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6 20:34•조회 44•댓글 0•이름없음
지옥 같은 퇴근길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익숙한 편의점으로 향했다. 딱히 살 것도 없으면서 맥주 네 캔을 만 천 원에 맞춰 고르는 손길이 기계 덜컹거리듯 무감각했다.
자취방 문을 열자마자 왈칵 쏟아지는 건 적막이었다. 불도 켜지 않은 채 침대 맡에 주저앉아 캔 하나를 땄다. 칙,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잠깐 채웠다 사라졌다.
스마트폰 화면을 켜니 SNS에는 온통 반짝이는 타인들의 일상이 가득했다. 누군가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와인잔을 부딪치고, 누군가는 노을이 예쁜 해외의 어느 해변을 걷고 있었다. 필터가 가득 들어간 그 사진들을 멍하니 넘겨보다가, 이내 화면을 뒤집어 엎어버렸다.
베란다 창문을 조금 열자, 후덥지근한 밤바람과 함께 아스팔트 열기가 밀려들었다. 저 멀리 차들이 불빛을 꼬리처럼 늘어뜨리며 달리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문득 작년 이맘때 썼던 일기장이 보였다.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던 시절의 기록들. 지금은 그저 매달 들어오는 월급에 저당 잡힌 채, 매일 똑같은 모니터 앞에서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미지근해진 맥주를 한 모금 삼켰다. 목구멍을 넘어가는 알싸한 쓴맛이 꼭 요즘의 인생 같았다.
'나 잘 살고 있는 걸까.'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질문이 마음에 툭 떨어져 무겁게 고였다. 유난히 달이 밝은 밤이었다.
내일 아침이면 또 출근 알람에 맞춰 좀비처럼 눈을 뜨겠지만,
오늘 밤만큼은 이 온도를 온전히 견뎌내고 싶어 오랫동안 불을 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