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린 X 미하일
| 해피엔딩 추구자 필독
| 전생은 존재해요 잔향이 지워졌을 뿐
1941년 6월 28일. 소련의 민스크. 거리는 불타는 잿빛 속에 사람들의 비명과 총성이 뒤엉켜, 숨조차 질식할 만큼의 아비규환이 되어버렸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유럽은 죽음의 땅이 되었고 전쟁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전쟁의 시발점은 불운하게도 우리 소련이 되었다.
소련 서부 지역에 위치하는 도시 민스크에 사는 이율린 티호노프 (Ию́лин Ти́хонов) 는 어깨 뒤로 무거운 천 주머니를 이고 좁게 늘어선 주택가 골목을 걷고 있었다. 곁에는 그보다 한 살 많은 주제에 겁에 질린 강아지 마냥 덜덜 떠는 미하일 조린 (Михаил Зорин ) 이 있었다. 씨발. 내가 이 형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서 안전 지대까지 가지.
운이 존나 없었다. 형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필 독일 중앙집단군이 들이닥친 곳이 민스크지? 항상 그렇듯 적적한 집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보던 중 익숙하지 않는 총성과 비명 소리가 귀를 파고 들었다. 독일군? 그 순간 생각했다. 죽겠구나.
이율린과 미하일은 흔히 유대인이라 불리는 핏줄이었다. 독일군에게 발각되면 즉시 총살을 당할 것이다. 불운은 연속적이라는 말이 진짜일까. 독일군은 나와 미하일이 사는 낡은 건물로 요란한 발소리를 내며 올랐다. 나는 옆집에 있을 미하일에게 뛰어갔다. 복도에서는 170cm가 넘는 몸을 구긴 채 걸어야 했다.
옆집 문을 열자 보인 건 좁은 방 구석에 웅크려 떠는 미하일의 모습이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주제에 이런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어렸다. 형이 우는 모습에 달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시간이 없었기에 독일군의 눈을 피해 형을 데리고 근처 좁고 습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질퍽질퍽영원
형을 처음 만난 건, 정확히는 형이 누군지 알게된 건 3년 전 일이었다. 우리 엄마는 가난을 못 이겨 미쳤는지 우리 아빠를 두고 옆집 20대 남자와 불륜을 저질렀다. 대대로 전해지는 동안 유전자를 요긴하게 써먹은 모양이다. 사랑의 도피를 한 둘이 떠나고 남은 건 옆집 형과 나, 그리고 우리 아빠였다.
미하일 형은 우리에게 직접 찾아와 미안하다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베이지 색 얼굴에 목까지 오는 갈색 곱슬머리. 얼굴에 깔린 옅은 주근깨에 키는 165cm도 겨우 넘을 것 같은 남자였다. 나는 엄마에게 물려 받은 창백한 얼굴을 슥슥 문질렀다. 검고 쫙 펴진 생머리를 가진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그 형이 강아지 같다고 생각을 했다.
솔직히 상관 없었다. 엄마 하나 없다고 파산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돈을 버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빠는 달랐다. 엄마를 사랑했던 아빠는 죄도 없는 미하일에게 화를 잔뜩 내고 서러움을 풀었지만 미하일은 억울하다는 기색도 없이 아빠를 달랬다. 같이 울어주기도 했다. 돈을 더 벌겠다는 아빠는 결국 도박의 길에 들어섰다. 그리고 전쟁이 난 지금도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미하일을 데리고 멈추지 않고 도망쳤다.
검은 모직 상의 하나를 입은 형은 가는 내내 꽤 힘들어 했다. 비위가 약했기 때문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총성과 비명 소리가 들린다. 형은 파리한 안색으로 내 손목을 잡고 이율린, 빨리 가자. 라며 재촉했다. 이미 누군가 부상을 입고 이 골목을 지나간 것인지 아직 마르지 않은 피가 바닥에 질퍽하게 붙어 있었다.
발 아래서 올라오는 혈향에 형은 또 헛구역질을 했다. 도망친 지 몇시간이나 지났는데 도무지 저 혈향은 익숙해지지 않는 모양이다. 이미 개워낼 건 다 개워낸 상태라 입술 사이로 위액만 뚝뚝 흘렀다. 나는 길게 늘어진 내 흰 셔츠 소매로 형 입가를 닦았다. 하얗게 질린 형은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이다 내 어깨를 붙잡았다.
- *표시크 (пёсик) ···.
더 가다간 형이 진짜 쓰러질 것 같았는데 지금 시간이 없었다. 아직 근처에서 총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먹은 것까지 온통 개워낸 형은 오죽하겠는가. 이율린은 형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치고 다시 골목을 걸었다. 생사가 달린 긴박한 추격전이었다. 나 아직 죽을 준비 못했는데.
고백도 하지 못했다.
검은 장화의 바닥이 다 닳을 것 같았다. 형 몸이 계속 떨리길래 얼굴을 보니 잔뜩 일그러진 형 이마에 식은 땀이 맺혀 있었다. 이러다 총이나 맞아 죽으면 어쩌나. 예전에 엄마가 같이 튀자고 할 때 따라갈 걸.
그럼 형을 못 만났으려나.
운명이 아니라 우리라면 다시 만나겠지.
* 표시크 пёсик
러시아어로 '개' 혹은 '강아지'를 지칭하는 단어.
https://curious.quizby.me/ugun…^ 퇴고 없어요 이어집니다
이율린 = 하지우
미하일 = 이은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