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 어연 1년 ] 003 + < 피드백 큐리어스 공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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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09 18:53조회 81댓글 75eo1z
그이의 납골당. 순이는 이 무덤들이 전부 언덕이라 생각했는지 신이 나게 뛰어다녔지만, 나는 그이의 비를 눈 앞에 두고 도무지 걸을 욕심이 나지 않았다.

편안히 못 죽고도 그이를 위해 제사상 하나 올려주지 못하던 나를 또 원망했건만... 영정사진 속 그대는 어찌 이리도 행복하게 웃고 계시는지...

* 순이야, 여긴 웃을 데 아니다.

나는 순이의 손을 잡고 가만히 그이의 비를 바라보았다. 아직 오래되지 않은 반짝한 묘비의 빛 비침이 나를 더욱 옭아매게 했고, 더 책망하게 만들었다. 그이는 알까. 내가 이리도 그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 가서 냉이 좀 따오거라.

순이는 잠시 멀뚱히 나를 올려다 보다니 이내 발걸음을 옮겨 뒷산 냉이산으로 향했다. 순박히 산만을 쫓아 달려가는 저 소년이 나의 아들이라니... 나는 점점 그이의 얼굴이 잊혀져가는 것을 느끼곤 산소의 맨 봉우리를 쳐다보았다.

* 어찌 이리도 빨리 가셨어요... 조금만 찬찬히 가셔도 하여금 행복하셨을 텐데...

순이의 펄럭이는 하얀 옷자락. 그가 끌려가기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순이에게 사주었던 저 옷은 아마 순이에게 가장 아끼는 옷이었을 거다. 손빨래 함 해준대도 그리 싫어 품 안에 꼭꼭 안고 자던 아이가 이젠 늠름히 삽질하는 소년이 되었다니. 순이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그이의 순수했던 모습이 겹쳐보였다.

* 순이는 내가 잘 키울테니 하늘에선 웃고만 계시구려.

나는 우거진 수풀 사이로 빼꼼 보이는 하얀 옷자락을 따라가며 하늘을 향해 조금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이제 그대에게 선포할 것이다. 하늘에서 지켜보라고. 순이는 내가 아주 폼 나는 숫놈으로 기르겠다고.

~

* 순아, 어여 밥 먹그라.

오늘도 반찬은 된장 냉이 무침에 고추장 냉이국. 오랜만에 먹는 매콤한 맛에 나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순이는 매운 것도 참고 잘 먹는지, 식사 내내 물 한 방울 없이 냉이국을 꿀꺽꿀꺽 잘도 삼켰다.

* 어매, 저는 서당은 언제 다님까?

순이가 먹던 숟가락을 상에 내려 놓으며 물었다.

* 왜, 서당 다니고 싶드나.

* 동네 애들이 내만 서당 안 다닌다 놀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서당을 다니지 않는다는, 고작 그런 사실이 순이를 겁되게 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 했다. 아니,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애써 무시했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

* 일단 알았다. 밥부터 먹으라.

내가 지금 남은 돈이 얼마나 되었더라. 아마 두 전(대략 이 만원)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서당에 보내려면 적어도 닷 냥 (대략 오십 만원)은 있어야 한다고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

* 나는 서당 안 다녀도 괜찮아.

순이의 사기(士氣) 섞인 말에 더욱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돈은 없고, 서당엔 보내야 하겠고. 참으로 걱정이 많아지는 아침이었다.



큐리어스 : https://curious.quizby.me/5eo1…



+ 5eo1z의 피드백 큐리어스는 다음주 금요일까지만 진행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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