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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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11 14:42조회 45댓글 3유하을
버스는 비에 젖은 도로 위를 느리게 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가로등 불빛이 번져, 차창에 흐릿한 황금빛 얼룩을 남겼다.

하윤은 창가에 기대 앉아 있었다.
손끝이 차가웠다. 그러나 그 감각조차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드리운 무게에 비하면 가벼웠다.
그는 오늘 이 버스를 타기 전, 끝내 연락하지 못한 번호를 한참 바라보다 주머니 속에 휴대폰을 밀어 넣었다.

너와 나를 제외한 전부는 고요해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버스의 엔진음마저 멀어지고, 곧 숨결이 멎은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날의 기억이 스스로 기어 올라왔다.
빗속에서 마주 서 있던 두 사람,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끝내 돌아섰던 순간.
그때 하윤은 몰랐다. 한 번 돌아선 발걸음은, 다시 마주하기까지 얼마나 멀리 돌아가야 하는지를.

버스가 마지막 정류장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고, 차가운 밤공기가 밀려들었다.
하윤은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발밑의 물웅덩이가 얕게 일렁였다.

정류장 옆 가로등 불빛 아래, 오래된 벤치 하나가 있었다.
그 위에 놓인 작은 흰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봉투 위에는 짧게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누가, 언제 두고 간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윤은 봉투를 손에 쥐었다. 종이의 온도는 이미 식어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무언가가 여전히 숨을 쉬는 듯했다.
잠시 망설이다, 그는 봉투를 가슴 깊숙이 넣었다.

오늘은 열어보지 않기로 했다.
때로는, 알지 못한 채 품고 가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니까.

그렇게 하윤은 어두운 길로 걸음을 옮겼다.
비 냄새와 함께, 잊힌 목소리의 잔향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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