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덩어리 사랑

설정
2025-10-13 20:22조회 54댓글 3유하계
5,500자 적었어용…
지루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려요 😣



___

연은 묻는다.
…표정이 안보여.

연은 웃는다.
볼 수 없다니까.

그러나 다 보이는 척 씩 웃어보이곤 응, 응…하고 대답했다. 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얇고 높은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연의 표정이 안좋아졌을까. 연은 지금 내 귀가 들린다는 걸 알까. 무어라 소리치는게 들렸다. 보이지 않아.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이내 내가 답답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연은 말을 멈췄다.

그녀의 표정을, 분위기를. 하나도 보이지 않아 미칠 지경이였다. 어느 정도의 흐릿한 잔상이라도 보였다면 내가 이 정도로 연을 화나게 하진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연은 나를 언짢게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면 울상을 짓고 있을까. 잠깐 가만히 있다 연이 웃는 소리가 들었다. 연은 웃는다. 연이 웃었고, 나도 웃었다. 그러더니 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엔 느리게 말했다.

“…죄송해요….”

뭐가 죄송해. 생각해보면 연은 죄송할게 하나도 없다. 다 내 잘못이겠지, 암 그렇고 말고. 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역시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이였다. 지금 다시 돌이켜보아도 그 당시 연의 속내는 영 알기가 어려웠다. 연이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온몸을 떨고 있기라도 한걸까, 벌벌 떨고 있는 두 손으로 내 팔을 붙잡았다. 시체마냥 차가운 손이 안타까워 연의 손을 잡았다.

“제가, 제가 지켜드릴게요…. 영원히….”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연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영원히, 이 말이 조금 걸렸지만… 일단 연이 웃었다. 그걸로 됐다.

___

배고프다. 배가 꼬르륵거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배가 고파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어쩌면 내 귀에만 조용했을지도 몰랐다. 몇년을 살아왔던 곳이지만 아직도 위치가 헷갈려 쿵쿵대기라도 한건지, 내가 나오자마자 슬금슬금 연도 나왔다. 연이 내게 달려와 팔짱을 끼고는 기대라했다. 그리고 말했다.

“배가 고프신가요?”

끄덕였다.
연은 웃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기침이 나올락 말락, 코가 간지러웠다. 연은 기침소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참았다. 누가 그러던가? 세상에 숨길 수 없는 것은 두 가지란다. 하나는 재채기,

“에, 에취-!!”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랑.

“무월님, 괜찮으세요…?”

단순 종이였던 연은 내 재채기 하나에 달려오고 한숨 하나에도 울상을 짓는 하나뿐인 내 사람이 되었다. 이젠 연을 보기만해도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이 가식이, 너무나도 재밌어서. 하찮아서.

“…괜찮다.”

어쩌면 나도 이 사랑을 숨기지 못 하고 있을거란 생각도 들었다. 허나 절대 들켜선 안된다. 나의 사랑이, 결국 내 약점이 될 것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아니까. 누구보다 그녀를 증오하면서도 사랑하는 내 감정이.

“무월님, 있죠 저는요… 무월님이 걱정되어 잠을 이룰 수 없어요…. 아무리 밤마다 낮마다 무월님 곁에는 제가 있다지만, 그래도…”

“조용히 해.”

“…네에.”

연은 지금 어떤 표정일까. 연은 무슨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을까. 궁금하다못해 내 눈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당장이라도 내 시야를, 내 눈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모든걸 찢어발긴 후 피바다가 되어 질퍽이는 땅을 밟고 연에게 다가가 약하지 않은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네년이 늘 내 곁을 지키고 있기에, 내 몸이 이리 된것이냐?”

“무, 무슨 소리세요—.”

“항상 내 곁엔 너밖에 없었다만 내 몸은 왜 이렇게 날이 갈수록 나빠진단 말이냐. …이래도 할 말이 없어?”

“제가 어떻게 그래요. 무월님을 누구보다도 저는, 저는… 제가 어떻게…. 무월님이 죽으면 저도 죽을거예요….”

그럼 죽어봐, 라고 하고 싶었다. 확인할 도리가 없어 멈췄다. 이곳엔 나와 연 둘만이 있는데 상황은 호전되지를 않으니, 당연히 연의 짓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항상 아니라고 저리 우는 꼴을 보면 당연히 연의 눈물을 값싸게 여길 수 밖에. 그러나 몇날 며칠이고 나는 언제나 연을 추궁하고, 의심하며, 화를 내고, 매달리고, 고백한다. 늘 그럴때면 연은 같은 말만 했다. 화를 낼 때면 바짝 엎드려 모든게 다 자신의 잘못이라며 울고불고 날 붙잡았다. 내가 연에게 매달릴때면 연은 조용히 내 품에 안겨 아무 말 없이 웃곤 했다.

