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curious.quizby.me/zeoz…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참 더럽고 추악했다. 밖에 나간 나의 코가 빨갛게 무르익을 때면 그가 딸기라며 놀렸고,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겨울이 됨을 실감하곤 했었다. 밖에선 회색 세상에서 눈물을 흘리는 눈들이 뚝뚝 떨어졌고 밖은 온갖 조명들로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춥다.”
그의 다정한 음성 하나가 내 온 심장을 녹였다. 마치 프라이팬 위에서 뜨겁게 달궈지는 버터마냥 귀는 점점 달아올라갔다. 나는 그것을 구원이라 믿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이런 구원 따위는 절대 줄 수 없을 것이라 맹세코 생각했다. 그가 내게 어떤 파렴치한 짓을 저질러도 그가 내게 하는 것은 전부 사랑의 한 종류라 여기고 따를 수 있었다.
“구원해 줘.”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줄곧 입을 열지 않던 내가 먼저 꺼낸 말은 구원해달라는 말이었다. 그의 따뜻한 품과 손아귀를 보니 나는 이 남자에게 구원을 받아야만 할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수줍은 듯이 발갛게 익어 아래로 떨어지는 단풍들은 아이들의 뛰놈에 의해 억지로 이리저리 휘둘려졌다. 창을 통해 그런 모습을 내다보니 마치 내가 그런 단풍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졌다.
“넌 구원을 믿어?”
그가 내게 조곤히 물었고 나는 대답을 속으로 삼켰다.
“사랑해.”
그는 피식 웃으며 나의 뒷머리를 매만졌다.
“그럼 그렇지.”
사랑의 열병은 늘 그렇게 찾아온다. 구원과 사랑, 그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열병에 못 이겨 그에게 사랑과 구원을 갈구하고 마구 더렵혀진 옷으로 기대어도 한 마디 없이 보듬어주던 그의 손길이 떠올라 가끔은 눈물이 맺힌다. 마치 한겨울 창문에 매달리는는 동그란 이슬들처럼.
함박눈이 흠뻑 쏟아지는 밖을 보니 점점 더 이 기분은 오묘해져 갔다. 소복히 쌓인 눈이 그가 저를 안아주던 품보다 훨씬 따뜻해보여 창틀 너머로 당장 뛰어들고 싶었다. 죽음을 예감한 것을 알면서도. 그는 생명부터 죽음까지 전부 나를 위해 내주었지만 내가 그에게 전한 것은 거짓된 사랑이 담긴 진심, 그뿐이다. 그를 몇 년도 더 사랑했지만 남는 것은 폐허 속 있는 깨진 유리 조각 중 하나였다.
가끔 도로를 달리며 유리를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달리는 차와 함께 유리에서 속도를 경쟁하던 물방울들이 시속을 높이는 순간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감에 수치를 느낀다. 그렇게나 열심히 내려가던 물방울이 한순간에 공중으로 흩뿌려지는 광경을 보고있노라면 두 뺨이 화끈거려 죽을 지경이다. 내가 달려온 인생이 전부 낭떠러지에 몰아지는 기분이 들 때면 저도 모르게 얼굴에 응고된 눈이 점점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아, 안 돼...”
발간 형광등 앞에서 차를 멈추세웠다. 도저히 눈물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얼굴이 밤 유리에 비쳐 더욱 선명이 빛났다. 그의 얼굴. 그의 얼굴이 너무나 보고팠다. 죽은 것을 알면서도 파렴치하게 그의 목소리, 품이 그리워 참을 수 없었다. 한 번, 아니, 십 초라도 그를 다시 안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으리라고.
“... 네 뜻이 뭔지 잘 알겠어.”
그가 내게 주었던 것은 그 어떤 사랑도, 위로도, 고통도 아닌 그저 역겹고 더러운 구원, 그뿐이었다. 질퍽거리던 청춘을 지나 만개하지 못한 연이 구천에 피는 것만을 즐겁게 지켜보고, 함께하고. 그의 얼굴에 노을이 드리울 때 즈음에 나는 깨달았다.
“네 더러운 구원이구나.”
가드레일로 핸들을 꺾었다. 이제 나도 네게 구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