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나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평화롭던 베란다에서 시가나 태우고 있었다.
내가 이따금 시가를 피울 때면, 향을 맡고 들어온 미하엘은 차라리 마약을 하라며 진저리를 치곤 했었다.
미하엘은 시가 향을 끔찍이 싫어했고, 시가를 밥 먹 듯이 태우던 나는 그런 미하엘을 이해할 수 없었다.
* 아담, 이번 건은 잘 처리했어?
미하엘이 오랜만에 던진 질문이었다. 도통 서로 일이 바쁘니, 이런 사담을 해본 것도 꽤나 오랜만이었다.
* 응, 그럭저럭. 이번 애는 명줄이 길더라.
살인이 합법이 된 세상. 살인청부업자였던 나와 미하엘은 합법이 된 직후부터 일자리를 잃어 우울에 시달렸었다.
그러다, 내게 온 한 이메일로 인해 지금은 ' 불란 ' 이라는 아직 합법이 되지 않은 작은 소도시에서 청부업자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비록 소도시지만, 여기서 청부업을 하며 벌어들이는 돈은 깨나 쏠쏠했다.
* 불란 사람들이 원래 명줄이 길다나.
그것은 분명 미하엘의 농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농에 대해 깊게 생각했다. 어쩌면 불란 사람들은 더욱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에 기여가 될지도 모른다고.
* 오늘 저녁은 같이 먹도록 하지, 미하엘. 잠깐 이야기 할 사안이 있어.
우리는 주에 한 번씩 같이 식사했다. 서로 보고할 사항이 있으면 묵혀뒀다 식사 때에 이야기 했고, 나와 그 녀석이 청부 동맹을 맺는 순간부터 이미 사생활은 없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 뭔데 그래? 이메일로 뭐라고 오기라도 했어?
미하엘은 또 농을 줬다. 나는 시가를 끄며 가볍게 웃어 넘겼지만, 사실 이메일보다 더 큰 사항이 남아 있었다.
* 범비 정부에서, 우리를 초청했어.
범비. 살인이 합법이 되기 전 우리가 청부업을 했던 그 도시였다. 범비는 생각보다 아주 큰 도시여서, 사실 도시라 부르기도 뭐 했다. 나라 세 개를 합쳐놓은 것 만 했으니.
* 뭐?! 범비에서?
미하엘도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정부에선 분명 우리의 존재를 알아챌리가 없었는데. 불란에서 우리가 너무이름을 알렸나? 하기엔 불란은 너무나 작은 소도시였다.
* 응. 아직 서신은 보내지 않았어.
정부가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되면 벌어지는 일. 그것은 고작 형벌 따위가 아니었다. 듣기로는 차라리 불에 타 죽는 것이 낫다고 느껴질 만큼 가혹하다고 • • •
미하엘은 답지않게 패닉에 빠져 주저 않았고, 나는 덩달아 무릎을 굽혀 미하엘의 등을 쓸어내려 주었다.
* 어떡해... 패닉룸에라도 들어가는걸까...? 우리가 알던 동료 업자들 전부 정부에 잡혀 들어가서 사라졌잖아...
미하엘은 계속 말 끝을 흐리며 불안에 절여졌다. 그런 미하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불안에 빠질 듯한 위험한 향이 돌았다.
* 진정해, 미하엘. 일단 오늘은 일에 집중하고, 밤에 차분히 얘기해보자.
미하엘은 찬찬히 일어나 고갤 수긍했고, 나는 가볍게 미하엘의 엉덩이를 톡, 쳤다.
* 사내놈이 그리 쉽게 불안해하면 못 써. 그래서 업 일은 제대로 하겠냐.
미하엘은 내 말에 긴장이 풀렸는지 그제야 풋사과 같은 미소를 지었다.
* 계세요? *
현관문 너머에서 낯선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미하엘은 본능적으로 뒷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었고, 나는 옆구리에 장착했던 권총을 꺼냈다.
나는 현관문 가까이 밀착해 문 너머의 소리를 들었고, 미하엘은 인터폰으로 낯선 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 아, 아담... 우리... 도망쳐야 할 것 같은데...
고개를 뒤로 돌려 인터폰 화면을 보자, 범비 정부의 상징. 분홍색 훈장을 달고 있는 정부 경찰이 눈에 들어왔다.
002
나와 미하엘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그것은 ' 도망치자 ' 일지, ' 맞서자 ' 일지 정확히는 분간이 어려웠다.
* 안 계십니까? *
정부 경찰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물었고, 나와 미하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숨을 죽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도망치자 ' 의 뜻에 무언의 대답이었다.
* 에이, 허탕이네... *
정부 경찰이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나와 미하엘은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긴장해 절어 주저 앉았고, 손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못했다는 표현이 더욱 알맞을 것이다.
미하엘은 특히 불안에 약한 사람이라 삽십 분이 넘은 지금까지 계속 손이 떨리고 있었다. 또 저 작은 두뇌로 같잖은 망상이나 하는거겠지.
* 미하엘, 진정하고... 나중에 또 오더라도 그것보다 더 우리가 일찍 서신을 보내면 그만이야. 진정해.
미하엘은 내 목소리에 잘 반응했다. 진정하라는 말은 특히 미하엘의 불안에 특화된 것처럼 보였다.
* 우리... 어떡해... 정부 경찰에게 잡혀 가는 거 아니지...?
아직도 미하엘은 시덥잖은 망상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미하엘의 손을 맞잡아 움켜쥐었다.
