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 보여주실 수 있나요?”
그 말에 내 앞에 앉은 남자가 삐딱한 눈으로 날 흘겨봤다. 술집에서 신분증 보여달란 요청이 얼마나 어려운 거라고 브이아이피 룸에 앉은 마스크 쓴 남자 넷은 딱 봐도 불만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분증?”
그 말 앞에 ‘니까짓 게’같은 말이 붙은 것 같은 건 아마 내 착각이 아닐 것이다.
“네. 신분증요. 신분증 안 가져오시면 당연히 술 못 시키시는데.”
난 더 당당하게 나갔다. 브이아이피 룸에서는 절대 나대지 말라고 주의하던 사장이 머리에 아른거리긴 하지만. 그게 브이아이피 손님이든 일반 손님이든 미성년자에게 술 파는 일에는 가게의 존망 비슷한 것이 달려 있다. 그건 브이아이피 손님 한둘 빠져나가는 일로 복구할 수 없는 손실임이 분명했다.
“시, 신분증…… 신분증이요!”
윤리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난 잘못한 게 전혀 없었다. 당연하잖아! 신분증 요청하는 거 가지고. 하나도 꿇릴 건 없다. 쫄 필요도 없다고. 허리 쫙 피고 눈에 힘 준 채로 남자 넷을 차례대로 훑어봤다. 그 시선이 가운데 다리 꼬고 앉은 남자에게 도착하려는 순간.
그 남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키 되게 작아 보였는데 일어서고 보니 그 남자는 나랑 머리 하나는 거뜬히 넘을 정도로 컸다. 솔직히 좀 쫄아서 어깨 움츠리고 그 남자를 보는데, 이상하게 어디서 본 것처럼 익숙했다.
“너 여기서 일한지 얼마나 됐냐?”
“오, 오늘 처음인데! 왜!”
“사장이 우리 얘기 안 해줬어?”
그 남자는 껄렁이면서 나한테 걸어왔다. 걸음거리가 어수선한 게 벌써 몇 잔 걸친 듯했다. 이제 다시 보니 깡마르기만 한 것 같던 팔다리에 잔근육이 붙어 있다. 아, 좆됐다. 뭔 일이라도 날 것 같아.
“너네가 누군데?”
난 여차하면 도망치려고 문에 바짝 붙었다. 그 남자는 떄리기라도 할 것처럼 다가오더니 주머니에서 뭘 꺼냈다. 신분증인가? 제발 신분증이어라, 제발…… 그렇게 빌었지만 내 기도가 무색하게 주머니에서 나온 건 담배 한 개비였다. 그리고 내 앞 남자는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다.
“어……?”
아는 얼굴이다.
아니, 모를 수가 없는 얼굴이야.
“안세휘……?”
안세휘가 담배를 입에 물곤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곧 흐웁 하고 연기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안세휘. 전 멤버 고등학생으로 이루어진 유명 밴드 그룹 ‘백야’의 보컬. 미세먼지 하나 먹은 적 없을 것 같은 음색으로 유명한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니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저기 앉은 나머지 세 명도 ‘백야’의 그룹 멤버였던 건가?
이세휘가 입에서 뿌얀 담배연기를 뱉어낸 건 그때였다. 난 연기를 얼굴 정통으로 맞고 독한 담배 냄새에 콜록댔다.
“그래. 나 안세휘야.”
안세휘가 다시 내 얼굴에 담배 연기를 뱉었다. 난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손부채질을 해야 했다. 안세휘 성격 논란 많은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막 나가는 애일 줄은.
안세휘는 나랑 같은 중학교 출신이었다. 학교축제 때 지겹기만 한 춤 노래 공연만 보다가 맨 마지막 잠들기 직전 들었던 ‘백야’의 무대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이후로 유명해지기 전까지 노래도 자주 듣고 심지어는 앨범도 샀었는데.
“그러니까 그만 가주지? 오늘 나 기분 안 좋은데.”
“아니, 사람 앞에 두고 담배연기나 찍찍 뱉으면 기분 좋아요?”
안세휘가 기가 차단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오랜만에 담배 연기를 맡아서 그런지, 안세휘가 말할 때마다 풍기는 은은한 술 냄새랑 쿨워터 향 때문인지. 난 왠지 당당해지고 있었다. 짝다리 짚고 허리에 손 올리고 안세휘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백야’면 미성년자잖아요. 저흰 미성년자 손님 안 받거든요?”
“뭔 이런 애가 다 있지?”
“뭐!”
“그러는 그쪽도 많아봐야 중3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데 뭐가 잘났다고 술집에서 알바나 하고 있어?”
“나 스, 스무살이거든?”
