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7 21:15•조회 48•댓글 1•윤정하🪻
비가 내리기 시작한 건 그가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처음엔 작은 방울들이 아스팔트 위에 떨어지며 한두 번의 떨림을 만들더니, 곧 그 세기와 속도가 점점 커졌다. 하늘은 무겁고 어두웠고, 마치 비가 내리는 것이 그의 마음을 대신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날, 그는 집에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집은 그의 마음을 담아두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오랜 시간 동안 텅 비어 있었고, 그는 그 공간을 완전히 비워두지 않으면 마음속의 무언가가 더 밀려들 것 같았다. 그런 것들—후회, 갈망, 이룰 수 없는 꿈—이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비가 점점 세차게 쏟아졌다. 그의 얼굴에 물방울이 튕겨 나갔다. 그는 무심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멈춰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 비는 그가 잃어버린 시간을 씻어내고, 지나온 상처를 씻어내기 위해 내리는 것 같았다. 그의 마음은, 마치 이 비처럼 흐르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씻어내려고 해도, 여전히 남아."
그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어느새 거리를 걷고 있는 자신을 보고, 조금은 멍한 표정으로 웃어 보았다. 그도 비처럼 흩어져 사라질 수 있을까? 계속해서 그곳에서, 그리고 그 자신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면—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리운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이 다시 찾아오지 않게 되면 어떡하지?
비가 내리는 동안 그는 몇 번이고 그 질문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그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점점 더 빨라지는 발걸음으로 거리를 걸어갔다. 흙먼지가 비에 젖어 땅에 퍼지고, 도로 위에는 차들이 지나가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이 비는 지나갈 것이다. 어느 순간 멈추고, 그가 다시 살아가야 할 삶이 다가올 것이다. 그때까지 그의 마음속에서 비가 내리기를 계속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