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9 11:03•조회 76•댓글 1•련
멀어지는 숨소리와, 비의 왜곡된 결정과, 네가 물들인 여름, 사랑. 그 모든 것들이 오늘이라는 점에서 멈추었다. 그 암흑같은 점은 마치 네 눈과 닮아 형용할 수 없는 그리움을 일으켜, 그때의 오늘은 아직도 생생하다. 네가 손 흔들며 떠나갈 때. 너를 애정한다는 걸 알았을 때, 그로인해 사랑했을 때, 네가 좋아하는 우유를 양보했을 때까지 전부 다. 그 뒤의 암흑은 떠올리기 힘들지만 말이다.
(……)
때는 작년, 화창한 여름날.
네가 이사라는 단어를 처음 토해냈을 때, 나는 그저 멍청이의 방황이라 생각했다. 우리 마을은 옆 동네에 비해 깨끗했고, 사람들도 친절했으며 학교도 그럭저럭 좋았다. 그런데 굳이? 그런 여러 이유로 말렸지만 너는 말했지, 멀리 떠나지는 않을 거라고, 더 좋은 동네를 찾아본다고. 그 말에 안심했지만 네가 떠난 이유는 불가사의였다. 그렇지만 캐묻진 않았다. 네가 말을 안 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테니까.
나중이 되서야 알았다. 네가 아버지,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이에게 맞았다는 사실을. 왜 말 하지 않았냐며 따졌지만 그저 살짝 미소짓는 너였다. 아직 아빠가 마을에 남아있어 두려워 이사하는 것 뿐이라며 나를 안심시켜는 네가 너무나도 한심했다. 정확하는 내가. 위로받아야 하는 건 너인데, 그 대상이 정작 나였다. 그런 나를 포용하는 네가 어찌나 천사같던지……
그 후 아침. 네가 놀자며 소리쳤지. 처음엔 무슨 일이지 싶었다. 그래도 오늘따라 밝게 웃어보이는 너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그래, 그저 좋았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내가 잡은 손은 참 따뜻했지만 그때의 우라는 차가운 현실에 놓여있었다. 이 미운 세상은 너의 측은한 진전을 막지 않았다. …… 와서 하는 소리가 일주일 후의 이별이라니, 얼마나 터무니 없는가?
네 부모를 증오한다. 왜 널 아프게해서, 두렵게 해서, 왜, 왜, 왜, 왜. 왜 우리를 갈라놓을까. (……) 이별의 시간은 빠르게 다가왔다. 누구보다 행복했던 우리는 옛 시절 추억에 자리잡았고 너는 닿을 수 없는 환상이 되었다. 가장 사랑했던 너여서, 그 현실을 강하게 부정했지만.
……
점점 멀어지며 손을 휘젓는 너를 보고, 설움이 폭팔해버렸다. 그치만 웃어야 했다. 우리의 마지막을 슬픔으로 장식할 수는 없으니까. 너 또한 환하게 웃었지만 어쩐지 눈시울이 붉었다. 그 후 벌게진 눈가의 형태가 흐려지고, 너의 모습도 멀어져 갔다. 희미하게 남은 향의 잔재가 내 옆을 잠시 머물 뿐.
이제 더 쓸 내용이 없다. 낡아버린 일기장과 내 모습이 이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있을까. 그치만 그 속에 그윽하게 담긴 추억은 아직 푸르다. 새파란 풀잎이며, 농담을 주고받는 그리운 우리이며, 환희 웃는 네 얼굴이며. 그립다, 하지만 닿을 수 없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이다. 그렇지만 난 절대, 절대 잊으면 안된다. 나는 앞으로도 우리의 야속한 세월을 마음 속에 꼬옥 담아 간직할 것이다. 평생동안. 그러니까, 그러니까 너도 기억해 주지 않으련? 마침표 이전에, 그때 염원한…
……
동경했던 우리의 청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