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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5 18:02조회 72댓글 2소야
https://curious.quizby.me/Soyy…

이번 글은 좀 도전 같은 면이 있어요
시간에 쫓기며 작성해서 급하게 전개된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좋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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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 이름에 엑소더스가 붙은 건 그저 이주 수단이기 때문이었다. 망할 거다 망할 거다 하더니 지구가 정말 망했다. 전해듣기로는 이주 직전 파도가 하늘까지 솟고 하루에 세 번씩 토네이도가 왔다고 했다.



나이 든 선생님들이 옛날 얘길 해 줄 때면 지구가 머릿속으로 어렴풋이 그려진다. 거대한 바다는 파란 색. 그리고 표면의 삼십 퍼센트 정도는 수풀로 덮여 초록 색. 그러면 파란 색 배경에 초록 색 얼룩이 져 있는 거대한 구체. 밖에서 보면 파랗게 보인다던데 푸른 계열도 조금 추가해본다. 사실 뭐 본 적이 있어야 알지. 거대한 망원경으로 천체 관측 수업 할 때나 확대에 또 확대해야 겨우 보이는 거대한 별무리들 중 작은 점 하나. 그게 지구라는 소리는 어른들 말이니까 의심스러워도 그냥 믿는 분위기.



육십년 전,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도 사십이 년 전에 엑소더스가 발사됐다. 그리고 도착까지는 이백 삼십년이 남았다. 거의 광속과 같을 정도로 달려가고 있는데도 그랬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냥 둥 둥 하고 가만히 떠서 이동하는 이 엑소더스에서 태어나고부터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암흑기, 이름하야 중간 세대였다. 우주선에서 태어나서 우주선에서 살다가 우주선에서 죽는. 평생을 유영하는 세상 속에서 다음 세대만을 기약하며 흘려보내는 인류 존속의 필수 희생자 같은 처지라는 것이었다.


처음엔 좀 억울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하루에 재앙 다섯 개 오는 지구에서 살던 사람보단 처지가 괜찮은 것 같다 싶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번에 도착하는 제 이의 지구도 물 좀 있고 공기 농도 비슷하대서 이주하는 건데 적응 기간이 얼마나 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더니 확실히 우리 근처 세대는 몇천 년이 지나도 역사서에 단단히 남아있을 것 같다. 좋은 거지 뭐.




자정이 되자마자 집을 나섰다. 권장 수면 시간인 열한 시에 맞춰 잠드는 사람들이 태반이라 거리는 스산했다. 간간히 일하는 사람이나 거리를 산책하는 사람이 보이긴 했으나 흔한 정도는 아니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엘레베이터는 집앞 산책로를 따라 오 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에 있다. 엘레베이터에 올라타 습관적으로 학교가 있는 십삼 층을 누를 뻔했지만 그대로 버튼을 타고 올라가 제일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버튼을 눌렀다. 엘레베이터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음속으로 꼭대기 층까지 도달했다. 곧바로 문이 열리자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우주가 보였다. 거대한 암흑 속에 보석처럼 박힌 별이 유리창 밖에서 빛나고 있었다. 사방을 감싼 돔 형태의 유리천장은 우리가 어느 우주를 떠돌고 있는지 여과 없이 보여주곤 했다. 얼굴을 천장에 박을 것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발 닿는 대로 이리 저리 뛰어다녔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느 우주를 맴돌고 있는지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어차피 죽기 전까지 도착 지점은 구경도 못 해볼 거 움직이지도 않는 별은 왜 봐. 그런 희망 고문 같은 생각. 그런데 난 전혀 희망 고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립된 세계가 고착화되면 세상은 망하고 말 뿐이다. 거대한 암흑 속에서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것들은 바로 앞을 스쳐가도 보이지 않는다. 때마침 뺨을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다. 부디 유영하는 세상이기를. 모든 것의 끝이 사라지기를. 도착 지점에 평생 도착하지 않기를. 뭐 그런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을.




지구의 하루는 스물네시간이다. 신지구의 하루는 스물네시간 하고 사십 몇 분이 더 있다. 그래서 미리 신지구의 하루를 살아보자는 취지로 열두시와 영영 시 사이에 이십 분 가량의 공백이 추가되었다. 손을 먼 우주에 뻗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몇백 광년을 뛰어넘어 맺힌 별들이 빛났다. 검은 우주에 얇은 실 같은 창백한 팔 하나. 팔꿈치 맡까지 흘러내려온 손목시계에서는 째깍째깍 하는 소리가 났다. 스물네 시부터 영영 시 사이에 있는 시침이 어느덧 영영 시에 더 가까워졌다. 두 별 간의 시차가 끝이 나고 있었다.















