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05 14:49•조회 48•댓글 2•하루
—어느 날 바다는 하늘을 닮았다.
물속은 생각보다 조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흔히 물 아래를 '고요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게 다 거짓말이라는 걸 안다. 이파리가 물과 입맞춤할 때 나는 사각거림, 누군가의 무거운 발소리처럼 깊고 빠른 소용돌이, 그리고 내 심장 안에서 나는 북처럼 쿵쿵거리는 소리. 나는 그날, 물속에서 세상의 끝이 이렇게 아득하고도 시끄러운 것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아홉 살이었다. 어른이 보기엔 작은 새우 같은 존재였고, 나는 그들에게 바닷가의 장난감이었으며, ‘조심해라’는 말로 미리부터 책임을 방기한 사랑의 찌꺼기였다.
그래서 나는 물속에 빠졌다. 일부러도 아니고, 그렇다고 운명이라고 하기엔 너무 허무한 실수.
발끝이 미끄러졌다. 순간, 세상은 푸르지 않았다. 오히려 검은 색이었다. 바다는 푸른 것이 아니라 푸르기를 바라는, 무서운 검정이었다. 내가 땅이라고 부르던 모래는 사라졌고, 하늘은 창처럼 내게 등을 돌렸다.
그 순간—
그녀가 왔다.
인어라고 하면, 대체로 동화책에서 본 대로 비늘이 반짝이고, 긴 머리를 빗고 있는 존재를 떠올리겠지. 그러나 내가 본 그녀는 어떤 고전도 감히 그 형상을 흉내 낼 수 없는, 말하자면 ‘해석 불가능한 존재’였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밤하늘의 가장 안쪽 실타래 같았고, 그 눈은 바다가 바다 자신을 거울로 삼아 들여다볼 때도 발견하지 못하는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말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에서 나는 한 편의 시를 보았다. 정확히는, 시의 잉크가 마르기 전의 순간처럼 일렁이는 감정의 파문. 그녀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언어가 무의미했고, 우리는 침묵으로 대화했다.
그녀는 나를 끌어안았다.
그 감촉은 생선 같지도 않았고, 사람 같지도 않았다. 그것은, 말하자면 시간을 손으로 만지는 느낌.
매우 오래된 물결이 내 등을 토닥이는 듯, 나는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숨이 막혀 있던 것이 아니라,
숨을 쉬지 않아도 되는 세계에 잠시 초대받은 것이었다.
"왜 구해줬어요?"
숨을 헐떡이며 나는 그렇게 물었다. 다시 물 위로 올라왔을 때, 그녀는 더 이상 내 곁에 없었지만, 내 마음엔 그녀의 물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바다는 대답하지 않으면서 모든 걸 말하는 법을 아는 존재라는 걸.
그녀는 나를 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를 '알아본'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물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물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목이 메인다. 그건 아마도 내가 아직 아이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가 내게 말하지 않은 문장을 내가 평생 해석하려 들기 때문일까.
내 책상 서랍에는 오래된 조개껍데기가 하나 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때로 그녀의 숨소리가 들린다. 그건 바람 같기도 하고, 웅크린 별빛 같기도 하다.
나는 이제 안다.
모든 아이는 물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아이는, 바다에 의해 ‘기억’된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작고, 아름답게 길을 잃은 아이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