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속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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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30 18:18조회 49댓글 2pea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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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빛 살결이 피어난다.

입 속으로 숨긴 편지지 하나.

얼굴은 헐렁한 흰색 천으로 감싸 묶이고, 두 팔은 굵은 마끈으로 묶였다. 천에 막혀 간신히 숨만 쉬고 있다.

왼쪽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철봉을 휘둘러 머리를 강타한 것일까. 뼈는 산산조각 나고, 뇌에 박힌 것 같다.

흘러내리는 피가 흰색 천을 물들인다.


“살…려줘….”


쪼그라드는 폐를 붙잡고 헐떡이며 외친다. 짙은 흙 향이 숨통을 조여온다. 라벤더 꽃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몇 분이 지나갔는지 가늠이 안 간다. 입 안에 머금고 있던 편지지는 침샘에 녹아 내 몸속으로 삼켜졌다.

이젠 전해지지 못한 편지. 풀리지 못한 엄마의 한.



귓가에는 강가의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끝을 간지럽히는 잔디의 환영을 느끼며 그대로 강가에 빠졌다.

꽃 하나 보이지 않던 시야가 물에 닿자 트여졌다. 강 안에 보라빛 꽃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라벤더 꽃이었다.

숨이 조여오는 통증에 저항하며 발버둥치자, 라벤더 꽃들이 다리를 톡톡 친다. 폐에 있던 숨이 삐져나와 공깃방울들이 위로 올라간다.

남아 있던 기력을 몸부림치는데 다 쓰고, 저항할 힘이 없어졌다. 몸이 축 늘어져 강 아래로 천천히 잠식되어간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주마등 같은 고통은 심해졌다. 아득한 추억부터, 생생히 느껴지던 뜨거운 쇠붙이의 고통까지. 눈이 감겨지고 감각은 사라졌다.



누군가 나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위로 끌어올렸다.

이상하다. 내 팔은 묶여 있어서 손목을 못 잡을 텐데. 그곳에는 사람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는데, 내 몸은 여전히 심연으로 빨려가고 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날 끌어당기고 있는 누군가를 쳐다보았다. 햇빛에 가려 얼굴은 안 보였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한 번 뻥긋거렸다.

“가자, 집으로.”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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