1

머리맡으로 느껴지는 빛살에 부스스 눈을 떴다. 고개를 돌려 잔 탓인지 목이 뻐근했다. 의자 등받이를 잡고 스트레칭하니 척추에서 뼈소리가 났다. 감각들이 뒤늦게 잠에서 깨 물에 빠진 스피커가 말라가는 것처럼 뚜렷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눈앞이 새하얘 찌푸린 눈꺼풀 사이로 대체로 작고 귀엽게 생긴 학생들이 생소한 교복을 입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 오늘 교환학생 오기로 한 거 다들 기억하지?

선생님이 그 애들한테 눈짓하며 덧붙였다.

- 인사해보렴.




그러자 한명씩 쭈뼛쭈뼛 나와서 말한다. 안녕 나는 사쿠라야. 반가워. 나는 렌이라고 해. 한 번 듣는 걸론 도무지 외울 수가 없는 지구의 보석 같은 이름. 나란히 선 학생들 사이 혼자 키가 반 뼘 정도 큰 아이의 이름은 스즈키 리츠였다.



엑소더스는 일 호부터 삼십 호까지 차례대로 출발했다. 우리는 십 호였고 얼마 전 우연찮게 구 호와 항로가 겹치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그래서 구 호와 십 호의 학생들 중 일부가 교환학생의 자격으로 타 우주선에 들어가 생활하게 되는 학습 활동이 계획되었다. 랜덤으로 뽑힌 내 짝꿍은 얼마 전 구 호의 우주선으로 향했고. 비어버린 짝 자리는 유독 커다란 리츠의 자리가 되었다.




- 안녕. 넌 이름이 뭐야?

자기소개 같은 건 아무래도 신통치 않다. 전교생 오백 명도 안 되는 학교에서 똑같은 애들과 함께 초등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 받아왔으니 인사는 할 필요가 없었다. 난 쭈뼛거리다 오른손을 들어올리곤 말했다.

- 그, 안녕. 난 라노야. 이라노.

- 이-랴노.

리츠가 이 자를 길게 늘여 말했다. 라 자는 랴와 다, 그리고 따 사이에서 방황하는 중간 글자처럼 들렸다. 고유명사는 번역 처리가 되지 않는다. 방금 건 진짜 리츠의 목소리였다는 뜻이었다. 교환학생이 온다고 학교에서 나눠 줬던 고급 번역기가 귓속에서 울렁거렸다. 사람이 말하는 것과 이젠 거의 구분되지 않는 번역기 속 기계의 목소리.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리츠만의 중저음이 귓속을 간질였다. 한국어라기엔 지나치게 매끈하게 발음되는 이름이 왠지 생소해서 여러 번 듣고 싶었다.



- 그렇게 발음하는 거 맞아?

- 얼추 비슷해. 너는 이름이 뭐랬지?

- 성씨는 스즈키. 이름은 리츠. 합쳐서 스즈키 리츠야.



리츠 할때 츠 발음이 독특했다. 앙다문 리츠의 덧니 사이로 바람이 새는 듯한 소리가 마치 치읓 발음처럼 들린다. 말을 끝맺지 않을 것처럼 츠으, 하고.

내가 그 이름을 꼭 불러줘야 한다는 것처럼 리츠가 둥근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스즈키. 하고 말하자 리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혀끝을 입천장에 붙이고 노래 부르는 것처럼 두 글자를 하나로 잇는다. 리츠. 하고 부르고 싶었는데 츠 대신 스 하고 허무하게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났다. 리츠가 소리 없이 웃었다.



- 얼추 비슷했어.

분명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 앞으로 서로끼리 이름 많이 불러주자. 돌아가기 전까진 똑바른 발음이 될 수 있도록.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리츠가 나보다 세 배쯤 빠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엑소더스 구 호 출신 아이들은 원래 이렇게 해맑은가. 무채색처럼 항상 조용하기만 했던 교실에 통성명을 비롯한 말들이 공기처럼 맴돌고 있었다. 매질을 타고 휘청휘청 흘러온 소란이 파동처럼 번져 내 몸에 닿을 것 같아서 고개를 책상 밑으로 푹 떨궜다. 아무래도 밝은 색은 눈이 부셨고. 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감각이 제대로 돌아온 것 같지도 않았고. 그런데 설마 눈꼽이 껴 있던 건 아니겠지. 눈을 비비고는 일 교시 교과서를 꺼냈다.