* 미하엘 그렛시. 오늘 내로 정부의 이메일에 서신을 보낼거야. 최소 사흘에서 보름 안까지 정부로 찾아가겠노라고. 그 사이에 우리는 도망을 쳐도 되고, 더 고민을 해볼 시간도 많아. 그러니 그만 진정해.
미하엘은 그제야 안심한 듯싶었다. 그렇게 몇 십 분의 정적이 흐른 뒤였을까.
* 아담... 미안해. 또 네게 신세를 졌어.
전부터 그랬다. 미하엘은, 청부업 일을 하는 사람 치고는 너무나 선했다. 물론 사람을 살인할 때 또 달라지겠지만... 내게 보여지는 모습은 그러했다.
* 됐어, 이정도 가지고. 그나저나, 너 한 시에 의뢰인 미팅 있다고 하지 않았냐? 지금 열두 시 사십 분이야.
내 말에 미하엘은 깜짝 놀라 고개를 젖혀 시계를 바라보았다. 열한 시 이십 분이었다.
* 아담! 또 장난이야? 하여간... 넌 변한 점이 하나도 없어.
내 농은 완전히 미하엘의 불안을 덜어내기 위함이었다. 내가 시가를 피울 때가 아홉 시였는데, 벌써 열두 시 일리가. 미하엘도 꽤 순수한 면이 있나보다.
* 이제 좀 불안은 사라졌어?
미하엘은 고갤 들어 날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래, 나는 그런 미하엘의 모습이 좋았다. 이건 내가 동성애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저 미하엘이 웃는 모습은 내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다.
* 그래, 고마워, 아담. 오늘 석식은 내가 결제하도록 하지.
나, 아담 아델론의 이름을 걸고 미하엘은 선함을 보증할 수 있었다. 성경에서도 보증은 서지 말라고 했건만, 이상하게 몇 년 안 본 미하엘은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래, 미하엘. 이걸 고맙다고 해야할지.
나와 미하엘은 마주보며 웃었다. 비록 차가운 마룻바닥 위일지라도.
~
* 아담! 나 나가볼게. 저녁 즈음 돌아올 것 같으니 그 때 집에서 봐!
나는 외출하는 미하엘의 모습을 보며 외로이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미하엘을 떠나보내고 창밖을 바라보니 푸르른 하늘과 선선한 바람이 나를 반겼다. 밑을 내려다보자 미하엘의 살짝 장발인 백금발의 머리가 반짝였다.
* 저런 완벽한 외모를 가지고도 이런 더러운 업종에 종사하다니.
나와 미하엘은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많이 달랐다. 미하엘은 푸른 청안에 목 뒤를 살짝 덮는 백금발이었다. 게다가 피부는 또 어찌나 하얀지. 공부를 한답시고 안경을 쓸 때면 그 피부가 더욱 빛났다.
그렇지만 나는 새까만 군인 머리에 눈 마저도 새까맸다. 마치 우주의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리고 피부는 미하엘과 반대로 정말 까맸다. 이젠 내 신체 중 하얀 부분을 찾는 것이 더 빠를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미하엘이 손에 더러운 피나 묻히는 더러운 업에 종사한다니. 모델이나 배우를 해도 성공할 듯한데. 살인청부라니.
*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지...
나는 그렇게 멀어져만 가는 미하엘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003
시간은 예정보다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텔레비전을 켜놓곤 미뤄놓았던 집안일 몇 가지를 해냈고, 미하엘은 아마 아직 연락이 없는 것을 보아 미팅하는 중인 것 같았다.
시계는 네 시 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그리도 빨리 지나가다니. 생각보다 집안일이 재밌었나 싶었다.
* 아담!
순간 현관문을 열어젖힌 미하엘과 눈이 마주쳤다. 푸른 눈이 오후의 석양 빛을 받아 더욱 찰랑였다.
내가 생각한 미하엘의 도착 시간은 다섯 시였는데,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탓에 내 스스로도 적잖이 당황함을 느꼈다.
* 미하엘? 어찌 이리 빨리...
청부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미팅이란 그런 것이었다. 표적을 잡고,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해하면 좋겠는지 견적을 보고, 액수를 협의하는 것. 그리고 그런 대화는 보통 패닉룸에서 이루어졌다.
애초에 액수 협의는 기본으로 서너 시간은 걸리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돈은 살인에 들이는 시간과 비례했다. 더욱 그 미팅을 진지하게 받아들일수록 액수도 올라가는, 그런 피라미드 같은 형식이었으니.
* 생각보다 견적이 빨리 끝났어.
미하엘은 미팅에서 받아온 서류 뭉치들을 식탁에 던지듯 놓았다. 그리곤 의자 하나에 기대어 앉아 눕듯이 고개를 뒤로 뉘였다.
* 의뢰인이 얼마나 진상이었는지. 액수도 자꾸 기본 금액보다 깎는 바람에 스트레스만 엄청 받았다니까. 그럴거면 청부를 뭣하러 신청한건지. 돈도 없는 거렁뱅이 주제에...
나는 미하엘의 입에 작은 캔디 하나를 집어넣었다. 그것은 우리의 수신호와 비슷했다. 그 의미로는, [ 시끄러우니까 욕하지 마. ] 나, [ 조용히 하고 결과나 말해. ] 가 있었다.
* 그래, 그래... 알았어, 아담. 그래서, 이메일 답장은 했어? 범비 정부 말야.
깜빡 잊고 있었다. 밀린 집안일을 하다보니 고작 그런 이메일 하나 쯤은 잊어버리기 쉽상이었다.
내가 난처한 웃음을 짓자 미하엘은 뜻을 알아챘는지 곧장 나의 노트북을 열어 이메일 목록을 확인했다.
