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유효기간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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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1 19:31조회 37댓글 3미드나잇
2화

수능 성적표가 나온 날, 교실은 다시 한 번 시끄러워졌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가 전화를 받으러 복도로 뛰쳐나갔다.
누군가는 크게 웃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아 종이를 접었다 폈다 했다.
점수는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좋지도 않았다.

애매했다.

친구가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너 어디 쓸 거야?"
"글쎄."
"야, 넌 잘 나왔잖아. 욕심 좀 내봐."

욕심.

그 단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예전엔 그 단어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안정적으로... 쓰려고."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이미 머릿속에서 여러 번 계산해본 선택지였다.
가능성, 합격률, 등록금, 거리.

"너 원래 거기 가고 싶어 했어?"

친구의 질문은 가볍게 던져졌지만
그녀는 잠깐 멈춰 깊이 생각했다.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점수는 아슬아슬했고,
부모님은 은근히 반대했다.

"굳이 위험하게 쓸 필요 있냐"는 말.

그녀는 대답 대신 웃었다.

"다 똑같지 뭐."
다 똑같지 않았다.

그날 밤.

[당신의 열아홉은 26일 남았습니다.]
[회수 진행률: 19%]

19%.

그녀는 괜히 심장이 한 번 덜컹 내려앉는 걸 느꼈다.

"아, 씨 이상한 숫자놀이에 왜 신경 써."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덮었다.

하지만 그 다음 날,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시간에 일이 생겼다.

"그래서, 최종 지원 어디로 할 생각이니?"
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잠깐 숨을 골랐다.
"저... 사실은-"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가고 싶은 학교 이름이 혀끝까지 맴돌았다.

하지만 그 순간,
엄마의 얼굴이 스쳤다.
"괜히 모험하지 마."
"현실적으로 생각해야지."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여기로요."

안정적인 선택지였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현명하네."

현명하네.
그녀는 그 말이 이상하게 너무 무거웠다.

상담실을 나오며,
어딘가가 조금 납작해진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를 손에서 놓친 것처럼.

그날 밤.

[당신의 열아홉은 23일 남았습니다.]
[회수 진행률: 31%]
[추가 항목 준비 완료]

그녀는 화면을 오래 바라봤다.

"뭐가 또 준비됐다는 건데."

울고 싶었다.
그런데 눈물이 올라오다 말았다.
마치 어디선가 제동이 걸린 것처럼.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유는 없었지만.

손가락으로 메시지를 길게 눌렀지만 삭제 버튼은 보이지 않았다.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녀는 피식 웃었다.

"영화 찍어? 아님 소설 쓰냐?"
그렇게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결정이 빨라졌다.

예전 같으면
"나 이거 하고 싶어."
라고 말할 순간에

이제는
"현실적으로 이게 더 나아."
라고 먼저 생각했다.

원하는 것보다
괜찮은 것을 고르는 일이 쉬워졌다.

쉬워졌다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른 채.

며칠 뒤,
친구가 갑자기 울면서 말했다.

"나 재수할까 봐."

예전 같으면
위로 해주고,
같이 울어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엔 말했다.

"괜찮아. 아직 방법 많아."
차분하고, 안정적인 말이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왜 하나도 울컥하지 않았지?

분명 친한 친구인데.

휴대폰이 진동했다.

[당신의 열아홉은 21일 남았습니다.]
[회수 진행률: 39%]

39%.

그녀는 화면을 꺼버렸다.

착각이겠지.

그냥,
조금 철든 것뿐이겠지.

하지만 그날 밤,
그녀는 오랜만에 깊이 생각했다.

상담실에서 삼켜버린 그 한 마디.
'저, 거기 가보고 싶어요...'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자꾸만 마음에 남았다.

창밖엔 아직 눈이 오지 않았다.
대신 바람이 더 세게 불었다.

그녀는 창문을 잠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 안의 무언가도
잠기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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