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3 00:39•조회 64•댓글 0•청해
나는 오래전부터 누군가와 함께 살아왔다.
그 존재는 형체가 없고, 이름도 없으며, 말을 걸지도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한다 이건 망상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아니, 믿어야만 한다.
벽지는 곰팡이로 얼룩졌고,
천장은 무겁게 처져 있었다.
밤이면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마치 어디선가 피가 스며드는 것처럼 느껴졌고,
때로는 그것이 현실이길 바랐다.
내가 미치지 않았다면,
적어도 누군가의 의지가 섞여 있다는 뜻이니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시계는 돌아가지만,
바늘은 나를 조롱하듯 그 자리에서 맴돌았다.
새벽 3시가 되면 방 안의 공기는 변한다.
살갗 밑에서 꿈틀거리는 감각,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차가운 손길.
실제 감각이라기보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기어나오는 환각과도 같은 공포였다.
며칠 전, 식탁 위의 커틀러리 세트가 뒤섞여 있었다.
숟가락이 젓가락 위에, 나이프는 접시 바깥으로.
내가 완벽하게 정렬한 사적 영역에 침범이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불을 끈 시각, 방 안 온도의 변화, 들리는 발소리, 머릿속으로 침투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는 나였다. 그러나 분명히, 나는 아니다.
“네가 혼자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나는 너랑 함께였어 ㅎㅎ”
그 낮은 중얼거림은 귀를 찢듯 스며들었다.
나는 소리를 없애기 위해 머리를 벽에 부딪쳤다.
잠시 동안만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 고요는 금세 악몽처럼 다시 돌아왔다.
며칠 전, 냉장고 속에서 비닐에 말린 덩어리를 발견했다.
처음엔 돼지고기라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것은 인간의 손과 닮아 있었다.
관절, 손톱, 피부 질감.
나는 울지도, 토하지도 않았다.
그저 프라이팬 위에 올리고, 소금도 치지 않은 채 씹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을까.
아니, 분명히 깨닫고 있었지만,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오늘, 벽장 속에서 또 다른 일기장을 발견했다.
내가 쓰지 않은 일기장. 그 안에는 내가 자는 동안의 행동, 숨소리, 꿈속 단어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글씨는 내가 쓴 듯 똑같았다. 나는 이걸 쓴 기억이...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제, 완전히 자리를 바꿔도 되겠지?”
“다음엔 네가 냉장고에 들어갈 차례야 ㅋㅋ"
지금, 나는 무언가에 쓰이고 있다.
이 글이 내가 쓰는 것인지, 당신이 읽고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러니, 제발—
절대 404호의 문을 열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