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31 00:00•조회 261•댓글 15•바다
창문은 있었다. 그러나 바깥을 보여주진 않았다. 철창이 촘촘히 박혀 있고, 유리는 뿌옇게 긁혀 있었다. 그 너머에는 빛도 그림자도 없었다. 나는 그것을 창문이라 불렀지만, 사실은 벽의 상처였다.
“여기… 왜 이렇게 어두운 거지?”
낯선 목소리가 내 귀를 스쳤다. 나는 몸을 움츠렸다. 목소리는 옆 침대에서 들려왔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병동은 축축했고, 형광등은 간헐적으로 깜빡였다. 불빛이 내 신경을 날카롭게 긁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오래된 왁스 냄새가 배어 올라왔다.
“괜찮아..”
낮게 중얼거렸지만, 대답은 없었다
낮에도 환자들은 속삭였다. 벽을 향해 앉아 중얼거리는 자, 밤마다 웃으며 우는 자. 웃음은 아이 같았다가 곧 흐느낌으로 뒤엉켰다.
“왜 아무도 날 안 봐주지…”
혼잣말에 또 다른 목소리가 덧붙였다.
“여기 있잖아… 같이 있어.”
뒤돌아보니 침대는 비어 있었지만, 속삭임은 귀에 남았다.
거울을 보았다. 세면대 위 작은 거울은 금이 가 있었다. 내 얼굴이 틈마다 조각나 있었다.
“ 왜.. 웃고 있는 거지?”
분명 나는 웃지 않았다. 웃지 않았는데 거울 속 내가 먼저 웃는다.
“이리 와.”
내 목소리였다. 아니, 나와 똑같이 생긴 그가 흉내 내는 목소리였다.
밤이 깊고 복도가 텅 비었다. 문이 닫힌 병실마다 숨소리가 들렸다. 낮게 읊조리는 기도, 발버둥 치는 소리,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나는 끝에 놓인 문만 바라보며 걸었다.
“이쪽이야.. 여기로 와”
문 속 속삭임이 나를 유혹했다. 손잡이를 잡자 차갑고 묵직했다. 밀어보니 쉽게 열렸다.
안에는 침대 하나, 구겨진 시트, 오래된 구두 한 켤레. 그리고 창문. 달빛이 들어왔지만, 은빛이 아닌 차갑고 날카로운 빛이었다.
“봤지?”
나는 달빛 속에서 누군가의 눈을 마주쳤다. 그 얼굴은 내 얼굴과 닮아 있었지만, 미소가 기묘하게 뒤틀려 있었다.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창문 속에 비친 내가 웃었다.
“도망치려는 순간 깨닫겠지, 네가 믿던 건 다 허상이라는 걸.”
형광등이 깜빡이며 꺼졌다.
어둠 속, 나는 여전히 그 창문 앞에 서 있었다. 창문은 사라지고, 남은 건 흰 벽뿐. 오래된 벽에 새겨진 또 하나의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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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써보는 정신병동 글 | 해석은 자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