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5 20:50조회 61댓글 5유하계
*23# (별이삼샵) = 발신자 표시제한


*23#010…

외워뒀던 그 애의 번호를 꾹꾹 누른다. 몇년을 남몰래 좋아해왔던 그 애의 번호를, 3개월간의 짝사랑 끝에 겨우겨우 받았던 그 번호를. 방에 들어오면 가장 잘 보이는 벽 구석에 붙은 꼬깃꼬깃 접힌 노란 포스트잇. 별짓을 다 해 얻어냈던 그 애의 번호가 적힌 포스트잇을 바라본다.
오늘이, 바로 그 3년의 마지막이다.

뚜르르, 뚜르르…
전화 연결음이 원래 이렇게 사람 심장을 떨리게 만드는 소리였던가? 갑자기 뭔 바람이 불어 고백을 하겠답시고 이렇게 난리를 치느냐,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너무 좋아져서. 말로 다 못할만큼, 좋아한다는 말로 담을 수 없을만큼 감정이 차고 넘쳐흘러서. 이대로는 안될 거 같아서. …그래서, 솔직히 찌질한거 잘 알지만… 별이삼샵으로, 발신자 표시제한이라는 이름을 빌려, 마음을 고백하려고 이렇게 전화를 거는거다.

몇 번 정도 연결음이 울렸을까? 전화를 받으면 뭐라고 말해야할지, 말투는 어떻게 해야할지, 목소리는 또 어떻게 해야할지와 같은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다. 그러다 대뜸 달칵, 하고 그 애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소리를 줄이려고 황급히 마이너스 버튼을 꾹꾹 누르는데, 재차 묻는 그 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할, 지금 말하면 당연히 염소마냥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하게 될것이였다. 아무리 나라도 염소에게 고백받고 싶진 않을텐데. 아직 아무것도 안했지만 괜히 귀 끝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여보세요?”

“그, 안녕.”

안녕은 무슨 안녕. 할 말이 달리 떠오르지 않아 대뜸 인사해버렸다. 방 맨 끝에 위치해있는 침대, 그 침대에서도 맨 구석에 자리잡아 무릎을 꿇고…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하는 내 꼴도 웃기다.

“…유한솔? 한솔이 맞지?”

“어, 어떻게 알았어?”

“모를 수가 있나~ 근데 왜 이렇게 전화한거야?”

괜히 내 목소리를 알아줬다는 생각에 기뻐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마 남이 봤으면 미친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 정도면 그 애도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심호흡을 하고 전화기 너머 조용히 내 말을 들어줄 그 애의 얼굴을 상상했다. 내 고백을 듣고는 어떤 표정을 지어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그냥 웃어주길 바랬다. 웃어주기만 한다면, 내 고백은 웃음거리가 되어도 좋았다.

“좋아해.”

그리고 내 입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제대로 가듬지도 않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나는 최악의 고백을 해버렸다. 휴대폰을 든 손에 땀이 차 휴대폰이 미끄러질 정도였다. 그 애는 아무말도 없었다. 어떻게든 수습을 해야했다.

“…좋아해서 그랬어. 나도 찌질한 거 알아. 그런데 전화할 용기가 안나서… 이렇게 한거야. 너 진짜 좋아해. 3년을 쭉 좋아해왔어. 내가 너한테 간식 줬을 때 내게 웃어줬을 때도, 우연히 하교길이 겹쳤을 때도, 가끔씩 시답잖은 문자를 주고받을 때도 쭉 좋아했어. 그리고 좋아해. …너만 괜찮으면 사귀어주지 않을래…?”

나름대로 고심하여 정했던 멘트를 뱉었다. 그 말이, 내 떨림이, 내 마음이 휴대폰을 넘어 그 애에게까지 도착했을지는 모르겠다. 일단, 내 입 바깥까지는 나갔고, 휴대폰까지는 도착했다는 것밖에 난 알지 못했다. 한참동안 조용했던 휴대폰에서 마침내 그 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알고 있었어, 너가 나 좋아하는거. …네 고백도 기다리고 있었고. 3년이나 기다리게 할 줄은 몰랐지만.”

“그거, …무슨 뜻이야?”

“사귀어보자는 뜻?”

“…어, 진짜? 진짜야…?”

“가짜겠어, 그럼?”

쿵, 하고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그리고… 약간 울뻔했다. 왈칵 쏟아지려던걸 억지로 막았다. 그럼에도 시야가 흐려졌다. 늘 보던 방인데도 왜인지 특별해보였다. 솔직히 말해서, 차일 걸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백을 하려던건 나도 그 애의 옆에 설만한 용기있는 사람이 되고싶어서였다. 그게 다였고, 나는 설령 차였더라도 쭉 그 애를 좋아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감상에 젖어있을 때, 침묵만이 감돌던 사이 그 애가 먼저 말을 걸었다.

“등교 몇 시쯤 해?”

“아, 등교. 음… 한 8시쯤.”

“빨리 가네. 내일 학교 같이 가자.”

갑자기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었다. 아까는 떨려서였다면, 지금은 묘하게 달랐다. 그냥 막, …좋았다. 모든게 좋았다. 노곤노곤한 봄날 밤, 기분 좋게 잠들었을 때 꾸는 꿈처럼… 모든게 꿈 같은데 생생히 들려오는 네 목소리가 꿈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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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자상무색 하편 들고올게요
맘에 안든다…
https://curious.quizby.me/Y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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