되도 않는 거짓말을 쳤다. 난 눈 질끈 감았다. 열여덟에 술집 알바한 거 경찰한테 들키면 나도 사장도 가게도 망할 게 뻔했다. 노예령이 술집 알바가 시급이 좋대서 반반한 얼굴 하나만 믿고 면접 봤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계약서같은 것도 안 쓰고 대뜸 내일부터 출근하래서 인터넷에 쳐 본 다음에야 난 미성년자가 술집 알바 못 한다는 걸 알았다. 내가 거부할 수 있는 월급이 아니라 일단 출근하긴 했지만. 첫날부터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면접도 안 봤지. 난 노예령을 줘 팰 생각으로 애써 당당하게 소리쳤다.
“민증도 이미 나왔다고.”
“그럼 보여주던가. 신분증.”
“그, 그건 내가 할 말이고!”
안서휘가 어깨를 으쓱이고 뒤에 앉은 귀엽게 생긴 남자애가 폭소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졸업도 안 한 거 같은데? 너 구라가 지나친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중학생이라니…… 내가 그정도론 안 어려보이지 않나? 솔직히 말해서…….
“니가 더 어려 보이거든!!! 니 몇살인데 나보고 너라고 하냐 누나한테 싸가지없게!!! 술집에 있지 말고 더하기 빼기나 공부하러 가!!!”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 입을 막았다. 이세휘랑 다른 애들이 멍한 표정으로 숨이 넘어갈 것처럼 웃고 있었다. 귀엽게 생긴 남자애는 날 무서운 기세로 노려보더니 쾅쾅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아, 말실수.
“아, 아니, 잠깐 그게……”
“야!!! 나 열여덟이거든? 더하기 빼기 정도는 십 년도 전에 끝냈어!!!”
남자애가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소리쳤다. 그제야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귀여운 얼굴로 덕후몰이상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백야’의 피아노 담당 김주온. 내 친구가 얘 참 좋아하던데.
“8곱하기 7이 뭐게.”
“……오십…, 아니. 홍수 넌 좀 조용히 해!!! 나 구구단 팔단 약한 거 알면서 이러냐?”
“병신아 넌 술집에나 있지 말고 쟤 말대로 구구단이나 공부하러 가라.”
“시비 털지 마라 진짜 오늘 누구 한번 죽어볼래?”
그러다 갑자기 김주온이랑 기타(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가 싸우기 시작했다. 곱하기도 못하는 바보 고딩들이랑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이대로 두다간 진짜 몸싸움이라도 벌어질 거 같아 저지하려던 참에 가만히 듣고만 있던 드럼이 입을 열었다.
“진짜 죽을 사람 앞에 두고 지랄하지 말고 얌전히 술이나 처마셔 너네 둘 다.”
곧장 조용해진 브이아이피 룸. 숙연한 분위기가 익숙하지도 않다.
“진짜 죽을 사람? 그게 뭔 소린데?”
“넌 눈치도 없어?”
김주온이 날 보고 대꾸했다. 비난하듯이 쏘아댄 말에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뭐라고 대답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말이 나오질 않았다.
“……씨발.”
그런 날 보면서 이세휘가 낮게 욕을 지껄였다. 바닥에 다 타버린 연초를 던지더니 뒷꿈치로 세게 밟았다. 잿더미가 아무렇게나 널부러졌다.
죽는다니.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분명 여기 앉은 넷 중 누군가가 ‘곧 죽는다’는 뜻임이 분명했다. 아까 말했듯이 이 네 명은 전부 고등학생이었다. 고등학생이, 그것도 평범한 고등학생이 아닌 ‘백야’의 멤버 중 한 명이…… 죽는다니.
“야 너 죽어……?”
“유태민 이 새끼는 쓸데없는 말을 해가지고.”
“너 죽냐고…….”
“알면 꺼져 병신아.”
이세휘가 내 어깰 잡고 문 밖으로 밀어냈다. 왠지 힘이 나지 않아 난 그냥 그 손에 속수무책으로 이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저 기다란 복도 끝으로 술집 사장이 부리나케 뛰어오고 있었다.
“야 너 여기서 뭔 짓 했어!”
“아무 짓도……”
“여기서 싸우는 소리 다 들렸다는데 뭔 소리야!!!! 브이아이피 손님들 건들지 말라는 소리 못 들었어? 알바 첫날부터 이런 대형사고 치면 어쩌자는 거야, 얼굴 반반해서 미자인데 받아줬더니!”
“죄송합니다…….”
“넌 오늘부터 해고야!”
난 그렇게 알바비도 못 받고 알바에서 잘릴 수밖에 없었다.
이세휘가 원망스럽다면…… 그건 아니었다.
신분증 달라고 말한 걸 후회한다면…… 그건 맞는 것 같기도.
괜히 마음이 뒤숭숭했다. 매일 밤 듣던 ‘백야’의 노래도 그래서 듣지 못했다.
내일 학교에 가야 한단 걸 알면서도 새벽 내내 잠에 들지 못했다. 그렇게 아침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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