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2 22:27•조회 55•댓글 2•5eo1z
사건의 발단은 저녁이었다. 미하엘은 미팅 탓인지 계속 졸려하며 먼저 씻으러 들어갔고, 나는 그런 미하엘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한적하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 아담! 거기 수건 있는거야? 왜 손에 안 잡히지?
미하엘이 수건을 핑계로 먼저 나를 불러냈고, 나는 그런 미하엘을 따라 화장실로 가보려던 찰나 • • •
* 문 열어!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
문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범비 정부 놈들의 둘째 침략인가. 나는 아무 소리 내지 않으면 괜찮을 줄로만 알았다.
* 아담... 제발!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계속 화장실로 향했고... 미하엘의 사색이 된 얼굴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저 또 미하엘의 불안이 오른 줄 알았다.
* 무슨 일인데, 미하엘?
나는 화장실 안으로 거칠게 잡아끈 미하엘의 손길에 미끄러질 뻔 했지만, 미하엘은 그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로 내 귀에 속삭였다.
* 평범한 범비 정부가 아냐... 낌새가 이상해.
나는 그제야 정신이 들어 급히 화장실 문을 잠갔다. 어차피 정부의 레이더 한 번이면 모든 것이 들통날 터. 미하엘은 이미 그것까지 예상하고 나를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 무슨 소리야? 평범한 정부가 아니라니...
지금까지 내가 마주했던 큰일들은 고작 범비 정부나 살인 도중 들킬 뻔 했던 것, 두 가지가 전부였다. 근데 미하엘이 아까보다 더욱 불안에 떨 정도면서 평범한 정부가 아닌 것. 나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 범비가... 아닌 것 같아...
범비가 아니라니. 어째서? 말투와 행동 모두 범비인들의 특징이었다. 내가 머리를 굴리는 소리라도 들렸던 걸까? 미하엘은 손을 덜덜 떨며 내 귀에 대곤 속삭였다.
* 예를 들어... 사헬이라던가.
사헬. 범비를 통솔하는 집단이었다. 그리 큰 범비를 통솔하면서도 지금껏 단 한 번 논란이 터진 적이 없었던, 아주 비밀리에 감춰진 집단.
청부업자들에게 사헬이란 지옥이었다. 애초에 사헬은 범비에서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끔 꼭 막아야 했다. 그것이 정부의 명령이었으니. 근데 그런 범비에서 청부업자가 활동하는 중이다? 그건 제 발로 사헬에게 살해해달라 부탁하는 꼴이었다.
그리고 참고로 말해주자면 사헬은 절대 정부의 밑이 아니었다. 표면적 지배자는 정부가 맞았지만, 실질적 지배자는 권력과 부, 명예가 더욱 왕성한 사헬이었으니까. 정부는 사헬에게 비빌 감이 안 되었다.
* 사헬...?! 미친거야? 사헬이 어떻게...
어떻게라니. 조금만 생각을 하면 나오는 답이었다. 정부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사헬에게 돈을 주고 없애라 명령 같은 부탁을 했고, 나는 그런 범비의 살인청부업자였으니까.
* 일단, 숨 죽이자. 문 열지 말고, 집에 없는 척. 혹시 레이더에 걸려도, 문은 어차피 봉쇄되어 있으니 괜찮아.
나는 당황함을 감추곤 먼저 미하엘을 달랬다. 나보다 더욱 감각이 좋은 미하엘은 아마 씻기 전부터 눈치 챘을지도 모른다. 다만 확신이 서지 않아 경과를 지켜본 것이었겠지.
* 아담... 우리, 사헬에게 걸리면 업도 끝이야... 너와도 이제 더이상은 못 보게 되는...
그렇게 말하다 미하엘은 굵은 물방울을 조금씩 떨어뜨렸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미하엘이 생각보다 나를 많이 지지하고 있었구나, 라고. 한편으론 고마워지기도 했다.
* 걱정하지 마, 미하엘. 아무리 사헬이어도 저 현관문 못 따. 미하엘 그렛시, 정신 차려봐.
미하엘은 내가 이따금 미하엘의 풀네임을 부를 때면 정신을 곧잘 차리곤 했다. 물론, 엄청나게 패닉을 받지 않은 이상은.
* 아담, 아담... 어떡해...
미하엘은 아직도 사헬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