* [ 움틈 분들께 알립니다. from 범비 ] ... 라고 보냈네.
아, 저기서 말하는 움틈은 나와 미하엘이 일하는 크루의 크루명이다. Untm. 사실 고작 나와 미하엘의 본명을 따 만든 단순한 코드네임이지만.
* 내용 확인해봐.
나는 미하엘에게 적극적으로 읽어보기를 권유했다. 아무리 내가 제대로 전달했어도, 미하엘에게 내용을 전달하며 놓친 내용 하나는 있기 마련이니까.
미하엘은 긴장하며 마우스로 그 이메일 제목을 클릭했다. 이메일엔 짧은 단문의, 사실 통보라고도 볼 수 있는 단락이 타이핑 되어 있었다.
* [움틈 분들을 범비 정부로 초청합니다. 이곳은 세이핀로의 에이번가, 번지수는 172 - 2이며 밑 큐알코드를 프린트해 정부 내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긍정적 고려 바랍니다. ]
세이핀로와 에이번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죽을 만큼 듣던 이름들이었다.
* 속이 거북해졌어. 이거, 그냥 닥치고 일단 오라는 거잖아.
미하엘은 그렇게 말하며 토하는 시늉을 해댔다. 물론 나도 역겨운 것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부 놈들도, 살인이 합법 되기 전까진 우리에게 청부를 넣던 더러운 핏덩이들인데.
~
* 와, 역시 아담. 요리 실력이 나날이 늘어가는 것 같아!
미하엘은 나의 요리를 먹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입맛이 까다로운 미하엘을 자꾸 배려하려 같은 음식만 몇 년을 요리한 덕분일까.
* 서신은 어떻게 보낼까?
아, 그 상황에서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싶었다. 괜히 잘 먹는 미하엘을 눈 앞에 두고 그런 말을 꺼내다니.
* 음... 아까 내게 말했던대로 사흘에서 보름 뒤 즈음 찾아가겠다고 보내자. 그게 제일 안정적이고 편리하겠어.
나는 고갤 끄덕였고, 미하엘도 곧 웃음을 지으며 다시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
거기서 서신을 안전히 보낼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 아담, 아담! 눈 떠! 휘말리면 안돼!
날 업고 뛰는 미하엘. 그리고 • • •
* 당장 잡아, 저 쥐새끼들! 살인 합법화를 만든 주범들이다!
움틈을 죽이려는 시장 녀석.
* 미하엘...
나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004
사건의 발단은 저녁이었다. 미하엘은 미팅 탓인지 계속 졸려하며 먼저 씻으러 들어갔고, 나는 그런 미하엘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한적하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 아담! 거기 수건 있는거야? 왜 손에 안 잡히지?
미하엘이 수건을 핑계로 먼저 나를 불러냈고, 나는 그런 미하엘을 따라 화장실로 가보려던 찰나 • • •
* 문 열어!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
문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범비 정부 놈들의 둘째 침략인가. 나는 아무 소리 내지 않으면 괜찮을 줄로만 알았다.
* 아담... 제발!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계속 화장실로 향했고... 미하엘의 사색이 된 얼굴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저 또 미하엘의 불안이 오른 줄 알았다.
* 무슨 일인데, 미하엘?
나는 화장실 안으로 거칠게 잡아끈 미하엘의 손길에 미끄러질 뻔 했지만, 미하엘은 그것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로 내 귀에 속삭였다.
* 평범한 범비 정부가 아냐... 낌새가 이상해.
나는 그제야 정신이 들어 급히 화장실 문을 잠갔다. 어차피 정부의 레이더 한 번이면 모든 것이 들통날 터. 미하엘은 이미 그것까지 예상하고 나를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 무슨 소리야? 평범한 정부가 아니라니...
지금까지 내가 마주했던 큰일들은 고작 범비 정부나 살인 도중 들킬 뻔 했던 것, 두 가지가 전부였다. 근데 미하엘이 아까보다 더욱 불안에 떨 정도면서 평범한 정부가 아닌 것. 나는 감도 잡히지 않았다.
* 범비가... 아닌 것 같아...
범비가 아니라니. 어째서? 말투와 행동 모두 범비인들의 특징이었다. 내가 머리를 굴리는 소리라도 들렸던 걸까? 미하엘은 손을 덜덜 떨며 내 귀에 대곤 속삭였다.
* 예를 들어... 사헬이라던가.
사헬. 범비를 통솔하는 집단이었다. 그리 큰 범비를 통솔하면서도 지금껏 단 한 번 논란이 터진 적이 없었던, 아주 비밀리에 감춰진 집단.
청부업자들에게 사헬이란 지옥이었다. 애초에 사헬은 범비에서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끔 꼭 막아야 했다. 그것이 정부의 명령이었으니. 근데 그런 범비에서 청부업자가 활동하는 중이다? 그건 제 발로 사헬에게 살해해달라 부탁하는 꼴이었다.
그리고 참고로 말해주자면 사헬은 절대 정부의 밑이 아니었다. 표면적 지배자는 정부가 맞았지만, 실질적 지배자는 권력과 부, 명예가 더욱 왕성한 사헬이었으니까. 정부는 사헬에게 비빌 감이 안 되었다.
* 사헬...?! 미친거야? 사헬이 어떻게...
어떻게라니. 조금만 생각을 하면 나오는 답이었다. 정부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사헬에게 돈을 주고 없애라 명령 같은 부탁을 했고, 나는 그런 범비의 살인청부업자였으니까.
