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3 22:03•조회 35•댓글 1•log
네 두 눈은 나를 향해 있었다.
온갖 증오로 가득찬 채.
- 도대체 원하는게 뭐야! 나한테 왜 그러는건데?!
사실 원하는 것은 딱히 없었다. 그저 네가 갖고싶었으니까.
너의 두 눈이, 너의 온몸이 좋았다. 그래서 더욱 갖고 싶었다. 나만 너를 소유하고 싶었다.
- 원하는 거? 그런거 따윈 없어. 나는 그냥 네가 내 옆에만 있으면 되니까.
그 애는, 나를 허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원하는 게 고작 그게 다냐는 듯이. 허공에 비친 눈빛으로.
- ... 미쳤어? 이거 범죄야. 알아? 내가 너 경찰에 신고할거라고!
그 애는 방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고, 나는 목에 걸려있던 헤드셋을 귀에 껴 소리를 필사적으로 틀어막았다.
- 그래서? 어쩌라고. 너 신고도 못하잖아. 그 묶여있는 몸으로 어떻게 신고를 할건데?
그러자 그 애는 급작스럽게 입을 다물었고, 나는 피식 웃으며 헤드셋을 벗어 다시 목에 걸었다.
- 귀엽기는.
그래, 저 눈을 보고싶었다. 마치 새까만 우주 같기도, 푸르른 바다 같기도 한 저 눈. 그 애는 분명 허공 같이 멍한 눈이었지만 나는 그 눈이 정말 보고팠다.
- 너 진짜 역겨운건 알지?
고작 내게 한다는 말이 저거라니. 욕 한마디 하지 않고는... 내가 역겨운 것? 당연히 안다. 아니, 모를리가. 아마 내가 제일 잘 알 것이다. 그래도 나는 너를 만나게 된 나 자신을 사랑한다. 아마, 그 애보다 더.
- 그럼, 알다마다. 몇 년 전부터 알았지.
내가 그 애를 스토킹 한 것이 몇 년 전부터였으니, 내가 역겨워진 것도 몇 년 전부터로 세어야겠지.
- 도대체 왜 이러는거야... 정상적이게 연애하는 방법도 있잖아...
이제 그 애는 그 예쁜 눈으로 물을 흘리고 있다. 내 앞에서. 나는 그 애의 턱을 잡아 나와 눈을 맞췄고, 눈물에 젖은 두 눈이 유리구슬처럼 반짝였다.
- 아, 너랑 내가? 연애? 허, 참... 얼토당토 않는 소리 좀 그만해. 이렇게 안하면 너랑 내가 만날 기회라도 생겼을 것 같아? 응? 말해보라고!
그 애는 몸을 잔뜩 움츠린채 날 두려운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아, 이 희열감. 정말 오랜만이었다. 항상 이 상황만을 고대하며 널 기다렸다. 네가 내 손에 떨어지는 그날까지.
- 쫄지 마. 나를 비롯한 내 목숨은 이제 네 것이고...
나는 그 애의 목에 걸린 목줄을 내 쪽으로 주욱, 땡기며 말했다.
- 나는 여기에 너를 평생 가두고 너와 살아갈 예정이거든. 네가 라푼젤이 되는거야! 정말 환상적이지 않아?
그 애는 나와 맞닿은 손을 부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아아, 나의 사랑스러운 라푼젤. 그대는 내게 머리카락을 이리도 많이 떨어뜨려주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