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기만 하여 살갗을 아프게 스치던 바람이 주위를 빙빙 돌던 날, 그때 만난 것은 불운이었을까. 나는 그것을 몇 번이고 뇌리에서 떠나보내지 못했다.
함께 평생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약속을 한 사이. 그것은 결코 서로를 사랑하리라, 다짐을 되새기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당신은 달랐나 봐요, 어째서인 건지. 강제성이 있었다며 당신의 입에서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들이 항상 내 귀에 들려왔던 것을 보니.
그 후 시간이 지나고도 다가오던 나를 매몰차게 거절했다. 거슬린다는 이유 아래에, 아무것도 없던 그 상태로 나는 버려져 있었다. 이름뿐인 사랑에 매달리던 것은 나뿐이었구나, 여기게 될 정도로.
더 이상 서로에게 그 무엇도 가지지 않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굳이 시간 쏟자는 그 마음만은 이미 바스락 짓밟혀있었고, 당신은 여전했으니까. 서로의 사랑에 의미가 있던 것일까.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또 흘렀다. 계절들이 반복되는 순간 속, 우리들의 사이는 고요했다. 어쩌면 툭 쳐도 망가져 버릴 불안정함 탓일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머릿속에서 지워내야 했지만.
“… 아.”
*
오늘도 지나갈 뿐인 시간 속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결국 서로에게 더 이상 가지지도 못할 관심에, 느끼지 못하는 사랑은 내버려두고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한때 나를 휘어잡았으니.
“… 아. 안녕하세요, 연주 씨 남편 되십니까? 병원입니다.”
“… 예?”
급히 차를 몰았다. 브레이크가 없는 양 달리던 차는 멈출 줄 모르고 바람을 가로질렀다.
오랜만, 아니. 어쩌면 많은 시간 속에서 다시 한번 보았던 그녀의 얼굴에는 많은 고통을 겨우 이겨내는 듯 힘겨워 보였다. 더 이상의 이겨낼 힘도 남지 않은 듯 헐떡이던 숨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니까.
“보는 거… 되게 오랜만이다. 그렇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보지 못한 시간들에 잠시나마 즐거워했다는 나 자신에게 환멸이 나서, 오를 수도 없는 나락에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연주 씨는… 원래 건강이 악화되신 상태였습니다. 혹시 모르셨던 건가요?“
간호사의 말을 듣고도 그녀를 향하던 내 시선은 다른 곳을 볼 여유조차 없었다.
”당신은 어떨지 몰라도, 난 당신 생각보다 더 당신을 사랑했어요. 보지 못했더라도, 내 사랑은 진실이었으니까.“
더 이상 그런 말 하지 마, 제발.
마지막을 강조시키게 만드는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강제성에 따라 함께하게 되었던 당신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몇 번이고 고립되기를 택했다. 그리고 흘려보냈던 시간들은 결국 이 순간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당신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날 사랑한다 속삭였다. 대체 왜, 당신은 그렇게도 나를.
”차라리 후회하지라도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싱긋 웃던 순간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눈을 감았다.
삐—.
더 이상 그녀가 숨 쉬지 않음을 강하게 들이대던 기계 소리는 내가 살아 숨 쉰다는 사실마저 잊게 만들었다.
“오후 21시 14분경, 사망하셨습니다.”
깊이 후회했다. 한 번이라도 사랑한다 말했다면, 마지막 순간에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을 쏟아낼 것이 아니라 사과를 했다면 분명히 나았을 텐데.
아프기만 하는 이 감각이 미웠다. 그리고 그것에 힘겨워 하는 나 자신도 원망스러웠다. 터벅터벅 힘 없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내가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른 채, 언제부턴가 내리기 시작한 비는 아무것도 없는 마음에 쏟아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당신의 묘 앞에 섰다. 부끄러움을 뒤로하고 전할 것이 있다는 말을 덧붙이며.
“이것으로라도 전해지면 좋겠어.”
툭, 내려두고는 힘없는 발걸음을 옮겨 묘를 떠났다. 더 이상 그녀를 마주할 힘이 없다는 말을 중얼거릴 뿐,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묘 앞에는 옅은 분홍빛을 내던 시클라멘 한 송이가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도 좋다 방 안에서 속삭였던, 그리고 그것을 들은 내가 그녀에게 전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었다.
| 그대여, 마지막 순간일지라도 평온을 가득 안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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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 하신 꽃말의 단편 소설을 잘 표현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네요.
시클라멘의 꽃말에는 떠나간 사랑, 이 담겨있다 하더라고요.
다음에는 더욱 더 좋은 글로 찾아뵐게요.
https://curious.quizby.me/8X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