* 일단, 숨 죽이자. 문 열지 말고, 집에 없는 척. 혹시 레이더에 걸려도, 문은 어차피 봉쇄되어 있으니 괜찮아.
나는 당황함을 감추곤 먼저 미하엘을 달랬다. 나보다 더욱 감각이 좋은 미하엘은 아마 씻기 전부터 눈치 챘을지도 모른다. 다만 확신이 서지 않아 경과를 지켜본 것이었겠지.
* 아담... 우리, 사헬에게 걸리면 업도 끝이야... 너와도 이제 더이상은 못 보게 되는...
그렇게 말하다 미하엘은 굵은 물방울을 조금씩 떨어뜨렸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미하엘이 생각보다 나를 많이 지지하고 있었구나, 라고. 한편으론 고마워지기도 했다.
* 걱정하지 마, 미하엘. 아무리 사헬이어도 저 현관문 못 따. 미하엘 그렛시, 정신 차려봐.
미하엘은 내가 이따금 미하엘의 풀네임을 부를 때면 정신을 곧잘 차리곤 했다. 물론, 엄청나게 패닉을 받지 않은 이상은.
* 아담, 아담... 어떡해...
미하엘은 아직도 사헬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005
다행히 몇 분이 지난 후, 사헬은 되돌아 간 것 같았다. 하긴, 사헬 사람들은 원체 기다리는 것을 혐오하니 말이다.
* 미하엘, 일어나봐. 사헬이 지나간 것 같아.
그제야 미하엘은 꼭 감고 있던 두 눈을 살며시 떴다. 나와 딱 눈이 마주치자, 미하엘은 힘을 풀고 온전히 내게 기댔다.
* 그래, 이제 더 기운도 안 느껴지고... 다행이야.
* 최대한 빨리 범비 정부를 찾아가야겠어. 무슨 일이길래 우릴 사헬을 동원하면서까지 데려가려고 하는지.
나는 미하엘의 끝 말을 조금 끊곤 말했다. 그만큼 급했다. 범비 정부가 사헬을 동원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 응... 그래야겠네.
미하엘은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내 말을 곧잘 따랐다. 미하엘도 본인이 싫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았는지.
* 일단... 먼저 씻어, 미하엘. 바닥도 미끄러워서, 자칫 잘못하면 넘어지겠네.
미하엘은 그제야 제 웃통을 가리며 민망해했다. 그런다고 가려지는 크기도 아니면서, 엄살은...
~
생각보다 이틀은 빨리 지나갔다. 나와 미하엘은 서로 청부업 일을 하느라 바빴고, 범비 정부는 뒷전이었다. 사실 미하엘은 아예 자각도 못하고 있었던 것 같고.
* 미하엘, 내일 시간 비어?
먼저 얘기를 꺼낸 것은 나였다. 미하엘은 내가 한 ' 시간 비어? ' 의 의의를 잘 깨닫지 못하는 듯했다.
* 범비 정부.
나의 한 마디에 미하엘은 그제야 아, 하곤 충격 받은 표정을 지으며 나의 말을 이었다.
* 그럼. 없더라도 만들어야겠지.
이미 범비 정부까지 갈 계획 따위는 다 짜놓은 상태였다. 잠입을 한 두 번 해본 사람도 아닌데 입구부터 막히면 조금 체면이 상할 것 같았다고나 할까.
* 계획은?
미하엘은 두 눈을 맞추며 똑똑히 물었다. 그럼, 청부업자들에게 플랜이란 아주 중요한 것이니까.
* 일단, 내가 미리 뽑아놓은 소나타를 타고 갈 거야. 내부는 커스텀을 해놔서 방탄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혹여나 탄환에 맞아도 치명상이 가진 않을거고.
내 말에 미하엘은 고갤 끄덕였다.
* 그 다음엔, 범비 정부 앞까지 가. 그럼 보안관이 나와 누구의 초청으로 왔냐 물으면? 그때 네가 제압하고 들어가면 돼. 어차피 정부의 이메일을 받고 왔다 해도 보안관 녀석은 안 믿을 사람이니까.
범비 정부의 보안관은 악명 높았다. 꼼꼼히가 아니라, 깐깐하다고. 인정머리와 융통성 없는 노친네로 그 근방에선 이름을 널렸었다.
* 정부 쇠창살 정도는 가볍게 차로 밀고 지나가고, 그때 즈음이면 시장도 창문 밖으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겠지. 그리고 나선 차에 비치해둔 건박스(Gun Box)와 방탄 조끼를 챙겨 입고 나가면 끝이야.
생각보다 간단한 플랜에 미하엘은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보통 청부업자들에게 플랜이란, A5 용지로 이십 장은 써 세워야 했으니까.
* 뭐야, 그게 끝? 설마 그것만 세우진 않았겠지? 당장 내일 가는데.
나는 고갤 끄덕였다.
* 이게 다야. 나머지는 너와 내 능력으로 채우면 돼. 어차피 범비에서도 우리보다 싸움 잘하는 사람 없었잖아?
그러자 미하엘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 아니, 우리가 범비를 떠난지 어연 4년이야. 설마 그 사이에도 우리보다 더 잘 싸우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해? 하다못해 차로 가는 도중에 우리 차를 미리 조사한 누군가가 추적하면? 거기서는 어떻게 대응할 예정인데?
미하엘은 내게 격분해 울분을 토로했다. 나는 잠자코 미하엘의 이야기를 들어주다, 의문문으로 끝난 지금에서야 대답을 해줄 수 있었다.
* 아니, 우린 성공할 수 있어. 확실해.
