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3 00:06•조회 48•댓글 1•세리아
보다 더 뛰어난 발전을 이룬 종은 자연을 지배한다. 따라서 난 인간중심주의를 신봉하는 편이었다. 포식자가 피식자를 삼키는 건 자연의 순리니까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전은 인간 편이라고. 다른 생명들은 모두 유전적으로 인간보다 월등하다고.
유전자를 후대에게 넘기는 것은 모든 생명의 일순위 목표였다. 더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가다 보니 각 생물이 추구하는 바가 달라지고 결국 생명다양성이 커지게 된다. 따라서 자연은 생물다양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인간이 온갖 바이러스의 영향에 놓이게 된 건 아무래도 그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좀비개미는 일종의 곰팡이다. 개미도 아니면서 곰팡이보다 좀비개미로 더 많이 불렸다. 그도 그런 것이, 아무래도 곰팡이보다는 개미로 더 많이 살아가니까. 그 곰팡이는 개미 몸 속으로 들어가 개미의 대뇌를 조종하여 일주일만에 모든 자아와 몸을 장악한다. 곰팡이를 몸에 심은 개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뭇잎으로 기어올라가 온 몸으로 곰팡이를 내뿜곤 그렇게 죽어버린다. 시체에선 균사가 그득그득 피어오르고 또 다른 개미를 숙주로 삼아 곰팡이는 그렇게 유전자를 남긴다.
가장 잔인한 연대의 방법으로.
- 아. 아.
현재부로 이 지점 반경 100m 이내 블랙존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주민분들은 격리반을 따라 방역이 끝날 때까지 근처 격리소로 이동해주시길 바랍니다.
체류 불응자는 감염병 특별법에 따라 형사 처벌 및 제거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좀비개미가 숙주를 인간까지 넓힌 건 손 쓸 새도 없이 순식간이었다. 개미에서 그 어떤 동물이나 식물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인간이 좀비개미의 숙주 대상이 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흩어지기 시작한 좀비개미 포자는 고작 열흘만에 온 지구를 완전히 덮었다. 도시부터 아주 깊은 숲 속까지 빠짐없이.
포자가 그 지역을 훑고 하루가 지나면 인근 병원은 감기 증상으로 환자가 가득 찬다. 그 신호가 오면 급격적인 포자 전염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일차 감염자는 발열과 근육통이 시작되고, 연이어 전염된 이차 삼차 감염자들에 의해 병원은 전보다 더 북새통을 이룬다.
정신 착란은 삼 일 차부터 나타났다. 집중력이 저하되고 기억력이 흐려진다. 충동적인 행동이 나타난 이후로는 통제를 잃는 지경까지 다다르게 된다. 곰팡이는 화학물질을 방출하여 특정 근육을 원격 조종하고, 발달한 인간의 뇌를 이용하여 곰팡이가 확산될 최적의 조건을 찾아 숙주를 이동시킨다. 이때 의식은 유지되지만 제 스스로 몸을 조종할 수는 없는 극심한 공포를 경험한다.
이후로 감염자는 빠르면 하루. 늦으면 이틀 내로 정신을 잃고 수 시간 내로 사망한다.
치사율 백퍼센트의 진짜 좀비 바이러스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쉽게 지는 법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 정상회담에서는 감염법 특별법을 결의하여 대부분의 나라가 적용하게 했다. 감염법 특별법 제1항은 좀비바이러스 의심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거나 확진 사실 확인 시 즉시 사살해야 하며 이를 지키지 않을 시 최대 사형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람 십 억 명이 죽고 나서야 세계는 겨우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주변인이 죽어나갔었다는 건 그저 동화 속 이야기였다는 것처럼 무섭게도 무료하게.
바이러스 첫 창궐은 어느새 십 년 가까이 되어 버렸고 사람들이 죽는 그 모습은 꿈처럼 희미해진다. 포자를 차단한다. 그 간단한 법칙으로 사람들은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미 온 세상을 덮은 포자 탓에 바이러스를 박멸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겠지만, 그냥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귀찮고 자칫하면 감염되지만 요즘은 감염된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 그렇게 스며들고 있는 시기여서인지도 모르겠다.
서랍 속 방독면을 챙기고 현관문 앞에 서자 소독 기계가 약을 뿌려댄다. 온 몸에 약을 덧대는 동시에 방독면 사이로는 약 냄새가 흘러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에 무심코 약 냄새를 맡았을 땐 정말이지 화생방 훈련을 받는 게 더 낫겠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피부에 약들이 번들거린다. 꽤 차가워서 몸을 움츠렸다. 아무래도 이 약에 자외선 차단 기능까지 섞여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포자는 세상을 덮고 난 죽을 위기에 처해 태연하게도 햇볕이나 떠올리고 있구나. 왠지 웃겼다.
