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6 18:14•조회 55•댓글 3•필견
나른한 점심시간, 나는 학교 옥상에서 날카롭게 변한 햇빛에 다시 눈을 떴다. 잠시 햇빛을 피해 옆으로 누워 눈을 감고 공상에 젖어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좋다. 어떤 이들이 나를 본다면 단순히 일광욕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신경조차 쓰지 않고, 각자 자기 일에만 충실한 지금이 제일 좋고.
방송실에선 비틀즈의 ‘Abbey Road’ 앨범이 흘러나왔다. 누가 신청한 건지 모르지만, 굉장히 올드한 취향을 가진 건 분명했다. 어쨌거나 몇몇 아이들은 축구를 하고, 몇몇 아이들은 학교 매점에 가고, 몇몇 아이들은 학교 정자 그늘에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그리고 건물 안에서 책을 읽거나 하겠지. 뭐, 어른들은 아이들이 학교 밖에 나가지 않게 가볍게 타이르고 통제한다. 그러다 통제자들이 벼락 맞을 우연으로 이곳을 쳐다보고 발견해서 놀랄 가능성에 대해 떠올렸다. 곤란하다. 분명 소동이 벌어질 테니까.
그러니까 내가 여기 오게 된 계기는... 무척 단순하고 간단했다. 답답한 교내에서 있을 곳을 찾아 방황하다 아주 우연히 올라온 이곳 자물쇠가 고장 난 것, 그래서 문을 열었더니 익숙하지만 낯선 넓은 풍경들이 펼쳐졌다. 하늘은 바다 같았고, 절대 닿을 수 없을 거로 생각했던 뭉게구름은 양손을 포개면 뜰 수 있을 것 같은 하얗고 거대한 목화 꽃처럼 보였으며, 건물 아래 있던 사람들이 플랑크톤만큼 작아 보였다. 시선을 바꾼 것만으로도 이렇게 볼 수 있다. 그 한순간, 이 넓고 적적한 먼지투성이 바닥이 마음의 문을 밀고 쏟아져 나를 채웠다. 그 뒤로 습관처럼 점심시간마다 올라오게 되었다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떠돌아다니다 보니 생겼다. 진짜 어쩌다 보니 일본 만화에서나 가능한 장면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은 고민이 있을 때 이곳에 올라와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서로의 말과 말을 오가며 고민을 해결하곤 한다. 그 장면이 인상 깊어 가끔 믿을만한 애들을 데려와볼까 싶었는데, 이내 관뒀다. 할 말이 많은 우린 누구도 진지한 이야기를 함께 고민하기보단 어긋난 웃음 속에 숨기려 했기 때문이다. 자존심을 깊어질 용기를 갖는다는 건 그런 거다. 일상의 위로는 모두 개개인의 몫이다. 무엇보다 이런 작은 학교에서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선생들이 귀신같이 나타나 자물쇠를 채운다. 이곳을 알고 있는 학생들이 하나, 둘 나타나 학교의 일방적 통제에 분노하여 항의, 결국 자유를 쟁취한다! 따위가 있을 리가 있나, 교감의 권한이 발동되어 몇 명이 본보기로 징계를 먹으면, 겁먹은 아이들이 흩어지고 침묵으로 흐지부지 넘어가겠지.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건 무책임한 어른들의 비겁한 변명이다. 어느 주인이 자기 있을 장소를 3년마다 바뀌는가? 우린 그저 계약자다. 그러니까 의무교육으로 3년간 묶여있다. 결국, 만화에 나오는 로망 따윈 현실엔 없단 얘기다. 그래서 크게 바라는 거 없이, 그나마 이 작은 공간 이 있을 때, 잘 활용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지키는 건 언제나 피해를 감수해야 하니까.
그래서 마음속으로 결심한 게 몇 개 있다. 옥상에 올라간 것을 선생에게 들키면 작게 끝나지 않는다는 걸 언제든 직시한다. 그리고 되도록 이런 나만의 세계가 만들어진 걸 함부로 떠들지 않는다. 게임 속 고인물들이 자기만의 비법을 감추듯, 행동할 것. 그게 지금 내 태도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나만의 장소를 만든 건 잘한 것 같다. 머리도 식히지 않으면 고장 나 버릴 테니까 이런 소소한 걸 해냈다면, 아무리 시시하더라도 그 순간만큼은 맘껏 나를 칭찬하자.
더위로 지친 의식의 흐름을 재정비하고, 그림자가 바뀌어 기운 옥상 문 근처로 이동하여 벽에 기댄다. 여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뼈가 시리게 차갑다. 아니, 그건 지친 내 마음인지도 모른다. 따뜻했던 몸은 시멘트 벽에 의해 금방 식기 시작했다. 이대로 벽과 하나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럴 일은 없다. 벽이 나를 원치 않으니까. 결국, 시린 등을 못 견디고 떨어져 다시 바닥에 누웠다.
