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 퍽퍽, 쿠당탕. 강당에 공 튀기는 소리가 울린다. 365일 뛰고 또 뛰어도 계속 뛰는 짐승들이 농구 한판 조지는 소리다. 보통의 경우 땀에 흠뻑 젖은 몸 위에 또 냉수를 뿌려 공기부터 바닥까지 질퍽거린다.
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
평소였다면 농구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을 것이다. 아이스크림 내기? 고! 떡볶이 내기? 고! 축구화 내기? 고! 람보르기니 내기? 고! 인생은 한방이니깐. 하지만 오늘 조금 고민한 건 순전히 내 옆에서 실실 웃는 개새끼 때문이었다.
- 엥 야, 나 하복인데?
- 벗고 뛰어.
- ? 나 안에 나시 입었어, 미친 새끼야.
- 형 몸이 보고 싶나 봐?
나는 엿을 처먹고 쫄?이란 말을 듣자마자 뛰어 나갔다. 아~ 해보던가. 그렇게 경기가 시작되고 10분이 지났다. 선수도 아니고 실력도 거기서 거기인 남고딩들이라, 뭐 치열하게 공만 쫒아 다니는 것이었다.
나같은 경우 그래도 평타는 치는 수준이었는데, 불편한 하복 때문인지 몸이 무겁고 축축 처진다. 호흡도 평소보다 더 가프고. 꾸역꾸역 계속 뛰다가 안되겠다, 싶어 경기 중간에 나왔다. 코트 밖에서 바나나킥을 먹던 돼ㅈ- 아니 개새끼가 나에게 물었다.
- 왜 나와?
- 어떤 개새끼 때문에 몸이 안 움직여서.
나는 팔 한쪽을 휘휘 저어 보이며 개새끼에게 다가갔다. 오늘 유독 힘든 것도 있고. 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옆에 앉았다. 개새끼는 정말 아무 생각없이 체력 부족이라고 나를 놀렸다. 나의 체력에 관해 깊은 토론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경기가 끝났다.
한탕 뛰고 온 새끼들 몸에서 땀이 질퍽거리며 흘렀다. 질퍽질퍽. 오늘의 분탕은 누구인가, 라는 주제로 침 튀기는 논쟁을 벌이며 계단을 오르던 그때 눈앞이 아득해지며 몸이 휘청였다. 내가 방금 뛰고 나온 것도 아닌데 왜지? 라는 생각을 하며 난간을 턱- 하고 잡았다.
- 뭐야, 이새끼.
- 존나 빈약하네. 몸 하나 지탱을 못해?
- 뒤질라고.
의미없는 대화가 오갔다. 저래서 연애 하겠냐고 날 걱정해주는 여자애들 사이에서 날 쳐다보는 개새끼의 눈이 보였다. 입모양으로 무언가 말을 한다. 음, 저건 분명 무리하지 말랬잖아. 두더지 새끼야. 라는 뜻이다. 나는 개새끼에게 윙크를 찡긋 날리며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했다.
낭만이 존나게 질퍽거렸다. 우리의 열여덟에. 창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비가 오고 있었다. 우산 없는데 시발.
꽉 끼는 하복, 달랑거리는 넥타이, 머리 위로 쓴 가방, 내 옆에서 뛰고 있는 푸들 한마리. 우리 곁에 나란히 선 푸른 나무들이 축 젖어 우리 머리 위로 물방울을 흘렸다. 버스 정류장까지 차라락 깔린 젖은 바닥이 미끌거려 몇번이나 발이 미끄러졌다.
내 옆에 활짝 웃는 네가 있었다.
질퍽질퍽청춘
아침과 함께 후끈한 공기가 나를 반겨 주었다. 에어컨을 끄고 잤나? 싶어 몸을 일으켰는데 물에 푹 잠긴 듯 무거웠다. 침대 시트가 내 식은땀으로 가득 물들어 있었다. 나는 그제야 내 몸이 병신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마 위로는 계란도 삶을 듯한 체온이 느껴지고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울렁울렁 메슥거렸다. 이 질퍽한 땀 좀 어떻게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샤워를 시작했다. 우리집 화장실 타일이 원래 이렇게 구불구불 했던가? 구불구불구불·····
쿠당탕.
병신같다. 그것도 개병신. 머리가 핑핑 도는 걸 보니 지금 등교는 절대 안된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했으나 홀로 외롭게 등교할 개새끼를 생각하니 몸이 저절로 튀어 나갔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5년 전부터 이 시기가 되면, 그니까 질퍽한 여름이 되면 나는 자주 앓곤 했다. 더위를 먹은 것도 아닌데 꼭 여름이 되면, 꼭 장마가 시작되면 그랬다. 처음에는 몸살 수준이었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열은 더 심해졌다. 그 사실은 지금 내가 병실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질퍽질퍽, 여기서도 식은 땀을 흘린건가? 아니, 나 쓰러졌었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개새끼가 튀어 나왔다.
- 너 이럴 줄 알았다.
뭐가 이럴 줄 알았다는 건지, 너는 알고 있었어? 너를 만난 이후로 내가 여름이 되면 아파. 너가 내 여름에 나타난 이후로.
- 괜찮아?
아니, 전혀, 하나도 안 괜찮아. 죽을 것 같아. 왜 너를 만난 건지. 질퍽질퍽질퍽··· 한번 시작된 생각들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너를 본 여름, 해는 또 더럽게 쨍했고 너는 더 쨍했다. 거기서부터 문제였다. 내가, 내가 개새끼를,
사랑해서.
- 아프면 좀 말을 하던가, 이게 뭐야.
- 5년 내내, 진짜···.
- 나도 몰랐어.
정말 몰랐어.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될 줄은. 아니 처음 그 순간부터 내가 너를 사랑했는지. 알아. 너를 사랑해서 내 열이 내리질 않아. 너의 그 개새끼같은 모습에 흠뻑 빠져서 질퍽거렸으니까. 멍청한 개새끼야.
내가 너를 더 사랑할수록, 나는 더더욱 빠졌다.
구덩이로.
질퍽질퍽청춘?
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질퍽······.
질퍽질퍽열병
https://curious.quizby.me/ugun…^ 질퍽질퍽열병으로 이어져요 퇴고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