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위해서, 너는 나를 위해서 그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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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2 17:54조회 40댓글 1812 55120 88121
아침 공기가 유난히 맑았다.
햇살은 부드러웠고, 창문 너머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짙은 파란색이었다.
나는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병원 복도를 걸었다.
너는 환자복 위에 니트 카디건을 걸치고, 평소보다 훨씬 조용했다.

"오늘은... 밖에 나갈까?"
내 말에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크 너머로 살짝 보인 눈웃음이 여전히 예뻤다.

병원 근처의 작은 공원.
우리는 벚꽃 대신 하얀 눈을 밟으며 걸었다.
"이 길 기억나?"
"응. 우리 처음 만난 곳..."
너는 그렇게 말하며 하늘을 봤다.
그리곤 내게 환한 웃음을 보였지만, 그 표정은 너무나도 슬퍼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가슴이 먹먹했다.

점심 무렵에 카페에 갔다.
둘 다 예전처럼 커플 메뉴를 시켰지만, 네 커피는 내가 대신 마셨다.

"맛있다."
"응. 맛있어. 너가 왜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아."
"그치? 이 수술 끝나면.. 엄청 많이 마실거야..."
너가 훌쩍이며 말했다.

"...응. 그땐 꼭 같이 먹자.."

너는 그런 슬픈 눈을 한 채로 나에게 웃어주었다.
'다시 여기서 너와 함께 올 수 있을까.'

해질녘, 병실로 돌아오는 길.
창문 밖 하늘이 주황빛으로 번지며 천천히 사라졌다.
하루가 녹는 것 같았다.
너는 피곤한 듯 눈을 감았고, 나는 그 옆에서 손을 잡았다.

"나, 오늘은 안 아픈 척하려고 진짜 열심히 했어. 너 걱정할까봐.."
"진짜? 전혀 티 안 났어.."
짧은 웃음 뒤에 찾아온 정적이 길었다.
너가 눈을 감았다.
밤이 깊어갔고, 창문에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너는 내 손을 꼭 쥔 채, 아주 천천히, 힘겹게 눈을 떴다.
"왜..? 안 잤어?"
내가 조용히 말했다.
"지금 아니면... 너 못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미안해.. 이런 말해서..."

나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괜찮아. 사랑해."
"나도.."

그 말이 공기 속에 녹아 사라질 때쯤, 눈은 점점 더 내리고 있었다.
나는 너를 위해서, 너는 나를 위해서 그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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