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 / 급전개 주의
인어의 손은 물이 새지 않는다
"오늘부터 송씨가 연구할 녀석이야."
"오..."
"먹이는 하루에 세 번, 그냥 몸 상태만 계속 연구하고 기록해주면 돼."
"네."
"아. 송씨, 인어에게 정을 그리 주진 마. 수고해."
"네.."
부장 규씨는 역시나 험한 말을 편하게 했다. 인어한테 녀석이라니, 정도 주지 말라니. 속으로 온갖 욕을 다 했다. 머리 한가운데에 고속도로 뚫린 자식.. 뇌도 같이 뚫지 그랬어. 수고는 무슨 일 뼈 빠지게 하라는 소리잖아.
규씨가 떠난 연구실 문을 향해 음소거 폭행을 하고 있자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맡은 인어겠지. 뒤를 돌아 수조를 보자 보석을 박은 듯한 눈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 지저스. 26년 인생에서 이렇게 제 취향인 남자는 처음이었다. 근데 이제 인어라는 게 문제지.
인어는 금세 또 물을 첨벙 쳤다. 미간엔 작게 주름이 잡혔는데 인어 특징인지 피부가 슬라임? 같달까. 그래서 주름 하나도 예뻤다. 이내 윗입술을 쭉 내밀곤 꼬리로 물을 치며 저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이젠 인어도 날 깔보네. 때려치던가 해야지.
"이름이 뭐야?"
인어는 입은 꾹 닫은 채 눈을 굴리다 왼쪽 모서리를 가리켰다. 해(海)인(人).. 거참 대충 지었네. 인어라고 바다 사람 이런다. 내 미간은 좁혀지면 그저 불쾌한 골짜기일 뿐이다. 인어는 다시 날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물어볼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펜을 들고 눈으로 외형을 대충 분석하기 시작했다. 어깨까지 길렀지만 물에 젖어 뒤로 넘겨버린 은색 머리, 다부진 몸, 은색 빛이 도는 푸른 하반신과 그 끝에 달린 청록색 꼬리지느러미. 인어는 그런 저를 신기하게 바라보다 이내 흥미가 떨어졌는지 몸을 돌려 작은 수조 안을 헤엄쳐 다녔다. 그 눈이 정말 예뻤다. 다이아몬드 같네. 그래, 저 인어의 이름을 다이아로 지어야겠다.
"내가 고민해봤는데, 다이아 어때? 너 눈이 꼭 다이아몬드 같아."
다이아는 말을 못 알아듣는 건지 그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그날은 그렇게 혼자 아닌 혼잣말만 하다 퇴근했다.
다른 날도 변함은 없었다. 매일 출근하고, 다이아의 상태 확인 및 아침 인사-받아주진 않았다.-, 그날마다 다른 연구 기록, 다이아 앞에서 관찰과 혼잣말, 규씨에게 보고, 퇴근,ᆢ. 다이아는 한 번도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그저 유유히 헤엄치거나, 물을 꼬리로 첨벙 소리가 나게 치거나, 아니면 다이아몬드 같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밖엔 하지 않았다.
그날도 유유히 출근해 커피를 내리던 중이었다. 다이아는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다 이내 꼬리로 물을 치기 시작했다. 첨벙, 다이아만의 대화 방식이었다. 나는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다이아에게로 걸어갔다. 다이아는 손을 그릇 모양으로 만들어 물을 퍼올려 저의 앞에 보였다. 펄이 들어간 듯한 피부의 손은 물갈퀴가 있어서인지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았다.
"그거 알아? 인어의 손은 물이 새지 않아. 난 몰랐는데, 인간들은 물이 새나 봐?"
이게 다이아가 처음으로 내게 한 말이었다. 놀랄 틈도 없이, 답을 원하는 듯 다시 바라보는 눈빛에 얼른 커피를 내려놓고 손을 수조 안에 넣었다. 다이아는 그런 나의 팔을 잡아 물속으로 끌어당겼다.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라 나는 속수무책으로 끌려들어 갔다.
흰 연구 가운과 파란 셔츠가 물에 젖었다. 사원증은 목에서 벗겨져 물 위를 둥둥 떠다녔다. 난 어정쩡하게 다이아의 품에 안겨있었다. 작은 배려인지 어깨까지는 물 밖으로 나와 있었다. 인어의 체온은 인간보다 낮다. 그래서 다이아의 품도 차가웠다. 물 속이라 더욱 추워 몸을 한번 떨자 다이아가 입을 열었다.
"역시 따뜻하네. 너가 느끼는 것처럼 나도 추워."
"어.. 물 온도를 높여줄까?"
"아니, 이렇게 있어 그냥."
다이아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지 예쁜 미간이 다시 또 접혔다. 저를 다시 한번 세게 끌어안아 보고선 힘을 풀어줬다. 사원증을 챙겨 수조 밖으로 나오니 물에 젖은 생쥐 꼴이었다. 연구실에 있던 여분 옷을 찾아 갈아입는 동안 말이 오갔다.
"굳이 갈아입어야 하나?"
"인간은 물에 젖은 옷 계속 입고 있으면 감기 걸려."
"약해 빠졌네. 그냥 벗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치면 나는 계속 알몸이었는데."
"춥다고..."
다 갈아입고 수조 앞으로 와 커피를 챙겼다. 아까의 여파인지 수조 근처 여기저기에 물이 튀어있었다. 다이아는 수조에 기대 저를 삐딱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커피는 다 식어 밍밍했다.
"이젠 갑자기 끌어당기지 마. 옷 갈아입기 번거로워."
"내가 네 말을 들을 것 같아?"
"아니. 그럼 제안할게. 너 원하는 거 하나만 말해봐. 그거 들어주는 조건으로 나 물에 끌어당기지 않기. 어때?"
"음.. 바깥세상에 대해 알려줘. 인간들은 뭘 하고 사는지, 도시는 어떻게 생겼는지, 육지 동물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런 것들 말야."
"그거면 돼? 그걸 굳이 알고 싶어? 모르는 게 약이란 말도 있는데.. 사회는 그리 예쁘지 않아."
"상관없어. 난 내가 못 가본 곳이 궁금해. 이 몸뚱어리로 지하철을 탈 순 없잖아. 오히려 지금처럼 잡히기만 하지."
"...그래. 그거면 되는 거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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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urious.quizby.me/Good…안녕하세요, 빙화에요!
장편 준비한답시고 단편만 올리다니.. 그래도 장편 쓰는게 너무 길어져서 그 사이에 단편을 올려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는 저는 내일 또 찾아봽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