하늘에 해가 어디 떠 있나 찾아봤다. 하지만 볼 수는 없다. 금방 재채기가 나오곤 하니까. 그런 거 보면, 사람의 눈은 참 불편하게 만들어졌다. 왜 빛을 직접 보면 안 되는 걸까? 1세기도 못 사는 사람이 그거 좀 본다고 뭐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앞으로 10분, 10분만 더 있으면 점심시간 종이 친다. 순간 현실로 깨어난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거나, 농구를 하거나, 다른 일로 놀던 아이들은 곧 들어가겠지.그들은 질리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잘 뛰어다녔다. 그것이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지만, 일정한 패턴은 있다. 그들은 항상 뛰어다닌다. 그리곤 나 같이 어울릴 줄 모르는 사람을 보고 ‘얼빠진 녀석’ 이라고 악의 없는 장난식으로 지껄인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그리 잘못된 걸까? 가끔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들의 유리와 같은 분노와 조금씩 핀트가 엇나가기 마련이었고, 난 어느샌가 입을 다물고 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내 장소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들을 탓한다 해도 달라질 건 없었기에, 그럴 때면 가끔 이렇게 혼자 옥상에 올라 그들과 다른 나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상상 속의 세계는 현실의 답답함을 잊게 해준다. 그게 매력이다. 여기선 손에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세계가 펼쳐져 있으니까. 그리곤 바닥에 누워 눈을 감으면, 마치 우주의 한 부분 혹은 파편이 되어 온몸이 따뜻하게 느껴지곤 한다.
가끔 비가 내려 이곳에 올 수 없을 때면, 비가 폐에 차오르는 것처럼 퀴퀴하게 숨이 막혔다. 실제로 그런 걸 경험한 게 아니라 느낌이 든단 얘기다. 해가 개일 때면 숨도 함께 트인다. 그러면 다시 메마른 작은 흔적을 찾아 헤맨다. 그런 반복은 잔인한 일 중 하나지만, 익숙해진다면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린 그렇게 상처 입고 무너지며,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던 것들을 야금야금 빼앗졌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 살아만 있으면 뭐가 어떻게 되더라도 된다. 그런 변명으로 자기를 위로한다.
문득, 부모, 선생을 포함, 어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어진 시간에 허덕이며 쫓길수록 악착 같아진 모습은 어쩐지 서글떴다. 그들도 원한 게 아니겠지만, 사람 일이 어디 그리 쉬운가? 대체 어떤 갈증과 허기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 아무리 학생과 선생이 대척 지점이 생긴다고 하지만, 그래도 알고 싶었다. 물론 이것도 저 잔소리 많은 선생을 하나, 둘 마주하면 다 사라질 얘기다.
그때,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함성이 들렸다. 한 아이가 골을 넣었다. 누구나 골을 넣고 싶어 하지만, 주인공은 정해져 있다. 오늘은 그 아이가 당첨된 것이다. 특별한 쾌감을 맛본 아이는 기분 좋게 하루를 보낼 수 있겠지.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나면, 운동하던 아이들이 다음을 기약하며 우르르 교실로 몰려들
어 갈 것이다. 선풍기 바람만으론 부족하여 공책을 부채 대신 사용한다. 하지만 열기를 식히기엔 부족하다. 아지랑이가 피는 땀내를 풀풀 풍기며 5교시를 듣다 보면, 선생은 ‘야, 창문 싹 다 열어!’같은 말을 하겠지. 그건 그들 나름대로 여름 방학 시작까지 3일이나 남은 아쉬움을 몸으로 표현한 거라 상상해본다.
며칠 전, 우리 학교 앞에 큰 아파트가 들어서기 위해 공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이 세계를 잡아먹을 듯 점점 높아지더니, 어느새 하늘에 닿을 만큼 높아졌다. 나의 작은 이상향을 그 큰 건물이 없애버렸다. 일조권 문제로 학교에 항의 전화가 있었지만, 관계자들은 돈으로 침묵한 지 오래다. 어느 정도 예상했으니 상관 없다. 단지, 이렇게 있던 나만의 세계와 나만의 시간이 없어지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어른들이 말하길 앞으로 그런 일이 더 많이 생길 테니, 자기를 어떻게 지킬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나 같은 경우는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나는 여름방학이 되기 전 마지막으로 이곳의 못다 가진 햇빛을 품고 싶었다. 그리고 여름방학 시작과 함께 작별 인사를 해야만 한다.
비틀즈의 Carry That Weight를 끝으로 방송실의 음악이 끊기고, 종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나는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그건 너무나 완벽한 꿈과 같았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안녕, 나의 이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