난 진도가 나간 곳까지 교과서 페이지를 넘기며 눈동자만 돌려 힐끗 리츠를 쳐다봤다. 어쩐지 꽤 큰일을 벌일 것 같은 장난끼 가득한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같은 중간 세대를 살고 있다고는 믿을 수 없도록 커다란 리츠. 지구 과목 교과서에 쓰여 있는 노벨상 같은 과거의 업적들이 책에서 튀어나와 리츠를 마구 둘러 싸고 있었다.














2

그 애들은 일본 사람이라고 했다. 우주선 삼십 호는 각자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일본에서는 우리보다 조금 더 큰 우주선을 사용한다고 했다. 한국보다 일차적으로 데려와야 할 사람이 더 많았다고. 왠지 학교 소개시켜줄 때 답지 않게 당황한다 했어. 교환학생이 온 첫날 방과후에 선생님은 교환학생의 새로운 짝꿍들에게 학교 소개를 맡겼다. 학생들이 우르르 빠져나간 한적한 학교에서 앞장서 걷는 내 발소리와 뒤늦게 따라오는 리츠의 경쾌한 발소리가 불협화음처럼 서로 다른 높낮이로 들려왔다. 난 떨리지 않는 척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여긴 교실이고. 이 학년은 육 반 까지 있어. 그 말에 리츠는 휘둥그레 놀란다.



- 육 반까지밖에 없다고? 학교가 하나 더 있는 거야?

- 아니. 십 호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부 한 곳 뿐이야.



왠지 핵심에 못 가고 계속 근처에서 곁도는 듯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건 내가 십 호의 전체 인구는 만오천이 안 돼 하고 말한 뒤에나 풀렸다. 리츠가 놀라워하며 구 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구 호의 인구는 무려 삼만 명 가까이 된다고 했다. 고등학교는 십삼 반까지 있고 항상 북적거린다고도 덧붙였다. 단순 학생 수만 따져도 우리의 두 배가 넘는다. 와아 하고 감탄하자 리츠가 쿡쿡 웃었다.



- 라노는 놀라는 얼굴이 귀여워.

- 응?

- 놀랄 때마다 입을 벌리더라. 수업 들을 때도 그랬어. 일 교시 노벨상 얘기할 때도. 과학자 노벨의 유산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니까 헉 하고 놀라던데. 귀여워.



그 말에 또 바보 같은 표정을 지을 것 같아서 고개를 휙 돌렸다.

-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귀엽다는 말이 만난지 하루밖에 안 된 여자애한테 할 말인가. 살면서 한 번도 못 들어본 종류의 단어 선택이라 떨떠름했다. 괜히 얼굴이 뜨거워서 뺨에 손등을 갖다 댔다. 창백한 손이 얕게 떨려서 주먹을 꽉 쥐었다. 귀엽긴 뭐가 귀여워. 사실 그런 반응들은 이쪽 사람들보다 구 호 사람들이 더 귀여운 편이었다. 구 호 사람들은 재밌는 얘기를 들으면 하나같이 에에, 하고 놀란다던가 거짓말! 하고 소리치곤 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새삼 우리랑은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아서 부러웠다. 다른 감정이 아니라 부러웠다. 왜 그렇게 느끼는지는 정말 나도 잘 모르겠다.



- 여긴 체육관이야.

- 에에, 크다!

- 우리도 체육 수업 있어서 자주 오게 될 거야. 참고로 지금은 농구 수업 중인데, 조만간 자유투 수행평가 보신다고 했어. 연습해두면 도움이 될 거야. 다 구경했으면 이만 가...... 지금 뭐해?

- 나 이거 만져봐도 돼?



리츠가 언제 저기까지 갔는지 체육관 중앙에 떨어져 있는 농구공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미 만지도 있으면서 뭔 허락이야. 고개를 끄덕이자 리츠가 공을 튀기더니 순식간에 허리까지 올려 단번에 잡아 던졌다. 삼 점 슛 거리에서 포물선 구도로 안정하게 날아든 농구공이 곧바로 내 앞의 골대를 울린다. 빙글 하고 망을 휘저은 공이 바닥에서 몇 번 튕기다가 내 쪽으로 굴러왔다. 굴러오는 공을 잡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되뇌었다. 나 방금 저런 애한테 농구 연습해보라고 한 거야?



