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사과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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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1 20:23조회 38댓글 1이오
첫 사과향이 코끝에 스며든 이후로, 그 짙은 잔향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넌 아마 모를 거다. 내 마음이 네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감정의 늪에 빠져 있다는 것을.

네 무심한 말 한마디에 놀라고, 네 스쳐 지나가는 목례 한 번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네 낮은 속삭임에 괜히 설레어하는 나는, 너를 향한 깊은 공상에 빠져 하루 종일 네 생각뿐이였다.

사랑은 자해와 같다고 스스로 결론 내렸다. 무해했던 추억들을 감싼 채, 나를 깎아내리는 흉측한 아픔의 잔재가 될까 봐. 그토록 바라던 네가 조금씩 다가올 때마다, 나는 늘 두렵게만 느껴졌다.

이 사랑이 결국 아프게 끝날까 봐. 네가 하는 모든 말이 나만을 위한 진심이 아닐까 봐, 가식일까 봐.
'내가 널 좋아해?' '네가 날 좋아해?' 이 질문들을 수도 없이 되새기지만, 매번 같은 허탈한 결론을 짓는다.

어쩌면 말이야.
진전 없는 결핍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너에게 다가서는 용기, 너의 진심을 확인할 용기, 그리고 상처받을 용기. 그 모든 것이 부족한 채, 나는 이 결핍의 거리를 유지하기로 선택할께.

이 멈춰 선 시간만이 어쩌면 너를 향한 내 감정의 순수함을 가장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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