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8 20:00•조회 46•댓글 2•온
사실, 그는 어쩌면 충동이 들었을 지 모른다.
사실, 그는 어쩌면 살인마일 지 모른다.
사실, 나는 어쩌면 이미 그에게 굴복했을 지 모른다.
~
* 사실 알고 있었어, 네가 누군지.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칼날로 내 목을 살며시 긁었다. 선홍색 물줄기가 조금씩 흘러나옴과 동시에 그는 입을 열었다.
* 내 정체가 궁금해?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뒤로 묶인 결박을 풀으려 애썼다. 두 손목을 빨갛게 물들인 밧줄은 더이상 나와 다른 몸이 아니었다.
* 이미 아는데, 내가 뭣하러?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제야 시야가 트여 보인 그의 얼굴은 언뜻 보면 선한 사람 같기도 했다.
* 웃기네. 근데, 좀 겁 없는 철부지 같아서 조금 충동이 들기도 하고.
그것은 그의 경고였다. 살고 싶으면 나대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
* 이게 뭔지 아냐?
그는 내 구렛나루에 작은 바늘을 가져다 톡, 꼽으며 물었다.
* ... 바늘이잖아.
* 그래, 바늘이지. 이건 아주 작은 칼과 같아.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해?
그가 비아냥대는 태도로 묻자 나는 온몸을 비틀어 결박을 푸는 태도를 취했다. 나 또한 무언의 경고였다.
* 이 작은 바늘에 죽을 만큼 네가 연약하다고.
나는 이제 뒷일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나는 지금 화가 날 뿐이고, 그를 죽이고 싶은 마음 뿐이다. 나는 그가 말한 ' 그 철부지 ' 가 되기로 했다.
* 씨발, 지금 뭐라고 했어!
나는 벽에 기대어 몸을 일으키곤 뒤로 묶인 손에 중심을 둔 채 그에게 수없는 발길질을 해댔다.
* 하, 은혜도 모르는 새끼가 다 뒤져가는 거 거둬줬더니 반항이 심하네.
그는 소리 없은 한숨을 내쉬곤 짧은 칼로 나는 밀었고, 나는 그대로 우스운 소리를 내며 뒤로 자빠졌다
* 개새끼가... 씨발, 네가 그러고도 살아있을 것 같아? 살아있을 것 같냐고! 사람이 이렇게 오해 실종됐는데, 아무도 날 안 찾을 것 같지?
* 하하... 응, 그래. 누군가는 찾겠지. 아마 하와이에 있는 네 부모님?
하와이? 내가 실종됐는데 태평하게 하와이에나 가 있었다고?
* 뭐...? 우리 엄마, 어디로 빼돌린 거야!
* 빼돌리다니. 이래서는, 은혜도 모른다니까. 집에선 하등 쓸모도 없는 아들 잠깐 거둬준다니까 너무 좋아하시던데.
이해할 수 없다.
* 뇌에는 우동사리만 차서 흔들면 존나 찰방일 것 같은 새끼가, 어디서 까마귀 짓을 하는지 모르겠네.
나는 깨달았다. 나는 이해했다. 나는 알았다.
* 씨발... 니네 다 가짜지...?
그러자 그는 쪼그려 앉아 눈을 맞추며 말했다.
* 가짜? 가짜는 너지. 실수로 태어난, 원래 아들 가짜.
나는 수도 없이 울었다. 울다 지쳐 죽을 때까지 울었다. 온 허벅지와 갈비뼈가 말라 부러질 듯한 상태까지 나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 그 나이 먹고 투정이야, 뭐야?
그는 내 병을 단순 ' 투정 ' 이라 정의했다. 이젠 화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내심의 공허함만 가득 차 검은 하늘만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