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늘 예고 없이 찾아왔다. 갑자기 아침 공기가 날카로워지고, 햇살은 여전히 눈부시지만 그 속에 더 이상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 모든 것이 깨끗하게 정돈되고, 그래서 더욱 외로워지는 계절.
나는 습관처럼 텅 빈 벤치에 앉아 있었다. 벤치 아래로 떨어진 마른 낙엽들은 발길에 부서지며, 얇고 건조한 울음소리를 냈다. 바스락, 바스락. 이 소리는 어쩐지 지나간 나의 시간들이 나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이맘때가 되면, 심장에 무언가 알 수 없는 '결핍'이 생긴다. 그것은 특정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명확한 사건에 대한 후회도 아니다. 그저 이유 없이 찾아오는 무언가 놓치고 지나온 것에 대한 막연한 슬픔이다.
나는 코트 주머니 속에서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꺼냈다. 씁쓸함이 혀끝에 닿는 순간, 나는 스무 살 이후로 겪었던 모든 가을을 떠올렸다. 가을은 늘 두려움으로 가득 차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다시 이 계절의 입구에 서 있다.
햇빛은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 어깨 위로 금박처럼 쏟아졌다. 그때, 바람이 불어왔다. 살짝 서늘하고, 약간의 흙냄새가 섞인 바람. 그 바람은 내 눈앞에 펼쳐진 시야를 잠시 흐트러뜨렸다. 모든 색깔이 섞였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가을을 탄다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지는 일이라는 것을. 낙엽의 소리, 차가운 공기의 온도, 햇빛의 옅어진 강도.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발밑의 낙엽 소리가 다시 울렸다. 이제는 그 소리를 외로움의 울음이 아니라, 한 해가 조용히 마무리되는 정리된 박수 소리로 듣기로 했다.
주머니 속의 식은 커피처럼, 이 감정도 언젠가는 온전히 식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빈자리에 다시 뜨거운 무언가를 채워 넣을 겨울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이 가을의 미열을 즐기기로 했다. 어쩌면 이 쓸쓸함이야말로 내가 살아있음을 가장 선명하게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감정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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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만입니다. 8월 말에서 9월 초에 돌아온다고 말씀드렸는데, 벌써 11월 중순이네요. 학업 관련된 일들도 잘 풀렸고 지병도 거의 완치되어 이제는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최근의 소설게시판은 어떤지 몰라서 조금은 두렵기도 하지만 서투르더라도 이해해주시고 읽어주시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좋은 글 많이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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