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8 17:07•조회 24•댓글 6•한지우
여울#두 번째 밤
여울:물이 빠르게 흐르는 곳
ㄴ감정의 격류
비는 그쳤지만, 지수의 마음엔 여전히 안개가 깔려 있었다.
그녀는 새벽녘에 눈을 떴다. 감나무 아래, 흙이 뒤틀린 자리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삽을 들고 마당으로 나선 지수는 조심스럽게 그곳을 파기 시작했다.
흙은 생각보다 부드러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나무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자 안에는 오래된 수첩과 사진 몇 장, 그리고 또 다른 편지가 있었다.
편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수야, 이건 네가 언젠가 필요할 때 열어보길 바랐단다.
내가 너에게 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있어.
하지만 네가 이 집에 다시 돌아온 순간, 나는 알았어.
너는 준비가 된 거야."
지수는 수첩을 펼쳤다.
어머니의 일기였다.
짧은 문장들 속에 담긴 외로움, 지수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매일 감나무 아래에서 차를 마시며 딸을 기다리던 마음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오늘도 감이 익어간다. 지수는 잘 지내고 있을까.
내가 괜찮다고 말한 건, 지수가 걱정하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야.
하지만 사실은… 늘 보고 싶었단다.”
지수는 그 자리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그 눈물은 후회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건 어머니의 사랑을 뒤늦게나마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의 눈물이었다.
그날 오후, 지수는 마을을 천천히 걸었다.
낯익은 골목, 오래된 슈퍼, 그리고 철물점 앞에 멈춰 섰다.
철물점 주인은 지수를 알아보고 말했다.
“그 집, 어머님이 참 아끼셨어요. 매일 감나무 아래서 차 마시며, 따님 얘기만 하셨지.”
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이제 저도 그 나무 아래서 차를 마셔야겠네요.”
그리고 그렇게, 지수는 그 집에 머물기로 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 대신, 그녀는 오래된 집을 조금씩 정리하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감나무 아래, 매일 차를 마시며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듯 중얼거렸다.
“엄마, 나 이제 괜찮아. 정말로.”
-by 한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