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10 10:25•조회 63•댓글 3•태로태로
*픽션입니다*
투둑투둑투둑
굵은 빗방울이 온몸을 때렸다
조금 내리는 소나기 인 줄 알았던 비는 끝이 없었다
오랜만에 내리는 봄비였다
나는 비를 피하려고 지붕이 있는 벤치에 앉았지만 이미 몸이 다 젖어버려서 소용 없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형체도 잘 안보일 정도였다
나는 어쩌면 비에 모든 세상이 잠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비에 잠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
아마 서울 높은 건물의 옥상은 모두 살림터가 될 것이였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주로 이런저런 상상들을 해본다
할게 없을 때 상상이라도 하면 조금이나마 재미가 있다고 할까나 ?
철벅철벅 타악
그때 내 옆에 누군가 앉았다
흘깃 쳐다보니 내 또래의 소년이었다
그 애는 흠뻑 젖은 머리를 대충 매만지며 빗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 소년을 빤히 쳐다보았다
검은색의 곱슬기 있어보이는 머리, 위로 길게올라간 눈매가 꽤 잘생겨 보였다
소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소년의 깊은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년의 조그마한 웃음소리가 귀에 박혔다
웃음소리도 예뻤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맑게 갠 하늘을 상상하며 귀에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높혔다
산들바람같은 멜로디가 귀를 즐겁게 했다
우리는 잠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비가 서서히 멎기 시작했다
나는 휴대전화만 멀뚱멀뚱 쳐다보며 소년이 먼저 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 후로 오분, 십분이 흘러 날씨가 화창히 개었을 때도 소년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오히려 자리를 완전히 잡은 듯 해보였다
소년은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조그마한 사탕 여러개였다
“사탕을 무얼하러 들고 다니지 ?”
나는 아주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때 내 눈 앞에 사탕 몇개가 올라간 손바닥이 드리워졌다
그리고
“너 주려고”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소년이었다
내 목소리가 소년에게 들릴 정도로 컸었던가 ?
모르겠다
소년은 어느새 내게 바짝 다가와 사탕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그 상태로 멍하니 사탕들을 쳐다보았다
딸기맛, 포도맛, 오렌지맛 사탕이 차례로 놓여져있었다
“먹을래 ?”
소년의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소년은 내게 더욱 더 바짝 붙어 아예 어깨까지 마주하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고개를 돌려 소년과 사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소년은 생긋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배도경이야“
그 소년의 이름이었다
***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시계를 확인하니 일곱시 이십분
시간이 많이 남아 괜스레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어제 배도경은 집에 잘 갔을까 ?
문뜩 궁금해지면서도 잘 갔겠거니 생각했다
걔는 뭐든 잘할 것 같았다
걔의 밝고 명랑한 미소가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세안을 마치고 일찍 출근한 엄마가 식탁에 만들어놓은 김밥 몇 점을 집어먹었다
으엑
오이가 들어있었다
엄마는 나랑 같이 15년을 살아왔으면서 내 취향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엄마와 나는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나는 교복 셔츠를 입고 단추를 잠갔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넥타이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일찍 일어났다고 늦장을 부렸더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있었다
결국 나는 넥타이를 찾지 못한 채 집을 나섰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넥타이가 어디갔지 ?
엄마가 세탁했나 싶어 빨랫감 무더기도 살펴보고 세탁기 안, 건조대까지 꼼꼼히 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넥타이는 없었다
저벅저벅
나는 내 신발 앞코 부분만을 응시하며 걸었다
타악
이마에서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뽀얗고 예쁜 손 하나가 전봇대에 부딪히려던 내 머리를 감싸주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배도경이었다
배도경은 뭐가 좋은지 생글생글 웃기만 했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할 지 몰라 망설였다
“어제 사탕 왜 안받았어 ?”
배도경이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아 어제 그 사탕을 말하는건가
배도경이 내게 사탕을 내밀었을 때 나는 당황스러웠다
받을지 말지 고민하다가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서둘러 그 자리를 떴었다
그 뒤로는 정신이 없어 배도경이 나에게 사탕을 내민 것마저 잊어버리고 말았다
“….”
배도경의 표정이 살짝 시무룩해 보였다
이거 설마 내가 사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어서 그런걸까 ?
그럴리가
나는 내게 평소에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다며 잔소리하던 엄마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상한 상상이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배도경을 빤히 관찰하였다
어제는 앉아 있어서 잘 몰랐는데 키가 되게 컸다
한 180 중후반 정도 되려나
뭘 먹고 큰건지 나에게 키를 조금만 나누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55인 내 옆에 배도경이 서있으니 올려다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눈
어제도 눈이 예쁘다고 생각했었지만 가까이서 본 눈은 상상을 초월했다
고양이처럼 약간 올라간 눈매에 짙은 쌍꺼풀, 남자치고는 꽤 긴 속눈썹까지 예쁜 점을 모두 가진 것 같았다
또 왼쪽 눈 밑에는 작은 점 두개가 가로로 나란히 붙어있었다
눈물점이 있으면 미인이라던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 다음은 입
도톰하고 예쁜 색깔의 입술과 올라간 입꼬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내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배도경은 벌써 저만치 가있었다
“뭐해 ? 빨리 와”
배도경이 한쪽 손을 바지주머니에 넣은 채 고개를 돌려 말했다
아직도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웃을 때는 눈이 초승달 모양이 되는구나
배도경에 대해 하나 더 알게 되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지으며 뛰어갔다
배도경은 고개를 돌려 내 눈을 쳐다보았다
“너 이름, 유슬아 맞지 ?”
배도경이 내 이름을 불렀다
이름은 또 어떻게 알았을까
“어떻게 알았어 ?”
나는 처음으로 말을 걸어보았다
배도경은 기뻐하더니 대답했다
“그건 비밀이야”
그러면서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갖다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