미하엘은 못 미더운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006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임무 날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미하엘과 나는 보조 가방을 챙기느라 바빴고, 그 나머지 시간엔 자금을 마련하려 업무를 평소의 서너 배로 하는 바람에 몸에 파스가 닿지 아니한 날이 없었다.
* 아담, 준비됐어?
미하엘은 의미심장한 말로 나를 가동시켰다. 아마 내가 쥐고 있는 이 가방은, 나의 마지막 유품이 될지도 몰랐다.
* 그럼, 미하엘.
나는 상냥한 웃음으로 미하엘을 안심시켰다. 억지로라도 웃지 않으면 정말 만약이라는 불안에 휩싸일 것 같았으니까.
~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계속 운전만 했다. 미하엘이 지치면 내가, 내가 지치면 미하엘이 운전대를 잡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것은 모두 미하엘의 기발한 의견이었고, 우리는 서로 그 덕분에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 아담, 불편해?
우리의 정적은 미하엘이 선두로 깨버렸다. 불편하냐고? 그야 당연하다. 온 차 안이 딱딱항 방탄으로 도배되어 있는데, 기댄다 해서 어깨가 결리지 않을리가.
* 조금.
나는 짧게 대답하곤 잠에 드려 노력했다. 미하엘도 그런 나의 심정을 눈치챘는지 그저 앞만 바라보며 운전만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 이제 범비 입구로 들어가.
나는 그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혹시라도 입구 직원이, 미하엘이 나를 살해하고 조수석에 태웠다 오해하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 깨지 않아도 돼. 요즘 직원, 없더라.
범비 마저도 결국 산업화를 해가는구나, 느낄 때 즈음. 멀리서도 보이는, 우뚝 솟은 한 건물이 보였다. 체감상으론 300층은 되는 것 같아 보였는데, 미하엘은 고작 120층 밖에 없다고 답해주었다.
* 높긴 높네. 아니, 내가 불란에 계속 살았어서 그런가.
불란에선 건물은 커녕 집도 없어 노숙하는 사람들이 천지였다. 너무 추운 겨울이면 하다못해 남의 집 아파트 현관문에 손을 얹고 손으로라도 보일러는 나누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 범비는 워낙 잘 사는 도시니까. 불란과 비교 대상이 아니지.
미하엘은 그렇게 말하며 눈짓으론 계속 전방을 주시했다. 아직 정부에서 들이닥치진 않겠지, 싶은 불안감이었을까.
* 골치 아프네. 정부가 도대체 어디람?
오랜만에 온 범비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도로는 새로 포장했는지 방지턱조차 없었고, 표지판과 신호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길까지 알아보기 어렵게 바뀌어 안내가 없으면 정부에 진입하기도 힘들었다.
나는 내비게이션 앱을 켜 범비 정부를 찾았다. 정부는 현재 위치에서 멀지 않았고, 나는 그 화면을 바로 미하엘에게 보여주었다.
* 여기네. 가로수 앞 마당 안으로 들어가면 있는 곳.
미하엘은 지도를 확대하며 다시 차를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전, 내가 할까, 라고 물어보려 했지만 미하엘이 집중하는 모습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 저기다, 정부!
아까 봤던 그 고층 빌딩이 눈 앞에 보였다. 정부 건물은 고개를 태양까지 젖혀도 끝이 보이지 않았고, 외벽은 새하얀 색이었으며, 매일 도색을 새로 하는지 바랜 부분은 찾기도 어려웠다. 정부를 둘러싼 울타리는 모두 전류가 통하는 쇠창살이었다. 찔리면 바로 통과하겠구나, 싶을 정도로 날카롭고 무딘 감각이 없었다.
* 진짜 멋있어졌네, 범비...
우리가 차를 몰고 정부 앞까지 가자, 경비실에 있던 경비가 뛰쳐나와 우리의 차를 두드렸다.
* 누구십니까?
내 예상과 달랐다. 분명 성질 포악한 그 경비는 어디 가고, 미하엘의 앞엔 제복을 차려 입은 한 20대 여성이 서 있었다.
* 초청을 받고 왔습니다만. 움틈입니다.
여자는 움틈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화들짝 놀라 경비실로 뛰어갔다. 곧 문은 열렸으며, 우리는 힘을 빼지 않고 무사히 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 뭐야, 아담. 플랜 실력 다 어디갔어?
미하엘은 장난스럽게 말하며 본능적으로 백미러를 슬쩍 보았다. 그리고 미하엘은 곧 핸들을 세게 돌려 큰 소리를 내며 다시 유유히 정부 입구를 빠져나갔다.
* 미하엘! 무슨 짓이야, 지금?
나는 미하엘에게 진심으로 화냈다. 이렇게나 손쉽게 들어온 기회를, 놓친다고? 정부 내에서 나갔다고? 그러자 미하엘은 조금 입을 열어 내게 말했다.
* 사이드 미러로 봐.
사이드 미러에 비친 경비 여자의 손에는 기다란 사격총이 들려 있었다.
007
나는 당황함을 숨기곤 미하엘을 쳐다보았다. 미하엘의 이마에선 식은땀에 맺혔고, 핸들을 잡은 손은 조그맣게 떨리고 있었다.
* 정부가, 우리를 공격하려 한 것 같아.
그렇게 말하는 미하엘의 목소리 마저도 떨려오고 있었다. 나는 분위기를 풀고자 장난스럽게 농을 던졌다.
* 그냥 그대로 들이박지. 어차피 그런 장난감으론 턱도 없을텐데.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싸늘한 침묵 뿐이었다.
