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얼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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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09 21:58조회 37댓글 0onke
얼음나무의 계절은 도래했다. 나뭇가지 밑 송골송골 피어나는 투명한 얼음은 아이들이 따먹기에 가장 좋은 농도였지만, 그만큼 높은 자리에 위치한 탓에 성장하지 않은 아이들은 울며 부모를 찾으러 가기도 일쑤였다. 수많은 잔가지들은 하나의 예술 작품을 형상시켜 마을의 명물로 자리잡게 되었으나 그 명물은 이제 곧 타국 밀랍꾼들의 손에 하나씩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밀랍꾼들이 외치는 구호에 우수수 떨어지는 작은 얼음 조각들은 아이들의 동공에 비쳐 그들이 끌어안았던 얼음나무를 연상케 했다. 마을에서 수백 년을 그 자리서 지켜오던 나무는 이제 온데간데 없었고, 나무 밑동만이 뿌리박혀 단면이 드리웠다. 얼음나무 밑에서 수줍은 뺨으로 얼음을 따먹던 아이들은 이제 광견병에 심히 걸린 개 마냥 밑에 소복히 쌓인 눈을 퍼먹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그 아이들이 미쳤다 외쳤지만 정작 미친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얼음나무였다. 다신 얼음이 열리지 않는 얼음나무 밑에서, 파릇한 초록잎 아래서 더이상 열리지 않을 얼음을 기대하며 입을 활짝 열었지만 정작 입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란 잎에 맺힌 이슬 뿐이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근대화가 빠르게 이뤄져 매연들이 눈앞을 매캐히 가로막고 있었다. 왼쪽엔 새까만 연기를 뱉는 공장이, 오른쪽은 새까만 매연을 내뱉는 차가, 뒤쪽엔 이미 새까맣게 시들어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허다했다. 그럼에도 앞을 보아하니, 절대 죽지 않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어떤 매연과 유독가스가 퍼져도, 꿋꿋이 살아남을. 나무에선 얼음 한 덩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광택을 뽐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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