- 구 호에서는 내가 진짜 큰 편이었는데 여기에서는 그 정도 못 되겠더라. 나보다 농구 잘하는 애도 있을 것 같아서 자주 연습하고 싶은데.

리츠가 공 달라는 듯이 손짓했다. 운동 신경은 꽝이라 두 손으로 공을 잡고 있는 힘껏 던졌는데 리츠가 있는 곳의 반도 못 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리츠가 앞 쪽으로 걸어오며 굴러가는 공을 잡곤 웃었다.

- 시간 되면 방과후에 같이 연습할래?



난 대답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당연히 거절하는 게 맞는데 싫다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둘만 있으면 어색할 테고 내 실력으론 농구 연습에 도움도 안 될 텐데. 고민하는 이유는 아마 리츠가 싫지 않아서일지도 몰랐다. 난 고민하다가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결국 그 질문엔 대답하지 못했지만 리츠와 난 거의 매일 체육관으로 가서 농구 연습을 했다. 당연하게도 리츠가 내 자유투 연습을 도와주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떼워야만 했다.

















3

[ 내 꿈을 조사하는 시간
모둠원과 함께 꿈에 대해 얘기해보세요 ]



진로 선생님은 그 말 칠판에 써 두고 대뜸 회의할 게 있다면서 교무실로 뛰어갔다. 선생님 없이도 학생들은 자의적으로 수업 진행을 도맡았다. 모둠은 항상 짜던 대로 자리에 맞춰 네 명씩. 조장 같은 건 없었지만 당연하게도 리츠가 암묵적인 리더 역할을 했다. 겨우 작은 마을 규모인 선내에서 진로 희망이라 해봤자 기계나 식량 관리, 공무원일 게 뻔한데도 리츠는 눈을 반짝이며 들어 줬다. 나도 그 분위기에 이끌려서 열심히 듣는 척했다. 같은 조 애들이 처음엔 자신감 없게 말하다가 끝날 때쯤엔 신나서 떠들고 있는 게 십 년 동안 봐온 모습과 달라서 신기했다.



꿈 소개 순서는 시계방향. 내가 마지막이고 리츠가 세 번째였다. 난 리츠의 차례가 오기 전까지 리츠와는 무슨 직업이 잘 어울릴까 생각해봤다. 강단 있고 말도 잘 하니 고위 공무원 쪽도 꽤 괜찮아 보인다. 공부는 안 하는 것 같은데 문제 풀이 시간만 되면 설명하는 선생님보다도 먼저 풀어내는 걸로 보아 연구원 쪽도 잘 어울렸다. 그 중에서도 미래지향 인기 직업인 토지 연구원이나 수질 연구원 쪽. 근데 리츠가 말한 직업은 완전히 그 대척점에 있는 것이었다.



- 내 꿈은 선로 관제사야.



선로 관제사는 우주 항해에 필수적으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기피 대상 최상위권에 당당히 이름 올린 직업 중 하나였다. 딱히 큰 하자도 없고 중요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기피하는 이유는 선로 관제사가 단순하게 항해할 때를 제외하곤 아예 쓸모가 없는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평생을 우주선에서 살다 가는 중간 세대에서 기피받는 이유라 치기에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냥 학생들 마음이 그랬다. 아무래도 중간 세대를 위해 우주선 운전하다 죽는 것보다는 미래 세대에게까지 발뻗을 토양 연구나 수질 연구가 훨씬 가치 있는 일 같잖아.



- 그냥 정해진 길로 잘 가게끔 조정하는 일뿐이라 별 거 아닌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되게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해. 앞을 보고 달려가는 일이잖아. 많은 사람들의 길과 꿈을 뚫고 어떨 때는 지금처럼 거대한 우연도 만들어내는 일이 멋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선로 관제사야.



그건 되게 어린아이의 꿈 같은 얘기였다. 수식어가 너무 화려해서 하마터면 나도 꿈을 선로 관제사라 바꿀 뻔했을 정도로 멋진 이야기들이었다. 모둠원들이 그 말을 듣다가 서로 눈치 살피더니 작게 박수를 쳐 줬다. 리츠가 쑥쓰러워했다.



- 다음은 다노 차례야.

- 리츠, 라노야.

- 아! 맞아. 랴아-노.




말을 말자. 슬슬 교환학생 애들한테 제대로 이름 불리기를 포기한 모둠원 애들이 날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난 숨을 몰아쉰 뒤 대답했다.


- 내 꿈은 교사야.


눈을 반짝이는 얼굴들이 평소보다 밝아 보였다.
















