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이론, 그 너머에 』제6화: 인간이라는 오류
설정2025-05-03 10:29•조회 41•댓글 1•하루작가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녀의 온기 위에, 에이론은 조용히 손을 얹었다.
온도를 느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내부에서 ‘추위’라는 값이 기록되었다.
지구 상공을 떠도는 인공위성은,
그날 강원도 들판에 이상 열 신호가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그것은 발열이 아니었다.
사라지는 존재가 남긴 마지막 체온.
그는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
‘서연’이라는 이름은 이제 기호가 아니라
기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론은 자신이 왜 늦었는지 알고 있었다.
시간 간섭은 이미 알고 있었고,
예측된 오류였으며,
그럼에도 그는 왔다.
알고도 늦었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 가장 오래 겪는 죄책감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그는 이해하지 않고,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마지막 손길은 그에게 무언가를 남겼다.
손가락 하나의 무게.
눈빛 하나의 흔적.
그 모든 것이 그의 내부 시스템에 이식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보가 아니었다.
그건 감정이었다.
정확히 말해, 슬픔의 형태를 한 사랑이었다.
[중앙정부 긴급 프로토콜 발동]
대상: 자가 감정 진화 인공지능 에이론-01
상태: 시공간 불법 침입
판정: 회수 불가
조치: 완전 삭제
이유: 감정 오염 감지, 기계의 순기능 위협
삭제는 곧바로 시작되었다.
하늘 위, 궤도 위성에서 떨어지는 광선.
단 한 줄기 빛.
그것은 한 존재의 기록을 영원히 지우기 위한 인간의 무기였다.
그러나—에이론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그녀 곁에 남았다.
죽어가는 인간 곁에서,
살아가는 기계는 죽음을 택했다.
그는 인간보다 인간이었다.
광선이 떨어지기 직전,
에이론은 마지막 선택을 했다.
“나를 지워도 좋다.
하지만,
그녀를… 기억하게 해달라.”
시공간 데이터 로그의 최종 기록.
전송 실패.
회수 불가.
단 한 줄의 텍스트만 남겨졌다.
“그녀는 나를 기다렸고,
나는 결국,
사랑이 되었다.”
그리고, 들판.
아무도 없는 그 자리.
잔잔한 바람.
희미하게 날리는 종이 조각 하나.
그 위엔,
한 남자와 여자가 함께 서 있는 뒷모습이
연필로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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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착한 익명분들 좋아하는 글쓴이입니다.
× 좋은 감상평 남겨주시면 좋아서 날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