날이 갈수록, 연에게 매달리는 날이 잦아질수록 내 몸이 쇠약해져가는 걸 느꼈다. 다 늙어 죽을 때가 된 개마냥 숨쉴 때엔 목에서 이상한 소리까지 났다. 어쩌겠는가. 내 사랑, 내 사람. 나의 연의 짓이니 기꺼이 받아야지. 독이 내 눈을 앗아가고 심장까지 앗아가더라도 받아야지. 그렇다고 연을 용서한다는 건 아니었다. 절대 내가 죽고 살아있게 놔두지 않을 것이었다. 내가 죽으면, 연도 죽어야했다. 연은 목숨을 걸고 나를 지키는 종이기에, 그것이 맞다.

“그 말 지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나는, 결국 그렇게만 말하고 말았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뱉는데 목 한 구석이 아려왔다. 커다란 가시 하나가 목에 박히기라도 한듯, 인상을 쓰지 않을수가 없었다. 가시는 하나 뿐만이 아니었다. 세상 날카로운 칼날 하나도 있고, 작은 바늘도 있었다. 그 날카로운 것들이 모여 하나의 응어리를 이루었고, 그것은 내 목 한가운데에 깊숙한 곳에 박혀 나와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지킬 이유가 없는걸요.”

나지막이 연은 낭만적인 말을 내뱉었다. 그렇게 예쁜 말을 하면 내가 그 하찮은 연극에 속아주기라도 할 것 같았는지, 이젠 내게 사랑을 속삭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가장 멍청한건 사실 나다. 목적이 보이는 사랑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니,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없었다.

___

눈이 안보인다. 조금의 형체도 보이질 않는다. 빛도, 어둠도 구분을 못했다. 그래서 몰랐나보다. 내게 다가온 네가, 빛인건지 어둠인건지. 과연 구원인건지 날 나락으로 끌어들이는건지.

“…괜찮으세요?”

“응. 괜찮다. 괜찮으니 신경쓰지 마.”

흐린 눈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바라보았다기엔 정확히지 않을지도 모른다. 보이는거라곤 온통 새까만색뿐이였으니까. 고개를 들었다. 천장에 붙어있는 등 탓에 시야가 조금 밝아지기라도 할까 괜한 기대에 또 고개를 올려봤다. 그러나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보일리가 없지. 계속 그렇게 연이 주는대로 받아먹고, 씻으란대로 씻고, 하라는대로 하고….

“언제까지 이럴 셈이냐.”

“이럴… 셈이라뇨?”

“언제까지 날 고통스럽게 할거냐고. 한 번에 콱 죽여버리는게… 너도 편하지 않겠느냐. 이젠 아무것도 안보인다. 네 얼굴도, 뭣도 다… 말하기도 힘들어. 아파 죽어버릴 거 같은데, 죽지를 않으니 답답해 미치겠구나.”

지금 내 말에 연의 표정은 또 어떠할까. 확실히 예상이 갔지만, 말이 없기에 혹여 웃고 있기라도 할까 걱정되었다. 비참하고도 하찮은 내 꼴을 비웃기라도 할까봐. 허나 예상하지 못했던 소리가 들려왔다. 눈물도 아니고, 웃음도 아닌. 담담하게 그녀는 조용히, 아주 작게… 고백했다.

“하기야, 모르실리가 없지요. 여태 모든 일을 저와 함께하셨으니까요.”

“…왜냐고 물었어.”

“사랑해서요. 미치도록 사랑해서 무월님을 제 곁에만 두고 싶었습니다. 눈이 안보이더라도 제 얼굴만을 기억하시길 바랐습니다. 말을 못 하시더라도 절 사랑한다는 말만은 하실 수 있길 바랐습니다. 고통을 무릅쓰고 절 사랑하시길 바랐어요. 주변의 모든 이들을 하나하나 없애고 없애다보면, 결국 무월님에 곁엔 저만 남게될테니까요….”

…하. 헛웃음이 나왔다. 연은 그런 하찮은 이유로 날 죽음까지 내몰았구나. 차라리 날 죽이기라도 했다면 마음이 편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어중간하게 이런 고통을 준 탓에 내가 연에게 매달리게 만들었다. 가진거라곤 이제 연밖에 없어서,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있는 건 돈밖에 없었다. 그 돈도 이젠 알아볼 수도 없는 마당에 연까지 잃을까 두려웠다. 연의 그 잔혹한 계획은, 어떻게보면 성공한거나 마찬가지이다.