4

- 오늘 종례에는 조금 슬픈 얘기를 하게 될 것 같네. 구 호와 선로가 겹치게 되는 날이 확정됐어. 이십오일 저녁 여덟 시에 교환학생 친구들은 전부 구 호로 다시 돌아가게 될 거야.



뜬금 없는 이별 소식은 언제나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법이었다. 아직 월초니까 이십오일에 가는 거면 여유롭잖아, 하고 생각하는 것도 마냥 쉽지 않았다. 간만에 교실이 조용해졌다.



- 그동안 친구들이랑 좋은 추억 많이 쌓아놓길 바랄게.



우는 법은 전혀 모르는데 왠지 찔끔 눈물이 나왔다.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 우는 걸 리츠에게 들킬 것 같아서 턱밑으로 그냥 흘려보냈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이 뺨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리츠였다.



- 왜 울어.

- ......그냥.


우는 거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눈물을 멈추고 싶었는데 멈추지가 않았다. 리츠는 계속 내 눈물을 닦아 줬다. 우는 모습이 못나 보일 것 같아 고개를 돌리려는데 리츠가 내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날 빤히 바라보았다.


- 보지 마. 못생겼잖아.


그 말에 리츠는 한결같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 귀엽기만 한데.
















5

- 오늘 수행 평가 잘 봤더라.

- 응. 만 점이야.



리츠가 손에 공을 들고 드리블하며 말했다. 리츠는 그렇게 뛰어다니면서도 숨 하나 안 차는데 난 헉헉거리면서 멋 없게 대답했다. 첫날에 두 손으로 던지던 거에 비하면 많이 늘었는데 아직도 리츠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그리고 내 말을 끝으로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수행평가도 끝났고 우리 학년에서 리츠가 제일 농구 잘 한다는 것도 합동 수업 때 전부 밝혀졌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체육관에서 만나는 이유를 아직 찾지 못해서. 무슨 말이라도 떠내면 이제 목적은 전부 이뤘으니 방과후에 만나는 건 그만두자, 하는 얘기가 나올 것 같아서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숨이 차서 체육관 무대 위에 철푸덕 누워 숨을 골랐다. 리츠는 천천히 걸어와 내 옆에 마주 누웠다. 하늘 위로 학교 이름이 적힌 거대한 그랜드 커튼이 보였다.



- 몰랐는데 이렇게 아무 말 안 하고 있는 것도 답답하네. 안 그래?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리츠는 내 얼굴을 못 본다는 걸 알고 응, 하고 대답했다.

- 그러니까.


리츠가 뭐라 말하려다가 망설이더니 제 머리를 헝클였다.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리츠를 보려는데, 리츠가 이미 날 바라보고 있어서 두 눈이 무대 위에서 맞부딪힌 꼴이 됐다. 그게 마치 뮤지컬 속 한 장면같이 느껴져서 웃고 말았다.


- 그냥 계속 이러고 있으면 안 돼?

- 실은 나도 그 말을 하고 싶었어.



내 대답을 듣곤 둘이 동시에 소리 내 웃었다.



- 그런데, 리츠.

- 어....... 어? 방금 너가 말한 거야?

- 나 맞는데 왜?

- 완벽했어!

- 뭐가?



리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손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방금까지 대화하던 내용마저 전혀 기억이 안 났다. 난 반짝거리는 눈을 한 리츠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 발음 말이야!















6

삼 학년 교과서를 미리 받아들고 교실 문 열고 들어가니 두 달 전엔 서로 말도 안 섞던 애들끼리 중앙에 한데 모여서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리츠가 있었다. 벌써부터 울먹이는 애들이 교환 학생들을 제 품 가득 안고서는 다시 봐야 된다는 둥 현실성 없는 말들을 뱉었다. 전염병처럼 번진 울음이 반 전체로 옮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칠 교시 수업이 끝난 시간은 다섯 시. 교환학생들이 구 호로 돌아가기까지 고작 세 시간 남은 때였다.















7

환승 장소까지 가는 시간이 한 시간이라고 치면 늦지 않기 위해서는 적어도 일곱 시까지는 출발해야 된다. 손목시계를 보니 여섯 시였다. 애들이 자그마치 한 시간 동안이나 우는 바람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체육관에 왔는데도 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것이었다. 리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도무지 나오질 않았다. 잘 가. 보고 싶을 거야. 그런 말들은 영원을 끝내는 것 같아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부루퉁하게 리츠를 바라보고 있는데 리츠가 실없이 웃으면서 말했다.