문 밖으로 나서기 전에 마지막 창틈으로 방 안을 확인했다. 문 열린 안방 안에 엄마가 팔다리 모두 의자에 속박된 채 그저 가만히 눈만 꿈뻑거리고 있었다. 엄마. 기다려. 백신은 어떻게든 찾아올테니까. 난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다는 거 도무지 못 믿겠으니까. 나무에 들러붙은 채 흰 곰팡이 주륵주륵 뱉어 썩어가는 시체를 봤던 여덟살 적 기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콜록. 목이 간지럽다. 나마저도 바이러스에 확진됐다는 것을 이제는 부정할 수가 없다. 증상은 어제 오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오늘로 이틀차란 뜻이었다. 지금까지 확진되고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사례도 십사일 버틴 게 전부였다. 그건 내가 아무리 오래 버텨봤자 내 삶은 고작 삼백 시간 가량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치사율 백퍼센트. 그 말이 날 어떻게 얼마나 옥죄어올지는 아직까지 실감이 잘 안 갔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쉽게 죽어버린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특별할 것이라는 이상한 착각은 이미 내 전두엽을 모두 장악해버린 고약한 곰팡이의 소행인 건지.
밖에서는 기침하는 시늉이라도 했다간 바이러스 감염 대상군으로 의심받아 사살당할 확률이 농후했다. 자칫해서 검사라도 받으면 진짜 확진자란 걸 확인받게 될 테니까. 아마 난 내가 확진됐단 소식보다 그 총 소리를 먼저 듣게 될 것이다. 탕. 하고. 그렇게 단발에 바로 곰팡이랑 피 쏟으면서 쓰러지겠지.
그렇게 되면 엄마도 죽는다.
그건 안 돼.
엄마는…… 안 돼.
거리에 포자 탐지기를 들고 걸어다니는 병역반 사람들이 보인다. 초기 확진자는 눈에 띌 정도로 포자를 많이 내보내지 않는다. 만약 그들 앞에서 수상한 행동이라도 보인다면 포자 탐지기로 감식당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난 살얼음판 걷는 기분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었다. 폐 속 포자가 온 몸을 간질인다. 세상은 넓고 포자는 많았다. 그중 내 몸에 자리잡은 것은 티끌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양이었다. 그렇게 미세한 포자들이 제 몸의 몇억 배는 될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갈 수 있다는 사실이 섬뜩했다.
학교에 도착했을 땐 아홉 시 오 분 전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집에 있는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도 이렇게 앉아 있었는데. 밧줄로 최대한 세게 묶어두긴 했는데 설마 풀진 못하겠지? 곰팡이는 포자를 퍼트리기 좋은 자리를 찾기 전까지는 숙주를 죽이는 것을 최대한 미룬다고 했다. 엄마가 언제까지고 그렇게 얌전히 묶여있는다면 적어도 당장 오늘이나 내일 죽을 걱정은 없었다.
뉴스를 보니 백신은 거의 완성 단계라고 했다. 조금만 버티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조례 전 아홉시 방송이 들려오기 시작한 건 그때였다.
- 안녕하세요 감염방역청입니다. 호흡기 질환과 두통, 발열과 오한 증상이 보인다면 확진 의심 대상자로 분류됩니다. 오한이 나타나는 시기에는 주변인도 감염 위험 대상자가 되니 이와 같은 증상이 발현된다면 긴급번호 128에 신고하거나 인근 무인 약국에서 자살약을 사 먹는 것을 권장합니다.
아침 아홉 시마다 전국에 울리는 방송도 이젠 익숙해졌는지 다들 딴짓 하기 바빴다. 난 매일 듣던 그 목소리가 오늘따라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상할 것 없던 그 내용들을 되새길 때마다 오한이 심해진다. 그렇게 태연하게 자살하라 말하는 시대가 언제부터 도래했는지. 인권이란 게 언제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는지. 왜 인간은 스스로 인권을 버릴 수밖에 없었나?
기침이 나올 것 같아 서둘러 마른침을 삼켰다. 목에서 신맛이 느껴졌다.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든다.
+
난 수업 내내 엄마 생각 뿐이었다. 엄마 얼굴. 그 목소리. 특유의 향기랑 행동들. 감염되고 나서부터 점점 사라지기 시작한 것들은 내게 너무 당연했어서 감히 기억할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곰팡이만큼이나 난 엄마를 지워내는 데 탁월했다.