“…그랬구나. 그래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말을 멈춘데에는 타오르는 것같은, 계속해서 새로운 고통을 선사하는 독의 탓도 컸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영 상황에 걸맞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탓이 가장 컸다. 너는 내 모든 걸 앗아가 부숴버리곤 구원이랍씨고 내게 와 손을 뻗었다. 매일을 내게 희망을 주고는 깨부수길 반복했다. 그야말로 거짓된 구원이다.

“저를 사랑하시나요?”

“미치도록.”

우리의 관계는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다. 미치도록 서로를 갈망하고, 사랑했으며, 나락으로 이끌곤 했다. 나는 연을 따라 추락했다. 차 한 잔을 마실 때면 언제나 독이 들어있지는 않을지 연의 눈치를 봐야했고, 비가 추적이는 날에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밤을 지새곤 했다. 우리는 그 어떤 연인보다도 어긋난 사랑을 했다. 이걸 사랑이라 칭해도 될지에 관한 의문이 들었으나 우선적으로 모든 것은 사랑부터 시작됐기에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저희가 하는게 사랑이라면, 무월님의 마지막은 제가 장식해드리고 싶어요.”

“뭘 또 하려고.”

“차요. …드시겠어요?”

“너도 마셔.”

그 말을 하고 나는 멈칫했다. 살갗이 따끔거리고, 목 한가운데에는 가시 덩어리가 박혀있음에도, 눈 앞은 여전히 어두컴컴함에도. 나는 죽음을 맞이할 수 없었다. …두렵다.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확실히 이번 생에서는 죄를 많이 지었으니 지옥으로 가는 쪽일 터. 그렇다면 연은? 연도 마찬가지겠지. 날 이렇게 만들었는데 천국이라니, 웃기는 소리. 죽어서도 연과 함께할 생각에 씁쓸했다. 연에게서 벗어나려 죽어도 어차피 다시 볼 관계라니, 참으로 질척이고 더러운 관계이다.

그렇게 한 몇 분을 가만히 생각에 빠졌다. 오묘한 빛깔의 찻잔을 바라봤다. 죽을 용기따위 없다. 죽고싶지도 않았다. 죽어서도 함께할거라면, 가능한 오래 이곳에 남아있고 싶었다. 그러나 그동안 이 고통을 받아낼 용기또한 없었다. 그 어떠한 용기도 없는 나는 이렇게 선택의 길에 서버렸다. 그리고, 이내 떨리는 손을 붙잡고 찻잔을 들었다. 차가운 찻잔의 손잡이 부분이 뜨뜻했다. 이내 차를 들이켰다. 향기가 좋다. 차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 작고 큰 가시들을 거쳐, 이내 내 장기 안 구석구석을 휘돌고 다니는 것이 잔인하게도 생생히 느껴졌다. 따뜻한 차가 내 몸 안에서 움직였다. 내가 차를 다 마시고 온기를 뺏긴 찻잔을 내려놓자, 연도 찻잔을 드는 소리가 들렸다. 연이 차를 마셨다. 꼴깍, 꼴깍… 우리는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 차를 함께 마셨다.

처음으로 느껴본 고통을 안았다. 그 속에서 묘한 희열을 느꼈다. 지긋지긋한 삶이 이제서야 끝이 났다. 후회스러운 것들도 꽤 있었지만 이제와서 후회해 뭣하겠는가. 온몸이 뜨겁다못해 불이 붙은듯 화끈거렸다. 이대로는 정말 녹아버릴 것 같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시야는 이미 녹아버리기라도 한 듯 일렁였다. 평생 새까말줄로만 알았던 눈 앞이 조금씩 흔들리더니, 이내 지진이라도 난듯 미친듯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끝이구나, 싶었다.

“사랑해요….”

연의 마지막 고백에 나는 답할 수 없었다. 목구멍의 가시들은 차의 온기에 역류해 내 입가를 뚫고 나왔다. 정신을 차렸을 때엔, 나는 이미 쓰러져있었다. 차가운 바닥이 느껴졌다…. 그게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연과 매일을 함께 했던 이 공간에서의 추억도 아무도 모를 미지의 죽음 속으로 아득히 사라졌다. 연의 거짓된 구원은, 나를 지옥으로 내몰았다. 모순덩어리의 사랑을 했다.

___


https://curious.quizby.me/Yusu…
댓글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