~
우리는 무사히 여관에 도착했다. 범비에서 한참 떨어진 도시 외곽이라 정부가 쫓아올 일은 없다고 생각하자 안심이 되는 듯했다.
* 미하엘, 플랜 변경이야. 어차피 A는 실패했으니 B부터 Z까지라도 지금부터 짜보자.
미하엘도 느꼈는지 고갤 끄덕였다. 범비는 우리가 있었던 때와는 다르게 생각보다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사람들과의 교류도, 왕래도 없는 삭막한 도시로 변질되어 있었으니.
* 일단 B. 그 총은 실제일지 거짓일지부터 예상해보자.
생각보다 미하엘은 이번 사건에 진심이었다. 미하엘은 나이프를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다 이내 입을 열었다.
* 그 총, 진짜야. 음각으로 로고도 있었어. G. Bumvi... 라고.
그 짧은 순간에 총의 진실 여부까지 파악하다니. 역시 미하엘을 따라올 업자는 없다고 다시금 생각이 들었다.
* 그럼... 우리가 먼저 그 경비를 처리하고 들어가야할 것 같은데. 여자니 제압하기 쉽지 않을까?
그러자 미하엘은 고개를 저었다.
* 그 여자, 작년 전국 킥복싱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 땄다고 하던데. 검색하니까 금방 나왔어. 이름은 구달 제인, 24세 여성이래.
미하엘은 빠르게 핸드폰으로 검색해 내용을 읊어주었다. 나는 그것들을 가만히 들으며 고묘히 속임수를 잘 써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 킥복싱 유단자 정도는 너도 상대할 수 있지 않나? 너도 한때 유도로 꽤나 잘 나갔으면서 —
미하엘은 나의 말을 딱 잘라 끊었다.
* 제 28항, 업무 외의 본체 개인사정 유출 금지.
우리가 처음에 계약서에 인장을 찍던 순간부터 이뤄진 우리의 약속이었다. 미하엘은 자신의 본체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끔찍이 싫어했다. 이미 검색하면 다 나오는 내용을, 그리도 혐오했다.
* 그래, 알았어. 미안하다.
그 이후로 미하엘은 말이 없었다. 아마 과거의 본체 자신에게 이입된 것 같았다. 한마디로, 과거 회상을 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 ... 플랜 Z. 테이저건으로 여자를 먼저 제압하고 차로 정부 코앞까지 밀고 들어가 110층 시장실로 들어가 본론이 뭐냐고 묻는다. 간단히 요약한거야.
나는 미하엘의 앞에 프린트 더미를 내밀었다. 시장실이 110층이라는 것, 테이저건은 얼마나 위력이 세고 몇 분이나 고통에 절어야 하는지 등의 세세한 정보가 프린팅 되어 있었다.
* 플랜 X랑 Z를 섞어서 가자. 테이저건과 소총을 함께 사용해서 시장실까지 들어가자는 말이야.
사실 플랜 X도 Z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저 X엔 소총이나 화약이 조금 추가되는 것 뿐.
* 그래, 그렇게 하자.
우리는 또 적막한 정적에 휩싸였다. 나는 먼저 입을 열어 미하엘에게 물었다.
* 아까 본체 꺼낸 일, 많이 기분 나빴냐.
미하엘은 흠칫 당황했다. 이젠 본체라는 단어만 들어도 자동적으로 몸을 떠는 것 같았다.
* 미하엘도 아니면서 엄살은.
미하엘은 눈을 흘기며 침대에 들이누웠다. 더이상 얘기하기 싫다는 무언의 수신호였을까.
* 카탈린. 잘 자라.
미하엘은 벌써 잠들어 내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008
다음날 아침, 미하엘은 일찍 일어나 나를 깨웠다.
* XZ 플랜, 오늘. 정부 뒷문으로 들어가면 경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어.
나는 일어나자마자 강제적으로 미하엘의 보고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비몽사몽한 탓에 뭐라고 하는지도 잘 들리지 않았지만, 어조로 보아 긴급한 사안은 아닌 것 같았다.
* 어어, 그래... 일어나야지...
값싼 여관 침대가 이리도 푹신했었다니. 나는 자동으로 내가 어젯밤에 얼마나 정신적으로 고생했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 졸리면 좀 더 자. 이따 양치랑 세수만 해도 되니까.
미하엘은 밤 사이에 조금 냉대하게 변해 있었지만, 그럼에도 날 챙겨주는 모습은 전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항상 그런 미하엘의 모습을 좋아했었으니까.
* 아니, 일어날래. 머리도 분명 까치집일텐데, 씻어야지.
내 예상대로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보니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다. 어젯밤에 머리를 감지 않고 쓰러지듯 잔 탓인지 몰골도 많이 초췌했다.
* 자다 일어나도 귀엽네.
미하엘은 화장실로 따라 들어와 거울에 비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깜짝 놀라 황급히 내 머리를 손으로 가렸지만, 그럼에도 미하엘은 이미 본 건지 화장실을 떠나서도 방이 울려라 웃어댔다.
* 카탈린, 저 웃기는 놈...
우리는 어제의 일이 무색하게 평소와 다름 없는 사이로 되돌아가는 듯했다.
~
* 또 여기네...
우리는 어제와 똑같은 정부 쇠창살 앞 대문에 다다랐다. 미하엘의 말대로 뒷문으로 가니 경비는 아무도 없었고, 우리는 차를 밖에 빼둔 채 은밀히 정부 안으로 잠입을 시도했다.
* Bring it on! (덤벼!)
미하엘은 짧게 구호를 외치곤 쇠창살 너머로 들어갔다. 꽤나 날카로운 칼날에 나는 미하엘을 조금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 넘어와, 아담. 생각보다 무뎌.
