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도심록 [浪漫悼心錄] 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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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03 19:22조회 41댓글 1必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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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계절의 선선함이 반지하까지 전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봄내음과 여름내음이 물씬 풍겼던 적이 어제만 같은데, 가을이 오기에 아직 마음의 준비가 다 되지 않았나 보다. 바스라진 낙엽들을 창문으로 마주하기에 아직 몸은 긴장이 절여진 상태였다.



가을의 기준도, 효과도 없지만 매일 아침 낭만스럽고 고풍스런 계절 사이에서 깨어난다는 것 자체가 소중하고 귀하다. 똑같은 궂은 일과 설거지 더미를 떠맡아도 그저 단풍 밟을 생각에 미소만 실실 지어지는 계절을 가을이라 할 수 있겠다.



새벽에 일어나 제일 먼저 창틀을 확인했다. 바닥과 이어진 창문 탓에 창틀 사이에 낙엽들이 우수수 끼기 때문이고, 바람에 버스럭거리는 소리 때문에 신이 깨게 둘 순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우의 장기이자 일상이 되었다. 우의 잠을 줄이고 신의 잠을 늘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다.



가을 태양은 여름과는 어딘가 오묘하게도 또 다르다. 파릇한 모든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여름 해와는 다르게 가을 해는 사라지는 전부를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아 우가 일이 끝나고 돌아올 때면 때론 위로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우의 폐와 신장, 심장에 검은색 덩어리가 자라났다. 영양부족과 수면장애는 늘 앓던 지병이라 근친같은 사이였지만 검은 덩어리를 마주하긴 처음이다. 기껏 라면 오십 컵 먹을 돈 아껴 비싼 병원에 왔건만 생전 처음 듣는 소식에 병원 형광등으로 눈알만 뱅그르르 돌아갈 뿐이다.



동그란 형체가 식도를 타고 위로 지나갔다. 형체가 보글보글 끓으며 위장에서 소리지르지만 우는 감각조차 무뎌진 듯 제산제만 꿀떡, 삼켰다. 가을 점심의 나른함이 우의 순환계를 죽였다.



어느새부터 일이 힘들어졌다. 하루에 세 개도 더 넘게 소화하던 모든 잡일들이 하루아침에 한 개도 버거운 신체로 뒤바뀌어 버렸다. 칠십 노인네도 거뜬히 옮길 커피잔과 설거지용 솔이 십 킬로그램 아령처럼 보인다.



신이 우에게 달라졌다 말한다. 나날이 야윈다며 우를 꼭 안았지만 마치 팔이 우의 장기를 관통하는 것처럼 감각이 무뎌진다.



열아홉의 암은 고통이자 또다른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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