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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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3 19:16조회 34댓글 0유결
메에- 한 여름 날, 나는 조용히 길을 걸었다. 바람이 머리칼 사이를 스치고, 발밑의 낙엽이 사각거리며 사라졌다. 오늘 남긴 발자국이 내일이면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나는 멈추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모래 위에 새겼다. 마치 손안에 쥔 작은 모래시계 속 모래알처럼, 흘러가는 시간은 멈추지 않고, 나도 모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짧고, 그러나 강렬하다. 손을 잡으면 세상이 잠시 멈춘 듯 느껴지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모래알처럼 소리 없이 흘러가는 순간들을 본다. 어느새 내 마음속 모래시계에는 남은 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아무리 숨기려 해도 느낄 수 있다. 그의 웃음 속에서 행복을 찾으면서도, 나는 그 행복이 오래 머물 수 없음을 이미 안다.

창밖으로 하늘이 붉게 물들고, 저녁빛이 모래시계 속 모래알처럼 천천히 떨어졌다. 하루가 끝날 때마다, 나는 남은 모래를 바라보듯 내 마음속 시간을 살폈다. 그 모래가 다 떨어지기 전에, 나는 그와 나눈 모든 순간들을 마음에 새기고 싶다. 사랑하고, 웃고, 손을 맞잡는 일들이 결코 헛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밤이 찾아오면 나는 바람에게 편지를 건넨다. 종이 위에 적힌 글씨가 삐뚤삐뚤하지만, 마음만은 단단하다.

“오늘도, 당신을 사랑했어요.”

이 편지가 바람을 타고 흘러가 언젠가 그에게 닿기를, 모래시계 속 모래처럼 느리지만 분명히 기억되기를.

다음 날, 발자국은 파도에 씻겨 사라지고, 모래시계 속 모래는 또 한 알씩 떨어졌다. 나는 안다. 사라져도, 흔적이 남지 않아도, 사랑이 내 안에서 빛나고 있다는 것을. 남은 모래가 다 떨어지기 전까지, 나는 오늘을 살아간다.

흩날리는 낙엽과 바람, 파도 소리 속에서, 살아 있음과 사랑을 느끼며, 내 마음속 모래시계를 조심스럽게 지켜가며.

아아- 이젠 남은 모래알이 별로 없다.
“사랑해,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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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인물, 즉 시한부이다. 삶의 덧없음을 누구보다 깊이 느끼며 살아가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과 기억을 마음속에 새기려 애쓰는 이야기다.

모래시계 속 모래알은 남은 시간, 발자국이 파도에 씻겨 사라지는 모습은, 삶의 덧없음과 시간의 유한함, 떨어지는 낙엽과 저녁빛은 남은 시간과 같이 사랑과 기억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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