엄마는 본인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것처럼 발병하기 전까지도 좀비 바이러스 얘길 많이 했다. 만약 우리가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다면 절대 신고하지 말자고. 난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다는 가정은 되도 않는 허상처럼 느껴져서 그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엄만 기어코 약속까지 받아냈지만. 난 내 딸이 바이러스에 걸린다면 절대 신고하지 않고 안방에 묶어둘거야. 치료제가 발견될 때까지 숨겨야지. 일주일이 지나면 죽는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 말하는 엄마 표정이 너무 진지해 보여서 바보 같다는 생각이라고는 차마 입 밖으로 뱉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알아채기도 전에 스스로 확진 사실을 알아냈다. 엄마가 매일 밤 자가진단 키트로 확진 유무를 검사했다는 사실을 안 건 삼 일 뒤였다. 엄마는 집 안에서 방독면을 끼고 결연한 목소리로 내게 확진 사실을 밝혔다.
- 우린 살아남을 수 있어.
언젠간 살아남을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엄만 그 이후로 줄곧 제정신이 아니었다. 두뇌를 전부 점령당해서 그런 건지도 몰랐다. 이상하게도 정신 이상이 첫째 증상이었고 그 이후로 감기 기운, 그리고 열이, 행동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틀 전엔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자 바닥이 온통 물 천지이길래 기겁한 적이 있다. 엄마는 화장실 세면대에 얼굴 박고 그대로 물 맞고 있었다. 도대체 물을 얼마나 틀어놓은 건지. 곰팡이는 습기찬 곳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조금 더 지나서였다. 난 그 이후로 집안의 물길을 모두 끊어놨다.
그렇게 순식간에 사교시가 끝난다. 점심을 먹으러 가려던 그때 선생님이 급하게 교실로 들어왔다.
- 방송이 있을거야. 다들 빨리 짐 싸.
한동안 이런 일은 없었는데.
불길한 감이 들었다.
- 아. 아.
현재부로 지구아파트 203동 반경 100m 이내 블랙존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주민분들은 격리반을 따라 방역이 끝날 때까지 근처 격리소로 이동해주시길 바랍니다.
체류 불응자는 감염병 특별법에 따라 형사 처벌 및 제거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블랙존 소리를 듣자마자 가방도 내팽개치고 뛰었다. 지나가는 길에 방역반 사람들이 보인다. 수색 중인 격리반도 보였다. 그들은 화난 표정으로 학교를 돌아다니다, 어디론가 뛰어가는 날 발견하고 뒤쫓아오기 시작했다. 아마 날 찾던 사람인 듯했다. 확진자를 격리시킨 건 사형급 중죄다. 아마 난 잡히는 즉시 죽겠지. 감염자는 고작 그런 운명이었다.
갑갑한 방독면을 집어던지고 달리기 시작한다. 무게중심이 머리에서 온 몸으로 흩어진다. 무거운 머리로는 날 따라잡지 못한다.
집까지 가는 길은 금방이다.
달리는 모든 건물에 엄마가 어른거렸다.
- 현재부로 이 지점 반경 100m 이내 블랙존으로……
방송이 반복해서 울린다. 난 혼비백산 도망가는 주민들 사이에 끼어들어 억지로 되돌아갔다.
우리 집으로 가는 길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난 엄마가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억지로 떨쳐내며 이 악물고 달렸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목 가려움이 심해졌다. 온 세상의 포자가 아파트 마당에 모인 것처럼 공기가 뿌옇다. 엄마 특유의 향기가 포자와 함께 흩날린다.
엄마는 밧줄을 몸에 두른 채 우리 집 앞 마당에 딸린 나무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 몸에 흰 곰팡이가 가득.
엄마.
소리치며 난 나무 대신 엄마를 안았다.
그제야 두근 두근 하는 진동이 파도처럼 날 덮쳐왔다.
심장이.
아직 뛰고 있어.
그 심장 박동을 느낀 순간 내 심장도 뛰기 시작한다.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처럼 우린 서로의 마음을 공유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 전두엽을 장악한 고약한 곰팡이의 소행인지도 모르지만. 엄마는 날 사랑하고 있다고.
그 순간 폐 깊숙히 솟아오른 어느 곰팡이가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내 몸을 조종할 수 없게 된다.
나는 엄마를 그렇게 끌어안고 수많은 병역반 사람들이 한데 모여 날 엄마에게서 떼어내고 있는 것도 모른 채 그 품 속에서 울었다.
우리 엄마, 아직 따뜻한데.
안 죽었는데.
제대로 봐.
이렇게 살아있잖아.
- 죽은 엄마는 빨리 치우고 초기 감염자인 저 애는 실험용 백신이라도 한번 넣어 봐.
- 네.
- 어, 잠시만요.
- 이 애 죽었는데요?
W 세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