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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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5 17:36조회 52댓글 3ne0n.
내가 네게 다가갈수록, 세상에 조용히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 조심스럽게 네게 내민 손끝에서, 미세한 균열이 번지듯 공기가 떨렸다.

네 눈빛 하나에도 내 숨이 조여왔고, 네 손끝 하나에도 피가 배어나왔다. 사랑이란 건 품에 서로를 감싸 안는 일이라 믿었는데, 이제는 그 품이 칼날처럼 느껴진다.

내가 너를 안을수록, 너는 다쳤고 나는 조금씩 부서져 갔다. 우리가 맞잡은 손 사이로 흘러내린 건 눈물인지 피인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 어느 쪽이든, 우리가 함께 흘린 것이란 사실만이 남았다.

그래서 오늘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기로 했다. 그걸로 네가 웃을 수 있다면, 그 한 걸음쯤은 견딜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이 무색하게도, 네가 멀어질수록 내 안의 세계는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너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견딜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

빛을 잃은 마음의 조각들이 흩어져, 발끝에서 유리처럼 반짝였다. 나는 그 위를 맨발로 걸었다. 아프다는 걸 느끼면서도, 그 고통마저 너의 흔적처럼 느껴져서. 피가 섞인 발자국이 길게 이어졌다. 어쩌면 그 길 끝엔 네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또 오늘도, 멀리서 너를 바라본다.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손끝은 여전히 너를 향해 떨린다. 너를 지키기 위해 멀어져야만 했던 나는, 결국 너를 잃어야만 완성되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ne0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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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urious.quizby.me/9sRH… 공큐도 은근슬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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