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5 14:57•조회 31•댓글 0•여우비
한참의 눈놀이가 끝나고 급식을 먹으러 갔다. 너와 나란히 발 맞춰 걸으면서 시시콜콜한 수다를 나눴다. 내년이면 졸업이다, 시간 참 빠르지 않냐, 겨울방학 때 뭐 할 거냐, 같은 것들. 너는 대부분 망상이나 공상들이 더해진 생각들을 줄줄이 내뱉었다. 나는 가끔 웃고 리액션을 했다. 서로 말이 없었지만 또 어색한 건 아니였다. 급식판을 손에 들고 급식을 받아 창가쪽에 앉았다. 숟가락으로 묵묵히 밥을 넘겼다. 잘 넘어가지 않아 국에 말아 떠먹었다. 턱 밑으로 국물이 흘렀다. 네가 휴지를 내밀었다. 나는 고맙다는 뜻으로 웃어 보였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내가 운을 떼었다.
“…….”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더라?”
“글쎄.”
내 물음에 너는 명확하게 답하지 않았다. 생각에 잠긴 듯이 고개를 살짝 꺾으며 멍을 때렸다. 나도 덩달아 네가 보는 곳을 응시하며 생각을 했다. 그러게. 어떻게 친해졌는지 나도 모르겠네. 그냥, 어느 순간 우린 함께였다.
“먼저 일어날게. 입맛이 없네.”
“어, 그래라. 어디 아픈 건 아냐?”
“응. 천천히 먹고 와.”
너는 그 말을 끝으로 식판을 들고 일어섰다. 나는 네가 급식실을 완전히 빠져나간 걸 확인한 뒤에 식판을 정리했다. 손을 씻고 급식실을 나왔다. 익숙한 남자애들 여럿이 축구공을 들고 낄낄거리며 내 앞을 지나갔다. 나는 물끄러미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축구가 한창이었다. 누군가가 골을 넣자 같은 색 옷을 입고 있던 아이들이 달려와 그 아이를 둘러싸고 기뻐했다. 나는 멍을 때렸다. 나도 축구에 끼워 달라고 해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나같은 걸 끼워줄리가.
*
그 다음날, 교문 앞에 하얀 승용차가 서있었다. 번호판을 확인하니 엄마였다. 휴대폰을 열어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어 아들, 어디야?
“방금 나왔어요. 엄마 보이네. 저기.”
—와서 타.
“네.”
잰걸음으로 차까지 걸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아버지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아침부터 기분이 별로더라니, 이제 이유를 알겠다. 나는 말없이 창문만 바라보며 턱을 괴었다. 엄마의 시선이 느껴졌다. 내 기분을 살피는 것일 터였다. 나는 애써 무표정한 얼굴을 하며 하품을 했다. 어젯밤엔 뒤척거렸다. 축구가 진행 중이던 운동장과 너, 겨울의 바다를 생각하다보니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속이 메스꺼워 새벽에 혼자 약을 꺼내 먹었다. 엄마나 할머니께 알리진 않았지만 아마 아침에 쓰레기통에 든 약봉지를 보고 눈치챘을 것이다.
“요즘엔 바다랑 안 노니?”
“아뇨. 오늘은 특강 있다고 먼저 갔고, 저는 청소 당번이라서.”
“그래. 꽃, 사러 갈 거지?”
“……네.”
몇 초간의 공백을 두고 답했다. 엄마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운전에 집중했다. 나는 이어폰을 연결해 음악을 들었다. 멜로디가 익숙하더라니 네가 매일 듣던 노래였다. 가사가 영어라 무슨 말인진 모르겠지만 멜로디가 좋아서 듣는다고, 했었지 아마. 볼륨을 키웠다. 만사가 귀찮았다.
*
산 꽃을 살포시 올렸다. 하얀 꽃잎이 떨어졌다. 엄마는 묘를 청소하셨고 나는 목례를 했다. 예쁜 액자 속 아버지는 웃고 계셨다. 워낙 오래 전 돌아가신 터라 이제 눈물이 나오진 않는다. 꿀꿀한 기분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른 세수를 하고 컴퓨터를 켜 게임을 했다. 아버지가 자꾸 아른거리고 네가 머릿속을 헤집어대서 정신이 없었다. 엄마는 볼일이 있어 잠시 나가셨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창문을 열었더니 추운 공기에 뼛속까지 파르르 떨리는 듯 했다.
띠리리. 띠리리.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은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지도 않고 끊었다. 몸을 사리고 방으로 기어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끌어 당겨 몸을 덮고 옆으로 비스듬히 기댔다. 공기는 차가운데 왠지 몸은 뜨끈뜨끈 했다.
앓았다.
목이 따끔거리고 온몸이 뜨겁게 쑤셨다. 겨우 방 밖으로 기어나와 약상자를 찾았다. 힘겹게 뚜껑을 열려고 시도했으나 꿈쩍도 안 했다. 내 힘이 부족하진 않을테고.
점점 정신이 아득해져갔다.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제법 멍청한 생각도 들었다. 눈이 감기고 바닥이 뜨끈해 의식을 놓았다. 잠결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리까리해서 그냥 푹 잤다. 아까까지만 해도 추운 공기에 떨렸는데 지금은 몸속 깊은 곳에서 더운 공기가 뿜어져 나와 사방을 적시는 것 같았다.
—많이 아파?
“응.”
—몸이 불덩이였어. 아까까지만 해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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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