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구름에 잠긴 추억
_ 쏴아아아아아
그날, 점심시간부터 비가 줄기차게 쏟아져내렸다. 우산도 없고, 부모님 두 분 다 야근인 나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_ 에이, 곧 그치겠지?
그러나 내 바람과 달리 비는 수업이 끝나도 멈출 생각이 없었나보다.
_ 어이, 김수혁. 우산은 있지?
옆자리에 앉은 임시호가 거들먹댔다.
_ 날 뭘로 보냐, 새끼야.
대충 그렇게 둘러댔지만... 사실 다른 방도가 없었다. 임시호는 우리 학교 일진 중 탑이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늘 청소 당번은 나와 임시호 패거리였다.
_ 야, 김수혁, 청소는 너가 다 해라. 제대로 안 해서 담임한테 들키거나 말하면, 알지?
임시호가 가운뎃손가락을 날리곤 튀었다.
_ 미친 놈들...
속으로 욕을 내뱉곤 청소를 시작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교실이 깨끗해졌을 때도 비는 계속 퍼붓고 있었다. 학교 정문 천막 아래서 하염없이 걸터앉아 기다리고 있을 때,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이 들렸다.
_ ...우산 없어?
박설빈이었다. 우리 학교 인싸 중 한 명이랄까? 외모도 꽤 예쁘고, 무엇보다 뭐든지 다 잘해서 남저아이들까지 믿는 애였다. 그런 애가 나 같은 개찐따한테 말을 걸었다고?
_ ...응.
_ 내 거 빌려줄까.
_ 그럼, 넌 어떡해? 너가 없잖아.
_ 바보야, 같이 쓰고 가자고! 어차피 집 방향 같잖아.
쿵. 내 심장이 내려앉았다. 빨개진 귓불을 감추려고 앞머리를 넘기는 척, 귀를 가렸다.
_ 뭐, 그래. 진짜 고마워.
타박타박타박. 이미 학생들이 사라진 학교 근처 거리는 우리의 걸음 소리와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그리고 내 거친 숨소리로 가득 찼다.
_ 앞으론 임시호 패거리한테 뭐라고 말 좀 해봐.
고요한 적막 속 박설빈이 입을 열었다.
_ 그러다 나 진짜 맞아.
난 의미없는 헛웃음을 터뜨리곤 말을 이었다.
_ 걔네 이길 사람, 우리 학교에 없어.
_ 있는데? 나.
_ 뭐?
얘가 비 맞아서 정신이 이상해졌나, 아니면 나한테 옮은 건가...
_ 임시호가 나한테 고백했어.
_ 헐...
머릿속 떠오르는 단 한 글자 헐을 내뱉었다.
_ 나, 아무래도 너 좋아하는 것 같아.
박설빈이 말했다.
_ ...진짜야?
_ 응, 너만 보면 심장이 뛰고... 너밖에 생각 안 나. 김수혁, 나 너 좋아해.
박설빈의 조곤조곤한 말이 내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다급히 할 말을 두뇌 화로에서 찾은 나는 입을 뗐다.
_ 이 세상 천지에 널린 인싸 남자들 두고 나 같은 사람 좋아해줘서 고마워. 나도 너 좋아... 우리 오늘부터 1일 할래?
서로 눈이 마주친 박설빈이 살짝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순수한 웃음에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되었다.
그 이후에 닥칠 비극은 상상도 못하고 말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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