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거리며 타오르던 횃불이 남색 고옥의 담벽을 넘어섰다.
늦겨울의 12번째 눈이 천천히 불의 열기에 녹아들었고,
짙게 변색된 그들의 시선이 너를 향해 형형한 빛을 보였다.
천천히 다가오는 회갈색의 칼이 너와 나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적잖게 고함이 들렸다. 성난 군중의 원성일까.
울분에 차오른 목소리가 머리를 흔들어댔다.
나는 너의 손을 잡았고, 초목이 들어선 산길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둡게 뭉그러진 눈밭 위로 새 눈이 내리며 발자국을 감춰주었다.
계속해서 뉘우친대도 이지러진 원죄 앞에서는 너를 지킬 수 없었다.
나의 존재 자체로 죄가 되었으니 나를 사랑한 너도 죄인이 된다.
숨이 막혔다. 부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옥죄어 왔다.
“사랑해, 닿지 못해도 사랑해. 맺어지지 못한대도 사랑해. 너라서-”
너의 숨결이 떨렸다. 그마저도 아름답게 보임에 괴로워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함성과 가까워진 불길과 때마침 닳아버린 힘.
눈물이 가득히 차오른 너의 눈가를 보았다. 생채기가 난 얼굴을 보았다.
차갑게 얼어버린 손으로 너의 뺨을 쓰다듬었다.
모두 망각하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른 신분과, 다른 사람과 다른 인연으로 만났다면 우리는, 끝에는 이어졌을까.
“이대로 잠겨 죽어도 좋으니 영원을 빌어주세요.”
일렁이는 불길이 다가왔다. 그가 죽음에게 환대했다.
너라서 사랑할 수 있었다. 결여된 나를 구원한 것도, 위하던 것도 모두 너였다.
그럼에도 맘껏 애정하지 못했다. 사랑을 주지 못했다. 단 하나의 성공도 이루지 못한 나를 원망했다. 또한 신을 원망했다.
마지막에도 너에게는 뜨거운 불길이 다가오지 않기를,
찢어진 옷자락을 벗어 너에게 덮어주었다. 너를 힘껏 안았다.
속죄하며 눈을 감았다. 한 사랑의 말로는 아름다웠다.
@한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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