행복, 희열, 화, 짜증, 억울, 귀찮음, 배고픔, 졸림 그 밖의 등등등….

너는 여전히 멍한 날 쳐다보며 눈이 휘어지도록 웃었다. 그렇게 웃는 건 반칙이라고 소리라도 질러주고 싶은 심정이였다. 너는 한없이 태연해 보이는데, 왜인지 나만 전전긍긍하는 느낌이 들어 짜증이 솟구쳤다.

“너 언제 가냐?”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무참히 내뱉고 말았다. 너는 그런 말을 들을 준 몰랐다는 표정을 했다. 의자 등받이를 짚고 천천히 일어나더니 뭐라는 거야. 오늘 자고 간다고? 정말? 농담인 걸 알면서도 괜히 한 번 기대해본다. 너는 농담이라는 표정으로 씨익 웃어보이곤 내 어깨를 탁탁 두드린다.

“간다. 이모 곧 오신다고 하셨으니까 몸조리 잘 해라. 학교에서 봐.”

가볍게 손을 흔들더니 쏘옥하고 방 밖으로 나가버린다. 이거 봐, 이거 봐. 짜증이 나서 훽 돌아 누웠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리고 잠을 청했다. 9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엄마가 돌아오셨다. 과일을 한 가득 싸들고는 나를 반긴다.

“열 좀 내렸어? 미안. 일찍 오려고 했는데 잘 안 됐어.”

“괜찮아. 아까 바다 왔다 갔는데.”

“응. 내가 불렀어. 누군가는 너랑 같이 있어줘야 될 것 같아서.”

“내가 애야? 걔 귀찮게.”

“아직 내 눈엔 새파랗게 어린 애야. 잔말 말고 어여 들어가서 자.”

“…….”

나는 입술을 내밀었다가 집어 넣으며 화장실로 갔다. 이를 닦고 세수를 했다. 얼굴에 찬물을 끼얹으니 조금 살 것 같았다. 대충 스킨 로션을 바르고는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
오노추 Tabber - Chi-Ka(feat. DEAN)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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