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21 14:16•조회 39•댓글 0•한 결
높은 빌딩 숲 위로 저녁 바람이 스쳤다.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끊임없이 번져가며 밤하늘을 수놓았다. 내 마음은 그 불빛보다도 더 번잡한 흥미로 가득했다.
“이젠 더 이상 네 얘기가 중요하지 않아.”
그 말이 내 입에서 마치 팝콘처럼 가볍게 터져 나왔다.
“네 사소한 감정들에 내 시간 낭비는 이제 그만. 난 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야.”
내가 무관심하다고 투덜댔던 너.
어느새 내 화려한 생활에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했던 너. 날 이해한다며 맹목적으로 추종하던 너의 눈빛까지.
쓸데없이 감성적인 말로 애원하는 네가, 귀찮았다.
처음엔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만난, 잠시 스쳐가는 호기심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나는 이미 다음 장을 펼치고 있었다.
네가 모르는 전율을,
네게 들려줄 필요 없는 농담들을,
새로운 사람들과 마음껏 나누고 있었다.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손끝은 우아하게 움직였다.
몇 달 전 네가 애써서 맞춰주려 했던, 값비싼 브랜드의 커플 시계. 어차피 관심도 없었지만, 너를 끊어낼 핑계로는 딱이었다. 다이얼 위로 도시의 빛이 비쳤다. 그 빛은 나의 새 출발을 축하하는 듯 찬란했다.
“네가 우리 기념일을 따지고 있을 때, 난 이미 이 시계를 누구에게 팔지 생각하고 있었어.”
나직이 읊조리는 목소리에는 일말의 미동도 없었다. 가슴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잠시 시계를 만지작거렸다. 불필요한 감정들이 서서히, 재처럼 날아가 버렸다.
“더 이상 너에게 쓸 시간은 없어.”
손목에 있던 시계를 풀었다. 홀가분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버려진 건 시계가 아니라, 네가 나에게 부여하려 했던 부담감이었다.
모든 게 과거였다. 너의 사랑, 너의 집착, 다 부서진 채 지워져야 했다.
시계는 내 손에서 매정하게 미끄러져 테이블 구석에 놓였다. 그 위에 켜진 스크린은 여전히 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밤거리는 빠르게 흩어지며 그 위에 다시 도시의 불빛이 번졌다.
한순간, 반짝임이 나의 무덤덤한 표정과 겹쳐 보였다.
아프도록 자유로웠고, 그래서 더 완벽했다.
나는 여유롭게 몸을 돌렸다.
끊임없이 번져가는 불빛만이 내가 버린 관계의 그림자를 덮어버리고 있었다.
~
🪽: 본계가 누구일지 맞춰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