나는 미리 연마해둔 파쿠르 실력으로 담벼락을 가볍게 넘어갈 수 있었다. 애초에 이건 운동을 제대로 못 배운 사람이나 못 넘어가는 구간이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정부는 너무나도 평화로웠고, 혹시 몰라 옥상과 창문 모두를 올려다 보았으나 그곳엔 그 누구의 명암이나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 오셨군요.
낯선 이의 목소리에 나와 미하엘은 일제히 그 상대를 향해 눈빛을 겨누었다. 범비의 시장, 늇클론이었다.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늇클론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우릴 반겼다. 사실 반길 마음도 없는 것 같았다. 눈빛을 그저 ' 이제야 왔구나 ' 싶은 생각만 보였으니.
* ... 왜 우릴 부른 겁니까?
이제야 물어볼 수 있었다. 왜 우릴 불렀고, 그 경비는 왜 우리에게 총기를 겨눴었는지.
* 하하... 그건 말이죠.
늇클론은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 여러분은, 청부업자가 아닙니까?
늇클론의 한마디에 나와 미하엘은 그 자리에 벌 서듯 얼어붙었다. 별 말 아니었음에도, 다음에 할 말을 왠지 알 것 같은 느낌.
* ... 그게 무슨 상관이지?
늇클론에게 처음 맞선 것은 나였다. 분명 이상한 목소리였을 것이다. 이상한 발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엔 꼭 미하엘은 대답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믿음만 담겨있었다.
* 저희도 의뢰를 하고 싶습니다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뒷주머니에서 권총이나 빼어 사살할 작정이 아니었단 말인가? 나와 미하엘은 서로 당황해 눈빛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 정부 의뢰는 받지 않아.
나와 미하엘의 신념, 그리고 계약 사항. 정부의 의뢰는 우리 같은 한낱 잡거리들이 할 일이 아니다. 자칫 실수하면 우리의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에, 최소한 해외 전문가 정도는 고용해 의뢰하는 것이 대부분이건만...
* 아쉽게 됐군요. 여러분께 선택지를 드리려고 했는데 말이죠.
선택지란 말에 나는 늇클론의 말을 조금 끊고 바로 말을 이었다.
* 무슨 선택지가 있지?
내 말투는 내가 회상해도 꽤나 날카로웠다. 늇클론도 그런 내 의도를 알았는지 못 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 저희의 의뢰는 받는 것, 아니면 여기서 살해당하는 것. 어느 쪽을 선택하실 겁니까?
미하엘은 조금 앞서 있는 나의 손을 뒤에서 잡아 끌었다. 그것은 매몰아치는 폭풍 같기도, 흔들리는 지진 같기도 했다.
우리의 선택지는 두 개였다. 계약 사항을 위반한 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만약의 상황을 감수하고 현재의 나의 생명을 지키는 것과, 여기서 무참히 피를 흘리는 것. 그것은 나와 미하엘의 답을 충분히 지연시킬만 했다.
* 빠른 답을 주셨으면 좋겠는데... 이제 2번째 기회입니다만.
늇클론은 지금 시장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장실이 아닌 이런 풀숲 마당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 그리고 착장이 양복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 아담, 지금!
순간, 미하엘은 나의 손을 잡고 마당 밖으로 뛰었다. 뜨거운 듯 시원한 바람이 순간적으로 나의 뺨을 감쌌고, 벌레인지 나뭇잎인지 모를 간지러운 느낌이 나의 팔 전체를 휘저었다.
* 미하엘, 잠깐!
미하엘은 왔던 길을 그대로 넘어 쇠창살을 밟고 올라갔다. 물론 나도 담장을 넘는 미하엘의 곁에서 같이 따라 올라갔으나, 전직 운동선수였던 미하엘의 속도를 따라잡긴 어려웠다.
* LC! (왼쪽 모퉁이!)
어젯밤, 여관에서 만들었던 우리의 수신호.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먼저 빠져나간 사람이 왼쪽 코너로 차를 끌고 오겠다는 암묵적인 수신호였다. 풀네임은 Left Conner.
내가 쇠창살을 넘어 나오곤 바로 왼쪽 모퉁이를 돌아보자 나와 미하엘의 방탄 소나타가 보였다. 나는 그대로 조수석에 올라탔고 미하엘은 내가 아직 다 안기도 전에 차를 출발시켰다.
* 저, 개새끼들...!
안전벨트를 메곤 사이드 미러로 뒤를 보니 정부 경찰들이 도로까지 나와 우리가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009
* 여러분은, 청부업자가 아닙니까?
늇클론의 한마디에 나와 미하엘은 그 자리에 벌 서듯 얼어붙었다. 별 말 아니었음에도, 다음에 할 말을 왠지 알 것 같은 느낌.
* ... 그게 무슨 상관이지?
늇클론에게 처음 맞선 것은 나였다. 분명 이상한 목소리였을 것이다. 이상한 발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엔 꼭 미하엘은 대답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믿음만 담겨있었다.
* 저희도 의뢰를 하고 싶습니다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뒷주머니에서 권총이나 빼어 사살할 작정이 아니었단 말인가? 나와 미하엘은 서로 당황해 눈빛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 정부 의뢰는 받지 않아.
나와 미하엘의 신념, 그리고 계약 사항. 정부의 의뢰는 우리 같은 한낱 잡거리들이 할 일이 아니다. 자칫 실수하면 우리의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에, 최소한 해외 전문가 정도는 고용해 의뢰하는 것이 대부분이건만...
