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쏟아지는 도시, 무수히 쌓인 빗방울이 깨진 유리창에 부딪혀 소리 없이 부서졌다. 안은 캄캄했다. 검은 어둠이 가득 찬 공간. 숨소리조차 얕고 무거웠다.
손끝이 차가운 콘크리트 벽을 더듬었다. 벽에는 무심한 누군가가 긁어낸 듯한 깊은 흠집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심장은 미친 듯 뛰었고, 눈앞은 침침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해.”
속삭임이 아니라, 온몸이 아파서 느껴지는 절박한 욕망. 그러나 움직일수록 벽은 점점 가까워지고, 바닥은 미끄러웠다. 숨이 막혔다.
주변은 미로였다. 끝없이 반복되는 어둠과 폐허, 그 속에서 뒤틀린 형상들이 꿈틀댔다. 무언가 쫓아오는 듯한 발소리도 들렸지만, 고요 속의 환청인지, 아니면 실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너는 이미 늦었어.”
누군가 말했다. 그 목소리는 차갑고 건조했다. 다가오는 숨결조차 느껴졌다. 그것은 존재하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찢어질 듯 가까웠다.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몸은 뒤로 넘어졌고, 그 순간 온몸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눈을 뜨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닥도, 벽도, 하늘도. 온통 끝없는 검은 심연이었다.
그 심연 속에서, 수많은 잔상이 춤추듯 나타났다. 잊혔던 기억, 고통, 절망. 그 모든 것이 다시금 몸을 할퀴었다.
그 찰나, 손이 무언가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성 물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것은 오래된 칼이었다. 날이 녹슬었고, 손잡이에는 희미한 피 자국이 묻어 있었다.
칼을 쥔 순간, 뒤에서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속삭였다.
“마지막 선택을 해.”
칼을 들었지만, 손은 떨려 제대로 힘을 주지 못했다. 몸이 점점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자신을 삼키려는 심연이었다.
“끝내고 싶니?”
그 질문은 현실보다 더 선명했다. 고통을 멈추고,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싶은 욕망.
칼날이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느리고도 확실했다. 그러나 그 순간, 빛 한 줄기가 심연을 가로질렀다.
어둠과 빛의 경계가 흐려졌다. 차갑던 손이 뜨거워졌고, 떨리던 마음이 잠시 멈췄다.
그 빛은 희망일까, 아니면 또 다른 절망의 시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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