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未練): 아직 다 익지 않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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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24 23:53조회 67댓글 0유키노텐시
빛바랜 분홍빛 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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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오후, 뽀얀 먼지 속에 잠들어 있던 연분홍색 CD 케이스를 꺼내 든 순간의 떨림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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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빛바랜 분홍색이라기보다, 수줍게 물들었던 그 시절 우리의 뺨을 닮은 색이었어요. 조심스레 덮개를 열자 매끄러운 원반 위로 창밖의 오후 햇살이 미끄러지듯 내려앉네요.

마치 도서관 창가에서 책장을 넘기던 당신의 손등 위로 부서지던 그 찬란한 빛의 조각들처럼요.


​오디오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정적을 깨고 흘러나오는 선율보다 먼저 내 가슴을 채우는 것은 터질 듯한 고동 소리죠.

마디마디 끊어지는 기계음은 당신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의 나의 서툰 박동을 닮아 있고,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부드러운 멜로디는 내 이름 뒤에 수줍게 덧붙여지던 당신의 다정한 목소리와도 같아서요.


​그 시절의 저희는 서로의 마음을 섣불리 꺼내 놓는 대신, 이어폰 한쪽씩을 나누어 낀 채 유선으로 연결된 그 좁은 거리감을 즐기곤 했잖아요.
어깨가 살짝 맞닿을 때마다 온몸의 신경이 그 지점으로 쏠려가고, 손끝만 스쳐도 세상의 모든 색채가 선명하게 살아나던 기적 같은 순간들.



​책상 위에 놓인 너덜너덜한 종이 위 문제들은 그때의 우리가 얼마나 절실하게 서로의 마음의 빗장을 풀었는 지를 증명하는 음표와 같고,

무심코 그어 놓은 연필 밑줄들은 미처 말로 다 하지 못한 고백들이 오선지가 되어 박제된 흔적일 뿐이에요.

​하지만 그 간지러운 흔적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비밀을 공유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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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첫사랑을 흔히 지나가는 소나기라 말하며 금세 잊힐 감정이라 치부하려나.

​뭐, 상관없어요.


​여전히 저와 당신은 이 분홍빛 선율 속에서 길을 잃는 일에 몰두할 테니까요.


​함께 걷던 등굣길의 싱그러운 풀냄새와,
바람에 흩날리던 당신의 머리카락 끝에서 풍기던 그 향기가 너무도 선명했기에 도저히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어요.
방 안을 가득 채운 음악이 마지막 트랙을 향해 달려가는 저녁이 오면, 저는 내 마음속에 남은 가장 말간 설렘들을 모두 끌어모아 먼지 쌓인 케이스를 다시 정성스레 닦아내요.


​부서질 듯 찬란했던 그 계절의 조각들을 기억의 가장 따뜻한 구석에 묻어둔 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눈부신 분홍빛 시간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니까요.

​비릿한 새벽 향기조차 잊게 할 만큼 달콤한 그 시절의 공기를 가슴에 품고,


영원히 바래지 않을 이 CD의 기록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사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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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오로지 그것만의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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