* 아쉽게 됐군요. 여러분께 선택지를 드리려고 했는데 말이죠.
선택지란 말에 나는 늇클론의 말을 조금 끊고 바로 말을 이었다.
* 무슨 선택지가 있지?
내 말투는 내가 회상해도 꽤나 날카로웠다. 늇클론도 그런 내 의도를 알았는지 못 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 저희의 의뢰는 받는 것, 아니면 여기서 살해당하는 것. 어느 쪽을 선택하실 겁니까?
미하엘은 조금 앞서 있는 나의 손을 뒤에서 잡아 끌었다. 그것은 매몰아치는 폭풍 같기도, 흔들리는 지진 같기도 했다.
우리의 선택지는 두 개였다. 계약 사항을 위반한 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만약의 상황을 감수하고 현재의 나의 생명을 지키는 것과, 여기서 무참히 피를 흘리는 것. 그것은 나와 미하엘의 답을 충분히 지연시킬만 했다.
* 빠른 답을 주셨으면 좋겠는데... 이제 2번째 기회입니다만.
늇클론은 지금 시장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장실이 아닌 이런 풀숲 마당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 그리고 착장이 양복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 아담, 지금!
순간, 미하엘은 나의 손을 잡고 마당 밖으로 뛰었다. 뜨거운 듯 시원한 바람이 순간적으로 나의 뺨을 감쌌고, 벌레인지 나뭇잎인지 모를 간지러운 느낌이 나의 팔 전체를 휘저었다.
* 미하엘, 잠깐!
미하엘은 왔던 길을 그대로 넘어 쇠창살을 밟고 올라갔다. 물론 나도 담장을 넘는 미하엘의 곁에서 같이 따라 올라갔으나, 전직 운동선수였던 미하엘의 속도를 따라잡긴어려웠다.
* LC! (왼쪽 모퉁이!)
어젯밤, 여관에서 만들었던 우리의 수신호.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먼저 빠져나간 사람이 왼쪽 코너로 차를 끌고 오겠다는 암묵적인 수신호였다. 풀네임은 Left Conner.
내가 쇠창살을 넘어 나오곤 바로 왼쪽 모퉁이를 돌아보자 나와 미하엘의 방탄 소나타가 보였다. 나는 그대로 조수석에 올라탔고 미하엘은 내가 아직 다 안기도 전에 차를 출발시켰다.
* 저, 개새끼들...!
안전벨트를 메곤 사이드 미러로 뒤를 보니 정부 경찰들이 도로까지 나와 우리가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010
나와 미하엘. 그 누구도 방금 일에 대해 쉽게 입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정부의 협박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에, 더욱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 아담, 괜찮은거지?
미하엘은 정면만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 여름이 아님에도 차의 내부는 후덥지근하고도 습한 것 같았다.
* ... 모르겠어. 그냥, 정부가 왜 그런 미친 짓을 벌였는지도 이해되지 않아.
* 그래도 우리가 범비에선 워낙 잘 나갔으니, 다시 우리를 범비로 끌어오고 싶은 것이겠지. 제 아무리 살인을 혐오하는 범비라 해도 말이야.
그것쯤은 나도 귀에 피가 나도록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질릴 만큼 알고있는 사실이자, 죽을 만큼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사유가 바로 정부의 계략들이었고.
* 돌겠네.
그 말을 끝으로 우리의 대화와 분위기는 또 얼어붙어만 갔다. 미하엘은 뒷좌석에서 사탕을 한움큼 꺼내 치아가 깨진 건 아닐지 걱정되는 소리로 와작와작 씹어댔다.
* 일단, 불란으로 돌아가자. 불란이라면, 정부도 함부로 침입하지 못할거야.
불란은 치안이 너무나 나쁜 곳이었기 때문에, 정부가 함부로 들어온다면 괴한 놈들이 가만 있을리가 없었다. 최소한 정부 사람들 중 한 놈은 죽였겠지.
* ... 그래, 그럼.
오랜만에 보는 미하엘의 주도적인 태도에 나는 조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항상 내 품에서 불안에 잠식되던 미하엘이, 시장 하나 봤다고 이렇게나 발전하다니. 죽었다 깨어나도 그 상황은 이해를 못했을 것이다.
~
* ... 정부가 빠른 시일 내로 오겠지.
현재 우린 돈벌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깟 돈은 나와 미하엘에 통장에 적금으로나마 수두룩했으니. 정부가, 심지어 사헬 마저도 나와 미하엘의 주거지를 알았으니 언제 저 문을 박차고 들어올지, 불안감은 우리의 예상조차도 못하게 만들었다.
* 이제 그런 생각은 그만하자.
미하엘은 조그마한 협탁에 앉아 바로 오늘 출간된 ' Paradise in Bumvi ' 를 읽었다. 파라다이스 인 범비, 그것은 10년 전부터 꾸준히 출간되었던 범비의 공식 신문이었다. 직역하자면 ' 범비의 낙원 ' 이나, ' 범비의 행복 ' 으로 해석할 수 있다.
* 시장이 20년째 바뀌질 않는대. 독재도 적당히 해야할텐데.
미하엘은 가벼운 말로 분위기를 완화시켰다. 나는 미하엘의 옆에 다가가 같이 ' Paradise in Bumvi ' 를 읽으며 조금씩 대화의 씨앗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 이게... 뭐야?
나와 미하엘은 일제히 신문의 한 단락 구석을 훑었다. 기사 제목은, ' Bumvi 정부, (前) 살인청부업자 움틈 수색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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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게시판이라면, 정말 사죄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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