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30 16:11•조회 64•댓글 2•❦윤명
ㅡ끼익 삐그덕 끼익
낡은 침대에서 나는 귀를 관통하는
삐그덕대는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꿉꿉한 매트리스 향기가 불쾌해
아침이 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옷을 갈아입으러 간다.
똑같은 옷을 모두 입고 똑같이
맛없는 퍽퍽한 빵을 먹는다.
이곳에 얼마나 있었는지
이곳이 어딘지 제대로는 모르지만,
여기 있던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알려주었었다
우리는 버림받은 아이들이고
여기는 국가가 운영하는 보호 시설이라고 했다.
보육원도 아니고 학교도 아니고 대체 어디인지
의문이지만 이름도 지어주고
먹여 재워주니까
그리고 또 나에게 지어준
채린이라는 이름이 예쁘니까
좋은 곳일지도 모른다.
빵을 먹으며 생각했다.
어젯밤 꿨던 악몽을, 항상 나는 악몽을 꾼다 내가
흰 가운 아저씨에게 잡혀서 고문 같은 실험을 당하는 꿈 허상이지만 너무 무서웠다가
그럴 때마다 친구 연하는 나를 달래었다.
연하만이 내 삶의 이유라고 할 정도로
가족 없는 나에게 위안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흰 가운 여자와 책에서 배웠다.
창문 밖에 하늘 빼곤 본 것이 없었다.
건물, 집, 사과, 고양이, 새우튀김 무슨 색일까?
궁금하다. 한 번이라도 밖에 나가보고 싶다.
그 아주 절실함은 내 마음속을 깊이 파고들었다.
가능성 없는 허상이지만
그런걸 알아차리면
허망해
회색빛 바닥을 보며 이유 없이 멍때리며
생각을 해본다.
색깔을
한 번이라도 밖에 나가보고 싶다.
세상의 색을 보고 싶다.
붉고
누렇고
푸르고
느껴보고 싶다. 회색 벽은 지겹고
이곳이 좋은 곳이든 나쁜 곳이든
밖에 나가보고 싶다.
설령 너무 밝아서 눈이 멀더라도
너무 아름다워서 정신이 나가버려도
나가보고 싶다.
점점 남들에 말이 전부 망언같이 들렸다.
나는 남들 따위 관심 없었다.
밖을 생각하며 색을 생각하며
.
나는 연하한테 물었다.
ㅡ연하야 너는 바깥세상의 색이 궁금하니?
대답이 돌아왔다.
ㅡ응,채린아 조금 궁금하기도 하지…?
나는 되물었다.
ㅡ설령 눈이 멀고 정신이 나가도?
정적이 흘렀다.
.
서현이는 얌전한 아이다.
흰 가운 선생님이 서현이를 대리고, 잠시 나갔었다.
돌아왔었다. 그날 이후 서현이는 안색이 안 좋았다.
두려웠다 어느 날 일어나면 확죽어버릴까 봐
그리고 오늘 점심 서현이를 대리고 흰 가운 남자가
나갔다. 그 후 저녁에도 밤에도 서현이는 안 왔다.
그때까진 몰랐다. 안 오는 것이 아닌
못 오는 것이라는
아이들은 물었다.
ㅡ서현이 왜 안 와요?
ㅡ다른 시설로 이동했단다
우리는 안심했다.
멍청하게
그 흰 가운 남자는 종이를 떨어트렸다.
나는 몰래 밤에 아이들이 잘 때 종이를
가져가서 읽었다.
이름:서현
투여한 약품… 알 수 없는 어려운 단어들이
뒤죽박죽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한 단어가 눈에 비쳤다.
심장과 내장과 몸이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그 단어를 보는 순간 정신이 나가서
망상을 하고 싶었다.
ㅡ급성 간염으로 사망
다른 아이들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종이를 입안에 쑤셔 넣어서 먹어버렸다.
꿉꿉한 싸구려 매트리스에 얼굴을 박고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