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가뭄이 들어 널 먹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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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08 18:06조회 78댓글 3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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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이후로 줄곧 밝은 것보다 어두운 것을 좋아했다. 어둠은 늦은 밤에만 찾아왔고, 달은 밤이 되어야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늦은 밤 어슴푸레 흘러오는 달빛과 새벽 공기, 어둑한 달과 달의 그림자, 달이 품고 있는 토끼.


그래서 이상하게 토끼가 좋았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도망치는 뒷모습을 보면서 사랑해, 그 말은 영원히 닿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훗날 그 동그란 눈으로 날 똑바로 쳐다보게 되었을 때 난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느꼈다. 겁 없이 살갑게도 들이대던 토끼를 감히 밀어낼 수 없었다.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친해지게 되자 손을 잡고 싶었고 손을 잡게 되자 몸을 안고 싶었고 언젠가 결혼하고 싶었고 평생 함께하고 싶었다. 뭐가 됐든, 특히 행복이나 너 같은 것들이, 영원할 거라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울면서도 공포에 질린 표정은 짓지 않았다. 피는 분수처럼 쏟아졌다. 본능인지 욕망인지 싶은 것들이 사고회로도 거치지 않고 몸을 움직이게 했다. 살갗을 뜯었다. 사랑한다 읊고 싶었다. 씹고 뜯는 입 안에서 거친 쇠 맛이 났다. 말랑거리는 것이 있었다. 말랑거리는 것들이 있었다. 손을 잡고 싶었고 몸을 안고 싶었고 결혼하고 싶었고 평생 함께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아, 아니면, 다시, 처음부터라도.

손을 잡고 싶었는데 손이 없었다.


어라 왠지 토끼랑 사랑 비스무리한 걸 했던 것 같은데. 피와 번식, 위로부터 내려오는 먹이사슬과 망가진 세상, 파란 하늘같은 건 없는 소멸이 드리운다. 스모그 아래로 짙은 달빛이 흘러들었고 우연인지 운명인지 토끼 모양 그림자가 있는 달이 안개 사이로 제 몸을 드러냈다. 이런 곳에서 진정한 사랑같은 거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당연한 거잖아.


동시에 심장은 움찔거리며 피를 뿜었다.


세상 모든 일이 공평하게 흘러갈 순 없었고
그게 뭐였든 내 뜻대로 돌아간 적은 더더욱 없었다.


제멋대로 손이 심장을 뜯는다.

왜 네 심장이 내 손에 있어? 같은 의뭉스러운 사실들만.


여느 과거에 그랬듯 밝은 것보단 어두운 것이 내게는 더 잘 어울려서 제일 소중했던 작은 심장 하나 들고 난 부리나케 도망쳤다.


올해는 가뭄이 들어 널 먹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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