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 / 과격한 표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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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릿한 술 냄새가 거의 다 빠졌을 무렵, 술을 대신한 포도맛 전자담배 향이 집 안에 물들었다. 수인이 즐기던 것이었다. 찝찝한 담배 냄새에 달큰한 포도 향이 섞여 역겨운 탄내가 났다. 둘은 천천히 힘 빠진 공상에 취해 녹아들어가고 있었다. 며칠의 몽롱한 정적이 이어지던 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인터폰에 찍힌 사람은 몇 년 전 기억이 전부인 삼촌이었다. 그는 현관 렌즈를 응시하고 있었다.
“며칠 전에 정미가 죽었다. 아냐?”
붉게 충혈된 두 개의 동공이 쌍둥이를 노려보았다. 삼촌이 의자에 눕듯이 기대앉고는 입을 뗐다. 죽은 제 누이를 시작으로.
“뭐 아는 거 없냐? 형사 말로는 사고라더라. 하기야···”
수류는 한숨을 내쉬었고, 수인은 고개를 까딱이며 옅게 웃었다. 고작 열일곱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녀 둘의 살인사건조차 들춰내지 못하는 꼴이 우스운 듯 했다. 삼촌은 버석한 피부를 쓸어내리며 담배를 꺼내들었다. 수인이 입을 뗐다.
“사고 아닌데.”
“···”
“왜?”
미친 새끼. 삼 초의 정적 후 수류가 내뱉은 말이었다. 삼촌은 벌겋게 물든 눈동자를 굴리며 수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담배 연기를 훅 뿜으며 수인에게 꽁초를 던지고, 식탁을 두어 번 내려치더니 소리를 질렀다. 담배꽁초가 스친 눈가에 재가 붙어 화끈거렸다.
···
삼촌의 노성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쌍둥이에게 닿은 그의 시선은 혐오와 더불어 역겨움이 서려 있었다. 삼촌은 거친 숨을 몰아쉬다, 이내 웃음 같은 헛바람을 내쉬었다.
"둘이 했구나. 제 어미를, 그래."
삼촌의 눈이 수류와 수인을 번갈아 응시했다. 이내 그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번졌고, 수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수인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전자담배를 물고 있었다. 달콤한 포도 향과 차가운 살의가 뒤섞여 희미한 탄내를 풍겼다. 삼촌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그림자가 식탁에 앉은 쌍둥이를 덮쳤다.
"나는 이런 끔찍한 얘기 동네방네 떠벌리고 싶지 않아. 니들 미래 망치는 꼴도 보고 싶지 않고."
“그러니까,”
"다시는 서로 만나지 마. 영원히. 대신 이번은 덮어줄게. 다시 못 볼 사이라는 거다."
"싫어요."
낮고 단호한 수류의 목소리였다.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삼촌은 수류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
"선택의 여지는 없어. 너희 중 한 명은 나랑 가야겠다. 지금 당장."
삼촌의 손아귀에 붙들린 수류는 버둥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얼어붙어 수인을 돌아보았다. 수인의 눈빛 역시 흔들리고 있었다. 수인의 입에서 푸른 연기가 한 번 더 길게 뿜어져 나왔다. 침묵만이 그들의 이별을 배웅했다.
삼촌은 망설임 없이 수류를 집 밖으로 끌어냈다. 그제야 수류의 입에서 갈라지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이미 현관문은 닫혔고, 집은 다시 적막에 감싸였다. 수인은 한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앉아 있었다. 식탁에 떨어진 꽁초의 재가 달큰한 전자담배 향 위로 쌓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