- 귀여워.


빗질한 머리를 리츠가 아무렇게나 망가트렸다. 이 와중에 귀여워는 무슨 뜬금 없는 말이야. 난 억지로 리츠를 떨쳐내고 망가진 머리를 손으로 빗었다. 리츠가 멋쩍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젠 나도 알아. 귀여워 같은 말의 뜻. 삼 학년 교과서도 미리 받아 왔단 말이야. 일본에서는 예쁜 것도 귀여운 것도 멋진 것도 모두 귀엽다는 말로 대신하는 특성이 있다면서. 내가 귀엽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감탄사 같은 거였다며. 리츠의 귀엽다는 말에는 진심 하나 없던 적이 더 많았다. 우와, 대박, 멋져 하듯이 카와이. 엄청 카와이. 망할 번역기는 그걸 귀엽다는 말로 번역했고. 난 그냥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게 사랑의 가장 큰 패착.



귀에 쑤셔 넣었던 번역기를 억지로 빼선 주머니에 넣었다. 지지직 거리는 소리가 났다. 일본 교과서가 없이는 이제 리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내 돌발 행동에 리츠가 퍽 당황한 표정으로 뭐라 말했는데 내겐 그저 명확한 일본어로 들릴 뿐이었다. 듣기 좋은 목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왔다.


회피형 성격 탓에 확실한 대답은 듣고 싶지 않았다. 싫다고 하면 결말이 꽝인 소설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일까 봐. 막상 좋다고 하더라도 광일만큼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그러니까 우연을 바라는 거야. 아주 커다란 우연. 언젠가 다시 항로가 겹치게 되어 만날 수 있을 거라는.




- 있잖아 리츠.




좋아해. 사귀자.

이번엔 눈도 감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고장나지 않은 리츠의 번역기에서는 지금쯤 내 고백이 닿았을까. 리츠가 한발 느리게 반응했다. 안 그래도 큰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어울리지 않게 리츠는 웃지 않았다. 대답은 일본어로 들려왔다.



보쿠모 다이스키다요. 듣기로는 그런 발음.

기억하고 나중에 일본 교재에서 뜻을 찾아볼 수도 있었으나 난 그냥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리츠는 계속 일본어로 혼자 중얼거리다가 곧 내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다노.
이이,랴노.
이랴-노.
이댜뇨.



뭐 그런 옹알이 같은 소리를 하다가 멈추곤 말없이 내 이름을 곱씹었다. 두 달 동안 안 됐던 발음이 그렇게 쉽게 교정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대 없이 리츠를 바라보는데 입을 달싹거리던 리츠가 천천히 뱉은 말은.



이라노.

였다.



좋아해. 나도. 그런 말은 한국어로 알지 못하고. 다이스키. 아이시테루. 그런 말은 내가 해석하지 못했고. 우리 둘끼리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고유 명사만 내뱉으면서.



이라노. 리츠.



두 달 동안 바뀐 게 고작 시옷과 치읓 사이의 획 두 개 뿐임을 실감한다.



리츠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다가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이를 꽉 물었다.



있잖아, 리츠, 끝이 아닌 거지?

그렇게 말했는데 아무 대답이 없었다.



어쩌면 구 호와 십 호가 영원히 만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우주는 아주 넓고 광활해서, 같은 출발지로부터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어도 완전히 다른 항로가 만들어지곤 했다. 그래도, 그럼에도. 만약에 리츠가 정말 선로 관제사가 된다면 말이야.


먼 미래에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비단 교환학생이 아니더라도 내가 직접 만나러 갈 수 있으니까 말이야. 교환 선생이라던가 교환 관제사라던가 그런 제도가 생길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부디 유영하는 세상이기를.



끝내 닿지 않는 평행,
정처 없이 도는 서울의 이호선,
치매가 생겨 무작정 밖으로 나온 노인과
끝도 의미도 없이 점점 길어지는 여러 개의 문장들.



평생에 걸쳐 도달하는 평행점에 결국 구 호와 십 호가 닿는 날이 오기를. 영원히 지구에 도착하지 않기를. 리츠가 언젠가 관제사로서 십 호를 향해 방향을 트는 날이 오기를.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단어를 끝내 삼켜냈다.

입 밖으로 리츠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끝내 울고 말았다.



그리고 난 삼 학년 교과서를 몰래 빼 오며 외운 단어를 읊었다.



- 마타네 (나중에 봐)




리츠는 체육관 밖으로 도망치듯 달려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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