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curious.quizby.me/Soyy…발끝에 차가운 모래가 닿을 때마다 간질거렸다. 가끔 실수로 조각난 조개껍질을 밟으면 맨살에 핏물이 몽글몽글 스며들기도 했다. 밤에 오는 바닷가는 파도가 모래를 치는 소리밖에 나지 않아 좋다. 파도는 규칙적으로 밀려오고 모래가 쓸려나갈 때마다 내 세상도 함께 깎이는 기분. 되게 묘한 기분. 흉조를 떨쳐내고자 팔을 허우적거렸다.
해안선을 따라 바보처럼 달렸다. 발을 디딜 때마다 모래가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쏴아아, 쏴아아, 하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바다를 돌아보니 달빛이 밝다. 차가운 바람이 밀려오고 있었다. 쐬어오는 해풍을 맞으러 고개를 들었는데 순간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무릎이 따끔거린다. 모래에 쓸려 상처가 생긴 듯싶었다. 일어설 힘이 없어 엎드린 채 고개만 들어 바다를 보니 다리 한 쪽이 부러진 기러기가 끼룩끼룩 울고 있었다.
ㅡ 죽지 않을 거지?
그렇게 속삭였던 봄날이 어제같은데.
ㅡ 세상엔 영원한 것도 있어.
영원한 것이 있다고 그랬던 사람은 봄날 이상기후로 삼십 도 넘는 열대야가 들이닥친 날 삼십 도보다 더 높은 온도로 시름시름 앓다 이내 죽어버렸고. 난 영원같은 건 없다는 걸 그날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게 쉽게 죽어버릴 거면 나한테 희망은 왜 준 거야?
네가 죽은 뒤 사람들은 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쉽게 잊었다.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며 난 벚꽃을 보내고 여름을 맞이했다. 네가 없는 세상에서도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난 내 모든 걸 너에게 줬고 네가 죽은 이후로는 그 모든 것도 가질 수 없었다. 넌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내 한 숨까지 앗아가겠지.
심장을 다 뜯어버리고 바닷가로 뛰어들었다. 바닷물이 찼다. 바닷물을 가르고 싶었는데 버둥거리기밖에 더 못 했다. 손으로는 허공을 쥐고 다리는 더이상 바닥에 닿지 않았다. 바다는 압력이 높아서 좋았다. 바다에 머리끝까지 담굴 때면 심장이 주먹만큼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숨 쉬기가 힘들어, 죽고 싶어, 살고 싶어, 허우적, 허우적.
결국 난 다시 해변가로 떠밀려왔고 한가득 먹은 바닷물을 몇십 분동안 내리 게워내야만 했다. 파도와 함께 바람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찰나 우연찮게도 벚꽃잎 하나가 하늘을 날았다. 달콤한 꽃내가 풍겼다. 난 나도 모르게 그 벚꽃잎을 따라, 벚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방향을 따라, 밤이 가는 줄도 모르고, 해가 뜨는 줄도 모르고, 달렸다. 해변가를 달렸다.
날이 밝으려는 그 순간 벚꽃나무가 보였다. 봄은 분명 지나갔을 텐데? 완전히 개화한 벚꽃잎이 나무를 한가득 껴안고 있는 꼴은 퍽 비현실적이었다. 한여름 열대야에 벚꽃이 핀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새벽 삼십 도에 꽃이 피었던 건 네가 죽었던 그날이 유일했다. 혹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건 알지만, 어쩌면.
너는 벚꽃나무가 되었구나.
발끝에 차가운 모래가 닿아 간지러웠다. 조각난 조개껍질이 심장을 쿡쿡 찔러댈 때마다 핏물이 솟구치곤 했다.
아무래도 이상하겠지.
내 얼굴이 벚꽃잎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굴이 녹아내리며 후두둑 벚꽃잎이 쏟아졌다. 영원은 없다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온 몸에서 벚꽃향이 났다. 죽어간다는 감각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손끝에서 꽃이 피고 가지가 자라나고 발끝에서는 뿌리가 내려 모래 사이로 스며들었다. 난 굳어가는 몸을 이끌고 겨우겨우 움직여 거대한 벚꽃나무에게로 걸어갔다. 여름에서 봄으로. 낮에서 밤으로. 시간이 역행한다.
/ 그러면서 여름에 봄이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