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막 걷히기 시작한 파리 바스티유 광장. 붉은 조명 아래, 한 인물이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낮게 흐르는 현악기의 서막을 듣고 있었다. 첫 음이 떨리며 울릴 때 “I used to rule the world…”라는 가사가 속삭이듯 스며들었다. 어둠을 가르던 심장이 요동쳤다. 그는 이름을 알릴 수 없는 혁명가였다. 거리의 가면 뒤로 감춘 눈동자는 단단했으나 속에는 연대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가득했다. 가난과 억압이 판을 치는 이 도시에, 그는 프랑스 혁명의 세 마디 구호. 자유, 평등, 박애를 메아리치게 할 작정이었다. “자유여, 네 이름을 다시금 불러본다. 평등이여,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박애여, 이 손을 잡은 모두가 우리 형제자매.” 곡이 클라이맥스로 치닫자 주변 가로등이 일제히 깜빡였다. 구호를 힘차게 외친 순간, 그는 무거운 철제 발판 위로 뛰어올라, 대형 동상의 사슬을 내리찍었다. 쇠비늘이 깨지는 소리가 잔향처럼 울렸다. 관중석처럼 수십 명이 모여든 광장은 한때 사슬에 묶였던 역사의 무대였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다시 쓰여질 새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동상 밑에 숨겨뒀던 대형 트리콜로르 깃발을 꺼내 흔들며, 모두에게 다가갔다.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 억압받던 자들도. 우리는 세상의 불공평을 부수고,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잡는다.” 곡의 브릿지 부분, 디지털 피아노가 고조될 때 사람들은 저마다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녹화를 시작했다. 삐뚤어진 웃음이, 이제는 동지의 미소로 바뀌었다. 트리콜로르가 바람을 타고 휘날리자, 수천 송이의 불꽃이 밤하늘로 터졌다. 이어폰으로 들려오던 마지막 코러스가 절정에 다다를 때, 그 소년은 고갤 들어 달빛 아래 묵은 벽화 한 켠에 적힌 작은 글귀를 보았다. “비록 왕관은 떨어졌으나, 삶은 여전히 만세를 부른다.” 그의 가면 뒤 미소는 이제 단순한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억압된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져 부르는 찬가, “Viva la vida!”였다. 자유, 평등, 박애. 이 오래된 구호는 오늘도 새로운 혁명이 되어, 그의 심장과 도시를 모두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